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에 있던 2016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집어 들었다.
그중 대상 수상작인 조해진의 〈산책자의 행복〉 은,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를 좋아했던 이유와 같은 결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지금, 이 ‘현재’라는 시간은 사실 단일하지 않다. 여러 겹의 과거가 겹겹이 포개져 흐르고, 움직이고, 때로는 아파하며, 변화를 이룬다. 단편이라는 제한된 길이 안에 이렇게 다층적인 시간과 감정을 담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이 작품은 비유와 상징, 과도한 생략과 은유를 최소화하면서, 평범한 독자들도 거부감 없이 소설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둔다.
문학은 수치화할 수 없는 영역이라 어느 작품이 더 뛰어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오히려 하루키의 장편보다 나은 점을 발견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장편이 가진 시간적·서사적 이점을 내려놓은 채로도, 복잡한 지층을 그대로 품어내는 완성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작품 속 질문은 간결하지만 깊다.
살고 싶은 욕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이 물음이, 작품이 보여주는 시간의 흐름이 시작되는 지점에 놓여 있다.
그리고 독자는 그 질문을 붙잡은 채, 서로 다른 시공간과 인물들의 결을 더듬어가며 산책하듯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읽고 나면, 단편이 품을 수 있는 세계의 깊이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