예멘 난민에 반대한다는 발언따위로 나는 왜 이렇게 한 사람이 싫어졌나. 내가 뭐라고.
며칠 내 마음이 안 좋았다. 그가 운영하는 독서모임 덕분에, 그가 운영하는 서점 덕분에 힘든 이별도 극복했고 좋은 친구들도 사귀었고 글도 금세 다시 쓸 수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서, 엉엉 울어도 핀잔주지 않아서, 언제든 달려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해줘서 몇 달이나 나는 그에게 위로받았었다. 그런 사람이 한순간에 싫어지다니. 이런 내가 나도 이해가 안 갔다.
문제는 그 사람 말대로, 내가 엄청난 인권 운동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도 잘 모르면서, 나도 공부하는 중이면서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난 걸까. 심지어 그는 밤새 공부를 해 와서는 내 말이 맞다고 인정도 했다. 우린 싸운 게 아니라 대화를 했을 뿐이라는 말도 했다. 오히려 내가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잘 설명할 줄 알았다면 그는 오히려 쉽게 수긍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그가 인권 문제에 관심없음에 실망한 것일까.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서 노력하며 살아간다. 내가 내 발언을 조심하기 시작한 것은, 인권 감수성 떨어지는 말을 해서 사람들에게 미움받을까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정의감도 있었겠지만 내가 지금껏 스스로를 검열하고 틀리면 재빨리 사과했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 나는 지금도 친구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들이 말하는 그들의 감정과 그들에게 보여지는 내 자신에 대해 귀 기울이고 염려하고 노력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건 내게 아주 중요한 삶의 이유다.
그는 그날 나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내게 거칠게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내고 자신의 의견을 내뱉으면서, 자신의 발언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발언이 어딘가 잘못되어 나에게 ‘잘 못 보일까’하는 조심성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싸운 게 아니라 대화를 했기 때문에 대화 도중 상처받은 내 마음에 대해서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내가 상처받았을 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는 중학생 때 이후로 혼자만의 세계에 갖혀 살았다고 했다. 자신의 독서모임에서야 비로소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 관심을 가져본 것이라 했다. 처음으로 이토록 많은 사람과 대화를 해본 것이라고 했다. 그는 평생 사랑받고자 노력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걸 깨닫고서야 우리가 다툴 때마다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소윤씨가 스스로 무언가를 바꾸려고 한다면 좋아요. 하지만 나와 같은 타인 때문에 변하지는 말아요.”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항상 뭔가 서운했다. 왜? 타인 때문에 변화하는 게 뭐가 어때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이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솔직할 수록 또 그래서 고민할 수록 더 좋은 사람을 만든다고 믿는다. 그런 마음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어찌됐건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낮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