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훗날 / 포루그 파로흐자드

시 읽기

by 박둥둥

언젠가는 내게 죽음이 찾아오리라

햇빛 충만한 봄날에

온통 안개의 나라가 되는 겨울날에

혹은 열정과 절규가 사라진 가을날에

언젠가는 내게 죽음이 찾아오리라

이토록 아프고 행복한 날들 중 어느 날에

어제와 마찬가지로 허무한 날에

오늘의 그림자가 지난날의 그림자와 같은 어느 날에

내 두 손은 詩作 노트를 천천히 어루만지지만

더 이상 시의 마법은 통하지 않으리라

나는 기억해 내리라

한때는 내 두 손에서 피에 물든 시가

뜨겁게 타오르던 것을

(중략)


한 이방인이 내 기억을 갖고

내 작은 방에 발을 들여놓으리라

그 자리 거울 한가운데 남은 것은

한 줌의 머리카락과 손자국과 하나의 빗

나에게서 벗어나 진정 나 홀로 남게 되리라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모두 재가 되리라

내 자랑스러운 이야기도,

부끄러운 이야기도 잊은 채

내 무덤은 길가에 잊혀진 이름으로 남으리라


****

포루그 파로흐자드(Forough Farrokhzad,1934-1967)는 이란의 여성시인이자 영화인이다.

테헤란 출신으로 열여섯에 결혼했고 열일곱에 엄마가 되었지만, 이슬람 전통에 당당히 맞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3년 만에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스무 살에 첫 시집 '포로'를 발표했다. 이란의 정치적 격동기 속에서 예술을 사랑하며 수많은 남성들을 섭렵하며 시처럼 음악처럼 만화처럼 영화처럼 격정적인 영혼을 불태웠던 것으로 전한다.

영화인으로서는 1963년 영화 《검은 집》을 통해 잘 알려져 있으며, 영화는 이란 뉴웨이브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