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인 사랑은 왜 아름다울까

사실 '미스터 션샤인' 리뷰

by 김소윤

비극적인 사랑이 아름다워 보이나 보다. 각자의 시련을 이겨내고 결실을 맺는 사랑, 혹은 현실을 이기지 못한 슬픈 이별들이 이야기가 되고, 그림이 되고, 영화가 된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힘든 현실 속에서 만난 사랑이 결국 한쪽의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드라마를 보았다. 삶을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연인이 나왔다. 그런 시절의 이야기였다.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것이 결국엔 어떠한 편을 드는 것이 되고 마는 위태롭고 위험한 시대의 연인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다 겨우 나란히 앉아보게 되었다고 행복해했다. 조국을 위해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여자를 끝까지 지켜주는 남자. 어차피 곧 끝날 사랑임을, 함께하는 것은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길임을 알면서도 깊어만 가는 감정. 함께 해서 생겨나는 행복보다 그 인연으로 인해 생겨나는 불행이 더 큰 연인들.


웃기게도 나는 나의 헤어진 연인과 그들을 비교했다. 저 사람들, 제대로 섹스는 해 봤을까. 눈부신 아침 햇살에 그의 살 냄새 맡는 일을, 그래서 그의 옆자리의 본능적인 설렘을 정말로 알까. 시대적 비극에 그들의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서로의 쾌락을, 아픔을, 우울을, 정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상처와 민낯을 제대로 마주하고 사랑하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왠지 위로받았다. 나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저들보다는 우리의 연애가 낫다는 위로는 그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불꽃같은 사랑에 빠졌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을 만큼 하늘을 나는 황홀한 기분에 빠졌다. 얼굴만 보고 있어도 그의 글만 보아도 이런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다. 말기 암이 재발한 사람이었다. 길어야 5년은 살까, 전이가 많이 된 상태였다.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하다시피 했고 그의 집은 가난했고 그와 그의 가족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는 아픔과 불행 속에 살았다.


불꽃같은 사랑이 일상의 행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따뜻함이 그의 힘든 상황을 견디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행복함이 그의 불행을 상쇄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었다, 나는, 끝까지.


불꽃같은 사랑은 그냥 까맣게 타버렸다. 나의 따뜻함은 그에겐 너무 뜨거웠다. 그의 불행은 그만의 것이었고, 그의 삶이었다. 어떤 행복도 그의 불행을 상쇄시켜주지 않았다.


우리의 낭만적인 사랑은 일상이 되지 못했다. 그는 나를 위해 포기한 욕망 때문에 괴로워했고 나는 그의 병 때문에 양보하는 것 투성이라고 생각했다. 서로를 위해 어느 정도의 욕망을 포기하고 양보하고 서로가 닮아가는 과정을 밟는 것은 불꽃같은 사랑과는 상관이 없었다. 각각의 싸움은 끝이 없는 능선 같았다.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나왔다. 그리고 언덕들은 사랑의 크기 보다는 불행의 크기만큼 각자를 힘들게 했다. 나와 그 언덕들을 넘어 사랑하기에 그는 너무 아팠고 시간이 없었다. 내가 어느 정도 정상에 도달했고 앞으로는 행복한 순간들만 있을 거야, 하고 설득하려는 순간 그는 우리의 관계를 포기했다.


내가 본 드라마의 그 불꽃같은 사랑은 불꽃이 한창일 때 그냥 통째로 사라졌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에 불꽃이 그대로 남았다. 드라마의 연인들은 타오르기만 해도 되었다. 양보하고 포기하는 과정이 없어서 낭만적일 수 있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런 것을 건너 뛰고 사랑할 만큼 험란한 시기에 살고 있지 않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연인이 헤어지는 이유는 각자의 한계 때문이라는 대사를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 드라마를 너무나 좋아했는데 그 대사만큼은 이해가 가질 않아서 몇 년이고 계속 머리에 남았다. 아니야, 사랑이 그 한계보다 크지 않아서야. 사랑하려는 의지가 충분하지 않아서야. 사랑은 모든 걸 이길 수 있어.


사랑을 이기는 현실이 존재한다. 버틸수록 둘 다 불타버리는 사랑도 있다. 나는 그와 만나는 6개월 동안 우울증이 심해졌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밤에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애인과 만나는 사람의 불행은 나에게 매번 연애의 이유에 대해 물었다. 헤어지고 2달이 넘는 시간 동안 내내 눈물이 났다. 터트리고 나면 시원해지는 울음이 아니라 마음이 너무 아파서 쥐어짜는 울음이어서 결국 늦은 밤 지쳐서 울기를 멈추고 다음 날엔 온몸이 아팠다. 울게 만드는 그 아픈 마음이 너무 아파서 죽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덜 아플 수 있다면 죽게 해달라고 빌면서 울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나도 정말 다시 괜찮아질 수 있냐고 물었다. 그제야 마음이 힘들어서 사랑을 그만하자고 한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사랑을 이기는 한계와 현실이 무언지 알았다. 하루하루 견디는 것이 힘들 때는 사랑도 여유라는 것을 알았다.


‘love of life’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사랑은 노력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사랑이 운명이라는 생각보다 더 마음 편하겠는데. 나도 모르는 새 조건에 상관없이 사랑에 풍덩 빠지는 일 없이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과 평생 맞춰 나가는 게 사랑이라면 더, 쉬울 텐데. 나는 여전히 답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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