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간문 쓰기 :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글쓰기
영균,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생각은 처음 해봤어. 많이 보고 싶다는 말부터 하고 싶지만, 먼저 화부터 좀 내야겠어.
너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왜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 남겨두고 나를 떠나 버렸어? 한 번만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고 내가 그렇게 애원했는데 나를 몇 번이고 무시하고서 내가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렸어, 왜? 왜 그렇게까지 네 생각만 한 거야?
네가 아팠기 때문에, 네가 기독교 신자들인 가족들에게까지 등지면서까지, 특히 가장 사랑했던 조카를 포기하면서까지 소수자와 다양성에 대한 가치를 지키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너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높은 절벽 끝에서 내가 너를 밀어버렸다고까지 생각했어. 그렇게 힘든 너를, 그렇게도 아픈 너를 내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네가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어. 내가 얼마나 너한테 미안했는지 아니? 이 세상에서 너를 이해할 사람은 나뿐인데, 그런 내가 없으니 네가 얼마나 힘들까를 상상하느라 나는 매일 울었어. 나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도 나는 네 걱정밖에 못했어. 두어 달을 그렇게 살았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최근에서야 깨달았어. 너는 충분히 선택할 수 있었어. 너는 너의 삶의 여정에 나와 함께 할 수 있었어. 네가 힘든 건 사실 나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너는 그저 나와 함께 하지 않기를 선택했을 뿐이야. 나는 이걸 깨닫는데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네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너는 나와의 이별은 제대로 마무리 지었어야 했어. 네가 아프다는 핑계로 나를 그렇게 아프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너는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우리의 이별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어.
최근 상담을 받고 있어. 두 번에 한 번은 네 이야기가 중요하게 다뤄져. 상담 선생님은 내가 아직 너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말해. 네가 죽은 지도 3년이나 지났는데, 정말 그럴까? 만약 내가 너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내가 너와의 이별을 제대로 끝내지 못해서가 아닐까 해. 내가 네 장례식장에 갈 용기를 못 내어서, 네가 죽기 전에 한번 더 보질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선생님은 그래서 내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말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그저 종종 너만큼 사랑할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긴 해.
나는 너처럼 아름다운 남자를 너 전에도 너 후에도 본 적이 없거든. 네가 나를 잔인하게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네가 그렇게까지 좋은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인정하더라도,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내 인생에 너만큼 단발머리와 반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는 없었어. 목소리는 얼마나 저음에 달콤했는데, 네 동굴 목소리를 귓가에서 듣고 있으면 심장 한 구석이 녹는 기분이 들었단 말이야. 잠이 오지 않을 때 네가 책을 읽어주곤 하던 목소리들을 녹음해두지 않은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너는 영혼이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었고, 또 머리도 엄청나게 똑똑했어. 오래 살았다면 정치를 했어도 정말 잘했을 텐데. 그리고 그만큼 너는 외로운 사람이었고, 우리는 그런 점이 가장 닮았었지. 그래서 함께 있는 동안 그렇게 충만함을 느낀 건가 봐. 외로움은 내 숙제이기도 해.
어쩌면 이 편지가 내 우울증 치료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어. 너는 이미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이 편지를 볼 수 있는 일은 요원하겠지만, 만약에 네가 살아있다면 너는 진심으로 내가 잘 지내기를 바랄 거라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 나의 편지가 나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치유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누구보다 네가 기뻐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야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드네.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 자가 죽은 자에게 쓰는 편지는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잘 지내라고 할 수도 없고 보고 싶다는 말도 허공에 떠돌 수밖에 없으니. 네가 지금은 아프지 않은지, 환생 따위를 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행여라도 신 같은 게 존재한다면 꿈에서라도 너를 한번 더 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끔 해. 영균, 보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할게.
ps1.
내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네가 죽기 전에 너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러 가지 못한 거야. 네가 우리 사귈 적 암 치료 과정 속에서 머리카락을 밀고 살이 쪄가면서 거울 속의 자신을 미워하는 걸 난 이미 많이 봐왔기 때문에, 죽어가는 모습 또한 나에게 보여주는 걸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사실 너도 내가 힘들어할까 봐 나한테 연락을 못 했겠지, 생각하면 역시 내가 먼저 연락할 걸. 네가 싫어하더라도 그냥 벌컥 하고 병실 문을 열고 너를 들여다볼걸. 그래서 결국 내가 무너지더라도, 한동안 힘들어서 또 울고만 지내더라도 그래도 너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걸, 하고 수없이 생각했어. 볼 수 있었을 때, 볼 걸.
ps2.
우리의 사랑은 정말로 찬란하고 아름다웠어. 겨울에 시작해서 가을이 오기 전에 끝난 우리의 사랑이 계속해서 봄으로 기억될 정도로. 아직도 나는 아름다운 벚꽃 혹은 파랗게 생명력을 뽐내는 나뭇잎을 볼 때마다 너와 함께 거닐던 봄날이 떠올라. 기껏 너를 데려가 벚꽃길을 걸으며 신나 하는 나에게 붉은 벚꽃보다는 파란 나뭇잎이 더 좋다고 해 날 기운 빠지게 했던 얄미운 말도 떠오르고. 여태껏 너만큼 나를 충만하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 사람은 없었어. 모든 면에서 나를 감탄하게 한 사람도, 함께한 시간들을 그토록 촘촘하게 행복하게 만든 사람도 없었어. 너를 만나기 하루 전부터 설레서 잠 못 들던 밤들의 베개의 촉감과 너를 기다리다 마침내 지하철 개찰구 옆으로 네 얼굴이 빼꼼 보일 때의 그 심장의 터질 듯한 두근거림이 난 아직도 생생해. 물론 행복한 만큼 힘들고 슬프고 괴로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괜찮아. 그 모든 게 다 괜찮아. 우리는 정말 아름다웠다는 걸 내가 알고 기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