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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Oct 10. 2021

내가 글을 못 쓸 이유는 없다

다산 정약용은 글을 잘 쓰려면 다독, 다작, 다상량을 잘해야 한다고 하던데, 정약용 쌤 말대로라면 내가 글을 못 쓸 이유는 없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서 옆집에 가서 그림책과 동화책을 빌려가며 읽었고, 초등학교 때는 엄마가 들여놓은 50권짜리 계몽사 문고를 옆에 끼고 살았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는 할리퀸 문고, 소위 말하는 하이틴로맨스를 선생님 눈을 피해 수업시간 내내 탐독하며 소설의 구조를 이해했으며, 사회에 나와서도 책 관련 일을 했으므로 책은 항상 내 옆에 있었다. 그러니 정약용 쌤이 말하는 다독은 채워지지 않았나 싶다.


다작도 할 말이 있다. 학창시절 문예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짓기 상 한번 받아본 적이 없지만, 100권 이상의 책을 편집하면서 자잘한 글을 쓰고 남의 글을 고치는 일은 부지기수로 해봤다. 또 한때는 동화작가가 되겠다며 습작을 얼마나 했던가. 최근에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다상량도 나름 자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산책을 좋아하므로 정약용 쌤이 말하는 ‘헤아려 생각한다’는 의미인 ‘다상량’도 어느 정도 채워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도 나는 글쓰기가 여전히 어렵고 고민되고 생각이 많아진다. 글을 쓰고 나서는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과 충족감이 한껏 올라가지만, 글을 쓰는 그 시간과 공간은 나를 고통스럽게 할 때가 많다. 내가 괴테나 헤세, 셰익스피어, 톨스토이처럼 어려운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편, 생각해 보면 다독을 했다고 하지만,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양질의 책을 읽었다고는 할 수 없고, 다작 역시 좀 어설프다. 매일 글을 쓰면서 창작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작가는 또 얼마나 많은가. 총체적인 시간을 따지자면 나는 그들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다상량도 ‘헤아려 생각한다’의 정도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 모르니, 그 또한 잘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


쉽고 편안한 글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고 장영희 선생님도 글쓰기가 어렵다고 했으니 이런 고민들은 나만의 문제는 아니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쓰다 보면 좀 만만하게 글쓰는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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