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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Nov 11. 2021

"별거 아니야"라는 말이 주는 위안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다 보면 상처라는 걸 주고받게 된다. 시간이 흘러도 마음에 못 자국을 남길 정도로 깊은 상처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 별거 아닌 일에도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게 상처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종종이 아니라 좀 많은 편이다. 

상처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저마다 상처를 무마하거나 회피하는 방법은 다르다. 다른 사람의 거절이 상처가 되는 나는 웬만하면 부탁 같은 건 잘 안 하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남편한테는 부탁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데, 딸아이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도 안 될 때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부탁하는 편이다.  

거절에 대한 불편함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쌤이 좀 생각이 즐거운 분이셨나 보다. 짝꿍을 정할 때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셨다. 어떤 때는 '로미오와 줄리엣', '성춘향과 이도령', '올망이 쫄망이', '아롱이 다롱이' 이런 식으로 남녀 제비뽑기를 하게 해서 짝을 정하게 하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남자아이들을 자리에 앉혀놓고, 여자아이들한테 좋아하는 남자아이 옆에 가서 앉으라고도 했다. 제일 처음 남자아이 옆에 앉았던 용기 있는 여자아이를 기억하는데, 우리 반에서 가장 무서웠던(?) 배우 엄태구 님 분위기의 남자아이 옆에 앉았다. 그 다음에는 우리 반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남자 반장 옆에 앉은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그 여자아이도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아이였다. 

지금까지 그 첫 번째, 두 번째 아이들 얼굴이 생각나는 걸 보면 그때의 기억이 꽤 강렬했나 보다. 그랬다면 나는 어땠을까. 다른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 옆에 앉자 나도 남자아이 옆에 앉았는데, 그 아이는 인기 있는 아이도 아니었고,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아이도 아니었고(그러고 보니 초딩 때 남자아이를 좋아했던 기억이 없다) 좀 찌질한(? 이런 표현은 좀 그런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아이들은 잘사는 집 한두 명 빼고 다 찌질하긴 했다) 아이 옆에 앉았다. 그 아이가 나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겠지만, 선택받았다는 안도감이 있었는지 아직 선택을 받지 못한 남자아이한테 큰 소리로 뭐라고 떠들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그게 거절을 방지하려는 나만의 안전한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좀 더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데, 괜히 나 혼자 지레 벌벌 떨고는 했다. 그런 부분이 좀 아쉽다. 

요즘은 내 자신한테나 다른 사람한테나 '별거 아니야.'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살아 보니 거절당하는 것도, 상처받은 것도,, 다 별거 아니다. 정말 다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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