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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Dec 01. 2021

친밀함의 밀도가 깊어지는 '너'라는 호칭

처음 보는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부르는 나만의 호칭이 있다. "샘~"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부르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수강생끼리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많이 쓰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너무 딱딱하고 격식을 차리는 듯해서 나름 생각한 게 "쌤~"이라는 말이다. 언젠가부터는  자연스럽게 온라인 모임이나 오프라인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모두 "쌤~"이라고 불렀다. 사실 나는 '야~'라고 부를 만한 친구가 거의 없다. 지금까지 친분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 회사 동료거나 아이 친구 엄마거나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그 수도 많지 않다^^).

"쌤~"이라고 부르면 굳이 상대의 나이를 물어보지 않아도 되고, 여자든 남자든 고루 쓰기에도 알맞다. 또한 적당히 높여주면서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도 있어서 왠지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어제 남편이랑 맥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해보니, 남편은 "쌤~"이라는 호칭을 엄청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회에서 형식적으로 만난 사람도 아니고, 직업적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집단도 아니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거나 같이 골프를 배우는 사람들한테 "쌤~"이라고 부르면 상대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는 거였다. 사실 난 골프장에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상대에게도 "쌤~"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상대가 이 호칭을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편하니 남들도 편하게 여길 거라 생각했나 보다.

아니다, 내가 이 호칭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있긴 하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갑내기를 알게 되면서다. 나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인데, 처음부터 동창이란 걸 알았던 건 아니었으므로 나는 "쌤~"이라고 불렀다. 동창이란 걸 알고 나서도 별생각 없이 "쌤~"이라고 불렀는데, 상대는 그런 호칭에 거리감이 좀 느껴졌나 보다. 

며칠 전 동네 카페에서 같이 흑임자라테를 마시는데, 그 동창이 호칭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동갑인데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나한테 원하는 호칭이 있는지 물었다.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므로 호칭을 빼고 부르다 보니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거였다. 생각해보니 딱히 원하는 호칭은 없어서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아이 친구 엄마들을 오랫동안 만나고 있는데, 서로 이름을 부른다는 거였다. 나는 눈치와 센스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누군가 내 바운더리 안에 너무 가깝게 들어오는 게 살짝 겁이 났던 건지 쑥스러웠던 건지 그 말을 듣고도 "그럼 우리도 다 떼고 이름 부르자~"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그때 호칭 정리를 끝냈어야 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그 거리감만큼 그 동창은 나를 "~~씨"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도 자주 부르지는 않고, 꼭 필요할 때만 부른다. ^^

홍길동도 아닌데 나는 상대의 이름이 편하게 나오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더 사회성이 부족해지는 건지, 아니면 조심스러워지는 건지, ISFJ 성향이라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면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난 건지도,, 

다정함도 아니고 친절함도 아니고 고작 호칭일 뿐인데, 그 쉬운 일조차 나에게는 참 어렵다.

그 호칭부터 정리해야 친밀함의 밀도도 깊어질 것만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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