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라는 주제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다.

by 김소윤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다. 말기 암 환자였던 그와 반년 정도 연애를 했고 이별한 지 반년 만에 그가 죽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답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인간과 세상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약하고 비관적인 나와는 달리 그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고 자신이 바로 그 일을 해내고 싶어 했다. 로스쿨에 다니던, 똑똑하던 그는 결국 몇 년간의 투병 끝에 33살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나의 작은 세상도 같이 무너졌다.


그와 헤어지고 가장 많이 했던 다짐은 절대 후회하지 말자는 거였다. 그를 만나지 말 걸, 사랑하지 말 걸, 사랑하더라도 연애하지 말 걸.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울면서 나는 이를 악 물었다. 그와 연애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아프지 않을 텐데. 그래도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꾸 약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울었다.


안 그래도 힘든 그를 극한까지 몰고 간 게 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죄책감과 괴로움이 가슴을 찢어놓는 것 같았다. 매일같이 몇 시간을 울다가 기운을 다 뺐다. 온몸이 아팠다. 그럴 때마다 이 슬픔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것으로 느껴졌다. 감당할 수 없는 짓을 저질러 버린 나의 멍청한 마음을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없던 것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둘 다 욕망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솔직했고 용감했다. 나중에 지옥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곧 헤어지거나 아니면 그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금방 헤어지리라는 것을 만나는 동안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반년 동안의 행복과 아픔 끝에 헤어지고도 나는 계속 그가 보고 싶었다. 그래도 참고 참았다.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는 그의 하루하루가 평안하고 행복했으면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일찍, 갑자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죽은 시간은 내가 마침 서울역에 도착해서 그를 떠올리던 시간 즈음이었다.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서 나는 우리의 추억과 그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이제 그 마음이 가서 닿을 데가 없었으므로 나는 마음껏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슬퍼할 수 있었다. 이 슬픔은 아주 오래갈 것만 같다고도 느꼈다.


작년 언젠가 참여했던 글쓰기 모임에서 ‘후회’라는 주제로 글을 써 모아보자 했다. 그 단어를 듣자마자 나는 후회를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을 텐데 후회는 쓸데없다며 자기 합리화를 하는 편이었다. 그 주제를 제안한 당사자는 나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지난날을 많이 후회한다고 했다. 다시 20대가 되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 것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가 참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용감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회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용기 있어 보였다. 그 이후로 나는 종종 후회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이것저것 생각하곤 했다.


며칠 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가 일 년 전의 나에게 가서 너는 짧은 행복 뒤에 길고 긴 슬픔을 느끼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를 만나지 마,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조금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고집 센 나는 아마 미래의 내 말을 절대 듣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잠깐 웃었다. 나는 한 번도 그를 사랑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선택을 한다 해도 나는 그를 사랑할 것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