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무수한 쌍놈들

쌍놈론(1)

by 김소윤

지금은 널 사랑할 여유가 없어. 일이 너무 힘들고 바빠. 너에게는 더 다정한 남자가 필요한 것 같아. 너와 싸우는 게 지치고 힘들어. 우린 안 맞는 것 같아.


우리의 무수한 쌍놈들이 한 말들이다. 결국 자기가 가장 소중하다는 그들. 감수성이나 지능이 높아 멋진 남자들은 또한 자기 자신의 욕망에 밝고 그것을 쉽게 쟁취한다. 보통 그 욕망은 섹스고, 그래서 남자들은 자신과 자보지 않은 모든 여자와의 섹스를 꿈꾼다느니, 남자는 바람을 들킨 놈과 안 들킨 놈만 있을 뿐이라는 씁쓸한 말들이 거리를 맴돈다.


섹스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나도 누군가의 쌍년이었겠지. 남자와 썸을 탈 때면 섹스 먼저 해봐야 할 텐데 하고 걱정할 정도로 섹스는 내게 중요했다. 만날 때면 집 앞으로 데리러 오고 또 데려다주던 한 다정하고 돈 많은 남자와 썸을 타다가 섹스가 너무 별로라서 다시 만나지 않은 적도 있다. 위험하지만 않다면 원나잇도 상관없다. 단지 호감 없는 섹스는 별로였던 개인적 경험 때문에 지양하는 것뿐이다.


30대 초반의 끝자락, 그렇게 잘 놀고 막 놀던 내가 사랑에 빠졌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아픈 친구였고, 6개월 간의 연애 끝에 그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 그 6개월 동안 그의 병환 때문에, 그의 아픈 마음 때문에 나는 점점 병들어갔다. 그가 아픈 나날엔 나도 대신 죽어주고 싶을만큼 힘들었고 그가 자살 충동에 시달릴 때는 잠도 못 자고 걱정했다. 항상 먼저 사과했고 양보하고 희생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질 줄 알았다. 결국 그가 더 아프게 되면 내가 먼저 이 연애를 그만둘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고, 놀랍게도 그가 먼저 헤어짐을 고했다. 나는 한참을 우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쌍놈이었을까. 그는 자기 자신을 나보다 더 사랑했을 뿐이다. 상대에게 사랑받고 위안받으며 느끼는 안정감과 만족감, 싸우고 양보하면서 점점 편안해지는 둘만의 감각과 경험들, 상대가 내게 스며들며 결국 나도 성숙해지는 사랑의 교훈들보다 자신이 만든 견고한 성 안에 머무는 것이 더 행복했을 뿐이다. 제대로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에서 오는 행복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었을 뿐이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도, 그래서 아픈 경험도 좋다. 쌍년이 되는 것도 또한 좋다. 그래도 쌍놈들에게 배운 한 가지 교훈, 내가 다짐하는 것은 앞으로 내 자신보다 상대를 더 사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나를 버리고 다치게 하는 일은 다신 하지 않겠다는 것. 곽진언이 '자랑'에서 부른 것처럼 따뜻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 그렇게 사랑이 많아야 상대방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과 나는 사랑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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