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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un 24. 2021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추억이 방울방울

당신의 생애 최초의 기억은 언제인가요?

'뜬금없이 웬 생애 최초의 기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생애 최초의 내 집 마련'도 아니고 말이다. 나도 그런 건 생각도 안 하고 살았는데, '내 생애 최초의 기억은 어떤 거지?' 하고 고민을 하게 만든 건 몇 년 전에 있었던 동화 합평 수업이었다. 동화 합평 수업이라면 으레 동화를 쓰고 그 글을 돌아가면서 난도질을 하는 건데, 아마 수업 첫날이어서 그랬는지 짧은 시간에 기억을 떠올려 그림을 그리고 한 사람씩 나와서 발표를 했다. 

누구에게나 생애 최초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내 생애 최초의 기억은 여섯 살 정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집 앞에는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었다. 내가 자랄 때까지 그 가게의 주인이 바뀌면서 가게 이름도 여러 번 바뀌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가게의 이름은 '경북상회'다. 옛날 구멍가게가 그렇듯이 가게 문이 여닫이 형태로 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매대가 있어서 과일이 진열되어 있었다. 사실 이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매대가 아니라 빨간 다라이 안에 과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다라이는 왜 다 빨간색일까?)

어린 내가 보기에 그 과일들이 꽤나 맛있어 보였나 보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먹을 게 흔하지도 않았고, 지금보다 가난하기도 했다. 나랑 친구는 그 과일을 훔쳐 먹자고 모의를 했다. 그 나이에 어찌 그리 당돌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날따가 몹시 포도가 탐스럽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유난히 햇빛에 비친 포도알이 반짝거려 예뻐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와 친구는 가게와 가까운 곳에 숨어서 망을 봤다. 꽤 오랫동안 망을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 주인 아줌마가 안 보는 틈에 내가 재빨리 달려가서 포도 한 알을 훔쳐서 달아났다. 아줌마가 그런 나를 봤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그 포도 맛이 달콤했는지 시큼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는 진작에 집에 들어갔지만 나는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동네를 돌고 또 돌았다. 그러다 해가 산 끝으로 내달리고 있을 때쯤 대문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슬며시 대문을 열었는데 마당 한쪽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마당 수돗가로 나를 데리고 가 얼굴을 박박 씻겼다. 그러고는 나늘 냅다 들쳐업고는 경북상회로 향했다. 그날따라 엄마가 여는 가게 문 소리가 몹시 크고 당당하게 들렸다. 엄마는 아줌마한테 큰 소리로 포도 한 송이를 달라고 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엄마가 말했다. 

"포도가 먹고 싶으면 사달래야지."

완전범죄라 믿고 싶었지만 주인 아줌마가 어설픈 내 행동을 보고 엄마한테 말한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는데, 나의 일탈은 그 한 번으로 끝났다. 

만약 그때 엄마가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오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화를 냈거나 혼을 냈다면 그때의 기억이 따뜻하게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남아 있지 않을 듯하다. 

그날의 기억은 내가 아이를 키울 때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헤매고 있을 때마다 한없이 너그러워지라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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