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인연
첫눈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딱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나는 그런 능력을 갖지 못했다. 흔히 말하는 ‘사람 보는 눈 없다’ 그게 바로 나였다. 철석같이 믿었다 데이고 깨지고. 마흔이 넘도록 이렇게 사는 건 나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녀도 그랬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언제나 위안이 된다.
시골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까지 같이 보낸 우리가 그제야 친해진 이유는 단순했다. 운동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살이 찌는 게 문제였고 그녀는 운동 부족으로 허리가 아팠다. “같이 걸을래요?” 그녀의 한 마디로 매일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걷기 시작했다. 예의 챙기던 호칭도 한발 가까워졌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우리 동네는 눈 닿는 곳, 발 닿는 곳, 사계절 모두 아름다웠다. 하지만 겁 많은 내게는 들어가지 못하는 액자 속 그림 같았다. 특히 혼자 가다 시골에서 간혹 보게 되는 풀린 개를 만나면 어쩌지 하는 상상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둘이 되고는 달라졌다. 설사 미친개가 달려들어도 서로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든든함이 생겼다. 마음은 진짜 그랬다. 하지만 어느 날, 개가 아닌 뱀을 마주친 우리는 서로를 챙길 틈도 없이 달렸다. 마침 맨발 걷기를 하던 그녀는 맨발로 우사인볼트처럼 달렸고 나도 질세라 따라 뛰었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이 터졌다. 한참을 웃고도 웃음이 계속 비어져 나와 멈추질 못했다. 웃음과 비명을 함께 내지르며 도망쳤다. 겁보 둘이 만나 같이 겁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약한 자들의 연대는 폭발적이었다. 자신감을 잃었던 반쪽짜리 플라나리아 같은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먹고 통통한 하나로 온전해지기 시작했다.
걷기가 익숙해지면서 나는 멍청해 보이는 커다란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을 잘 못 볼 뿐 아니라 실제로 나는 눈이 나빴다. 겁 많아 교정술은 포기한 지 오래고 렌즈를 껴왔다. 웬만해선 안경을 쓰고 밖에 나가질 않았다. 그거라도 장착해야 사람 앞에 나설 수 있다고 여기는 최소한의 꾸밈이었다. 안경 쓴 모습을 보인다는 건 나의 선 안에 상대를 들여놓았단 증표였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잡티를 드러낸 쌩얼을 하고 반쪽짜리 눈썹도 거리낄 것 없었다. 가족이나 오랜 친구 말고는 안 보여주던 진짜배기 초췌함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남루함을 나누고부터 관계는 더욱 빛났다.
걸으며 같은 시간 같은 풍경을 공유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자전거 타는 할아버지들, 공공근로 청소 나오시는 할머니들. 영화의 인서트 장면처럼 금방 스쳐 가지만 따뜻한 순간이었다. 시간이 엇갈려 못 보고 지나친 다음 날이면 왜 안 나왔냐며 서로의 안부를 챙겼다.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대로 아침 풍경이 되어갔고, 서로에게 건네는 안온한 인사는 하루를 사는 에너지가 되었다. 사람도 풍경도 아름답지 않은 건 하나도 없는 그 시절 그 길. 길을 따라 쫘-악 펼쳐진 배추밭은 가을이 깊어가며 푸른 융단이 되어 넘실댔다. 어떤 꽃무리보다 배추밭의 싱싱함을 우린 좋아했다. 가슴 꽉 차게 무럭무럭 자라는 배추를 보며 이쁘다 감탄을 쏟아냈다. 풍경 속에 웃음소리마저 푸르게 흩어지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계절이 순환하듯 관계도 잔뜩 웅크리게 되는 시간이 왔다. 마음을 건네는 일이 더뎌졌다. 프리랜서로 하는 일이 바빠지며 나는 거절을 말하는 횟수가 늘었고 그녀의 서운함을 감지하고도 뒤돌아 당장 내 앞에 놓인 일을 해내기에 바빴다. 정말 눈코 뜰 새 없는 새해의 첫 달을 보내며 ‘다음 달부터는 다시 열심히 걷자.’ 마음을 먹었는데 그녀에게서 뜻하지 않은 말을 듣게 되었다.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왈칵 눈물이 났다. 함께 할 날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미뤘던 약속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행복했던 시절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기분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내가 관객이 되어 그 시절을 지켜보고 있었다. 큰 결정을 하며 고민이 깊었을 시간 혼자 둔 게 너무 미안했다. 며칠 후, 그녀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갔다.
사람이 지겨웠던 나에게 그녀는 사람 보는 법을 알려줬다. 잘 못 봐도 일단 다정하게 다가가는 것.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다는 것. 나도 이제 잘 못 보는 대로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볼 작정이다. 함께 걸어 본 자의 여유로움을 장착하고서. 추억은 그리움이 아니라 든든함으로 남았다. 이사 가는 곳에 춘천만큼 예쁜 풍경이 없다고 아쉬워하는 그녀는 그런대로 초록 없는, 먼지 날리는 거리에서 파아랗게, 싱그러운 배추처럼 웃으며 걷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