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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ul 27. 2021

불안해서 그렇습니다

나는 실용주의자다.

학문이나 지식을 익히고 넓히는 데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쓰이는 걸 배운다. 포토샵, 일러스트, 인디자인, 프로미어 프로, 에프터이펙트 모두 일에 도움이 되니까 배우는 거지, 취미생활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캘리그라피도 책 제목 글씨를 기존 서체보다는 손글씨로 쓰는 게 예뻐서 배웠다. 결국 책 디자인에 도움이 되어서다.

책도 그렇다.

좀처럼 소설이나 에세이는 눈에 잘 안 들어온다. 뭔가 삶에 변화를 주거나 인생관 정도는 바꿔줄 만한 임팩트 있는 실용서를 읽어야 눈에 쏙쏙 들어온다. 소설은 왠지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이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읽고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다(여기까지 쓰고 보니,, 헉! 나 좀 이상하다). '이 귀한 시간에 소설을 읽고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마음을 어지럽힌다. 당연히 집중이 힘들다. 그렇지만 베스트셀러는 두루 읽어두는 편인데, 그 또한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글도 그렇다.

내 일상 이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줄 만한 글을 쓰려고 하는 편이다. 내 일상 이야기는 일기장에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탓에 조금이라도 내가 알고 있는 정보(정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를 나눠주어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자꾸 외래어 표기법이나 맞춤법에 대한 글을 올리는 것이다.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라는 책을 보니 그 책의 저자는 글을 쓰면서 힐링이 되고 상처가 치유된다는데, 나는 아직까지 그런 단계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즐거움보다는 부담감이 크다. 숙제검사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처럼 마음 한편이 조금 무겁다. 

아, 알았다. 지금 깨달았다. 

나를 움직이는 건 '불안감'이다. 회사에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인생에서 패배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불안감이 배우게 하고 책을 읽게 하고 글을 쓰게 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고 뭐든 열심히 한다고 칭찬 비슷하게 말하지만, 내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건 '불안감'이다. 그래서 그런지, 참 열심히 한다는 말을 들어도 썩 달갑지만은 않다. 

이러한 불안감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나 가족과의 관계에서 이런 불안감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고 보면 나를 성장시키는 꽤 건강한 불안감이 아닌가 싶다. 내 스스로 너무 피곤하지 않게 적당히 잘 다스린다면 즐겁게 배우고 성장하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쓰는 건 이런 이유다. 글을 쓰다 보면 내 문제점을 찾게 되고, 해결점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 와중에 헤매기도 한다. 글을 쓰지 않고 생각만으로는 단순히 내 머릿속을 한번 스치고 지나갈 수 있지만, 글을 씀으로써 좀 더 확실하게 문제를 붙잡고 탄탄하게 해결책을 찾게 되는 것이다. 비록 아직 글 쓰기가 나에게 힐링을 주고 상처를 치유해 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만약 살아가는 지금이 뿌리가 단단하지 못하고, 심지가 굳지 못해서 우왕좌왕 갈피를 잡을 수 없다면 글을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좋아하는 것도 써보고 싫어하는 것도 써보고, 삶이 막막하다면 어떤 게 막막한지도 써보고, 하고 싶은 것도 써보고, 되고 싶은 것도 써보면 좋겠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다 보면, 적어도 자신을 위한 또 하나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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