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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Aug 01. 2021

거실에 이불을 펼치니 여름 밤이 달콤해졌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 밤이면 나는 가족과 함께 거실에서 이불 펴놓고 자는 걸 좋아한다. 남편은 동참 안 하지만 나와 고등학생 딸아이는 두툼한 이불을 거실 한복판에 깔아놓고, 깔깔한 얇은 이불을 덮은 채 잠자리에 든다. 그러면 제 집에서 늘어져 있던 강아지도 나와 딸아이 베개 사이에 배를 깔고 눕는다. 밤 사이에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이불에 눕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지고 말지만, 나는 여름에만 할 수 있는 이 시간을 몹시 사랑한다. 더울 때는 에어컨도 켰다가,, 선풍기도 켰다가 하면서 살짝 달뜬 밤을 보내는 이 시간이 적당히 좋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그 시간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내 어린 시절 때문인가 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단독주택이어서 옥상이 있었다. 우리 엄마는 여름이 되면 옥상 한가운데에 두툼한 매트리스를 깔고매트리스 주위로 모기장을 꽤 넓게 치셨다. 그러면 우리 형제들은 다 같이 거기서 옹기종기 모여서 잤다. 매트리스 위에 누우면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우리 형제들은 까만 밤하늘에 총총 박힌 별들 가운데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과 W 모양의 카시오페이아를 찾았고,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중간쯤에서 북극성을 발견했다. 

모기장 안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별똥별이 떨어졌는데, 그때마다 우리 형제들은 "오천만 원!" 하고 외쳤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이 너무 짧아서 소원을 문장으로 말할 수 없었으므로 별똥별을 보자마자 "오천만 원!" 하고 외친 것이다. 그때는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돈이 오천만 원이었나 보다. 

그렇게 옹기종기 누워 자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제일 어린 막내였으므로 언니들이나 오빠가 이야기에 끼워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니들이나 오빠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끼어들면 언니들에게 핀잔을 들기 일쑤였을 것이다.  

우리 형제들이 몸을 누이기에도 좁디좁은 공간이었건만, 가끔 사촌 언니 오빠들이 두세 명씩 놀러와서 우리들의 특별한 밤에 동참했다. 여름방학의 반 이상은 그렇게 형제들과 사촌들과 부대끼며 지냈다. 사촌의 사촌도 놀러온 적이 있는데, 놀다가 옥상에서 일층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었는데, 그 사촌의 사촌은 다행히 다친 데도 없을 뿐더러 성인이 되어 의사가 되었으니 그때의 사고로 인해 뇌세포가 파괴되거나 그러지는 않았나 보다.

밤하늘을 이불삼아 옥상에서 더운 여름날을 지냈던 기억은 내 기억 속에 특별하게 남아 있다. 비록 구멍 뚫린 파란 모기장과 축축하고 쿠션감 없는 3단 매트리스였지만, 그 속에서 보낸 밤들은 무척 근사하고 재미있었다.  

아직도 생각난다. 그때의 밤하늘이 얼마나 새까맸는지, 그 속에 수놓여 있던 하얀 별들이 내 꿈나라를 얼마나 환하게 밝혀주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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