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 『미국을 노린 음모』
한 줄 요약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아이의 눈으로 고발한 대체역사소설의 걸작.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트럼프의 당선 이후 미국 서점가에서 『미국을 노린 음모』가 역주행 중이라는 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그때만 해도 이 책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비명을 찾아서』처럼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대체역사물이라는 점에서, “내가 이런 장르를 좋아하던가...” 하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몰랐다.
이 책이 그렇게 아픈 이야기일 줄은.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미국의 파시즘과 소수자 배척, 그리고 정치의 위험한 흐름을 예리하게 묘사한 소설이라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필립 로스 자신의 이야기다.
비록 ‘대체역사’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그 속에 담긴 가족의 분열,
그리고 한 소년이 그 조각난 가정을 어떻게든 붙잡고자 애쓰는 모습은
작가 자신의 기억과 통증에서 나왔다.
읽다 보면, 그 시절 뉴저지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세상의 변화를 어린 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작은 ‘필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이 작품이 끝끝내 마음을 할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소설의 배경은 가상의 역사다.
2차대전 직전, 루즈벨트가 아닌 찰스 린드버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는 실제로도 대중의 지지를 받던 전직 파일럿이자, 나치에 우호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필립 로스는 묻는다.
“만약 그런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미국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질문은 소설 안에서 천천히, 그러나 무섭게 전개된다.
이 소설의 진짜 무서움은, 린드버그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유예(猶豫)의 시간 동안, 유대인 공동체 내부가 조용히, 그러나 뚜렷하게 분열되고,
사람들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 무기력함, 그 침묵,
그 내부에서 자기 목을 스스로 조여오는 유대인 사회의 현실적 묘사는
오히려 가상이 아닌 현실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는, 이 과정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어린 주인공 ‘필립’의 눈을 통해 미국이라는 국가의 본질적 가치를 되묻게 된다. 필립의 아버지는 끝까지 린드버그를 의심하고, 형은 린드버그 체제 아래서 출세를 꿈꾸며 가족의 기대를 배반한다.
그 균열 속에서, 어린 필립은 묻는다.
“우리는 어떤 ‘빛’을 따라야 하는가?”
린드버그가 말한 찬란한 영광의 빛이 아닌,
필립이 끝내 붙잡은 건
자유를 비추는 한 줄기 촛불,
어둠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용기였다.
트럼프의 시대, 이 책이 다시 읽히는 이유는 그래서 명확하다.
『미국을 노린 음모』는 단지 가상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은유이자 경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 촛불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