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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 구로타 사부로 

시 읽기

by 박둥둥


그때

나는 멍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열차를 기다리듯이

죽을 차례를 기다리며

이 세상에 행렬을 만들고

멍하게 줄을 서서

매표소에서

과장이나 주임 밑에서

옥외식당에서

지옥문에서

어디에 섰었든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성실하게 서 있는 내 안에서

하루는 한 해처럼

한 해는 하루처럼 흘러가 버리고 만다.

아!

그랬던 때에

그대가 바람처럼 내 안으로 춤추며 날아들어

눈 깜짝할 새에

나를 이 세상의 행렬에서 밀어냈다.

그랬던 때 조차

나는 변힘없이 담배를 물고

서 있을 뿐이었다.


-구로타 사부로(1919-1980) 는 1919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했고 1954년 <혼자 있는 여자> 라는 첫 시집을 발표했다. 주로 일상과 인생에 대한 성찰을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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