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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과자의 자존심 – 토라야(虎屋)의 이야기 ①

by 박둥둥

얼마 전 일본 스레드에서 웃지 못할 글 하나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해외에 주재 중인 남편 덕분에 일본 선물을 자주 받는 어느 이용자가, 그중에서도 가장 애물단지가 바로 토라야 양갱이라고 털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발끈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토라야는 500년 넘게 황실에 과자를 납품해온, 화과자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토라야의 시작은 사실 뚜렷하지 않다. 나라시대부터 황실에 과자를 바쳤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증거는 없다.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1580년 무렵, 고요제이 천황 시대에 토라야가 황실에 과자를 납품했다는 흔적이다. 그렇다면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문을 열고 있었을 거라 짐작할 수밖에 없다.


또 재미있는 설도 있다. 토라야를 세운 쿠로카와(黒川) 가문이 사실은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이야기다. 초기 토라야의 인기 상품이 바로 ‘만쥬’였는데, 밀가루 피에 단팥을 넣은 이 과자가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기에, 쿠로카와 가문이 비밀스레 제조법을 가져온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일단 토라야의 이름이 처음 기록에 등장한 건 무로마치 말기였다. 황실에 과자가 필요한 이유는 제사였다. 천황은 신의 자손으로서 제사를 주재해야 했고, 그때 바쳐지는 공물에 과자가 포함되었다. 원래는 고기와 과일이 주를 이루었지만, 불교의 영향으로 살생을 피하게 되면서 동물이나 꽃을 본뜬 과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설탕은 오늘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귀한 재료였다. 인류가 단맛을 맛보는 방법은 꿀을 먹는 것뿐이었고, 곡식을 아낌없이 쓰며 꿀과 설탕까지 곁들여 만든 과자는 그 자체로 호사였다. 술처럼 귀하게 여겨져 흉년에는 함부로 만들다간 벌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 시절, 황실이 인정한 과자가게가 된 토라야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특히 전국시대에 다도가 유행하면서 차와 곁들일 달콤한 과자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자, 토라야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듯 커졌다. 단순한 단맛을 넘어, 전통과 격식을 함께 담아내는 이름으로 자리 잡아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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