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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담은 겨울의 이야기- 조해진, <겨울을 지나가다>

by 박둥둥

조해진의 『겨울을 지나가다』는 제목처럼 차가운 계절을 지나 따뜻함에 닿는 여정을 담은 소설이다. 한 줄 한 줄 읽다 보면, 그 따뜻함은 불꽃처럼 화려하게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은근하게 번져와 마음 한쪽을 천천히 덥힌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어쩌면 평범하다. 다정한 엄마를 추억하는 딸이 등장하고, 그 기억 속에서 삶과 사랑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요즘 문학 속에서 자주 만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해진의 글은 뻔함을 넘어서는 힘이 있다. 화려한 장식이나 과도한 감정의 부풀림 없이, 담담한 문장으로 끝까지 독자를 이끈다. 그것은 마치 힘주어 연필로 또박또박 쓴 편지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그러나 그 안에 깊이 스민 온기와 정성이 전해진다.


작품 속 칼국수 한 그릇처럼, 이 소설의 문장은 슴슴하다. 간이 세지 않지만, 먹다 보면 그 담백함이 오히려 깊은 맛이 되어 오래 남는다. 극적인 사건 전개나 눈을 사로잡는 반전 대신, 이야기의 온도는 일정하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그 온도가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무른다.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기보다, 아주 오래전 나를 감싸주던, 나만의 냄새가 배어 있는 어린 시절의 담요를 다시 꺼내 덮은 것 같은 기분. 그 안에서 나는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을 천천히 더듬게 된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 만날 수 있는 작가의 편지까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 편지는 작품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독자에게 직접 건네는 작은 위로처럼 느껴진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문장에 대한 많은 영감을 얻을 것이다. 필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이 책은 화려함을 걷어내고, 진심만 남았을 때 문장이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겨울을 지나가다』는 겨울이라는 계절을 통과하며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게 해준다. 그것이 아주 작은 온기일지라도, 그 온기는 우리가 다시 봄을 맞을 힘이 되어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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