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과자가 되어라
일본의 전통의상이라 하면 대체로 치마 통이 좁은 기모노를 떠올리지만 헤이안 시대 궁정 여인들이 입던 주니히토에라는 기모노는 여러 겹의 얇은 옷을 레이어드 식으로 겹쳐 입어 계절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자기만의 패션센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런 쥬니히토에와 닮은 케이크가 크레이프 케이크이다. 정확히는 밀 크레이프 케이크이라 하는데 프랑스어로 1000을 뜻하는 밀이자 밀푀유의 밀이라는 말에 크레이프를 더해 만든 상품명이었다.
프랑스어로 된 이름이었지만 크레이프 케이크는 사실 이 시리즈에서 소개하는 다른 과자들처럼 일본에서 태어난 양과자의 탈을 쓴 화과자였다. 크레이프 케이크를 처음 만든 곳이 어디냐는 것을 두고 여러 주장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니시아자부에 있던 과자집 루엘 드 도리엘에서 밀피유의 딱딱한 식감을 어색해하던 일본인을 보고 크레이프 생지를 겹겹이 쌓아 부드러운 일본식 밀피유라는 뜻으로 밀 크레이프라 이름 지어 처음 도입했다는 것이다.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밀 크레이프는 의외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결국 레귤러 메뉴에서도 내려가서 미리 예약을 하면 만들어주는 특별메뉴로 근근이 팔리는 굴욕을 당하던 중, 크레이프의 겹 안에서 가능성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일본의 전국적인 카페 체인인 도토루커피의 상품개발팀이었다. 도토루는 루엘 드 도리엘을 설득하여 도토루에서 크레이프 케이크를 팔 수 있도록 허가를 얻는다. 그리고 순수한 밀크 크림이 겹겹이 겹쳐진 부드러운 케이크이라는 이미지를 도토루의 이미지와 함께 묶어 크레이프를 도토루의 시그니쳐 메뉴로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맥도널드를 만든 건 맥도널드 형제였지만 세계적 체인인 맥날을 만든 건 레이 크록의 능력이었듯이, 새로운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결과 크레이프 케이크는 이젠 일본의 케이크집과 카페에서 기본 케이로 진열되는 게 당연한 정석적인 메뉴로 올라섰다
부드러움 안에 더 촉촉한 부드러움을 수줍게 숨긴 이 케이크에서도 일본인인들은 화과자의 영혼을 찾아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