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과자가 되어라
이 시리즈는 이젠 화과자의 영역에 들어간 양과자에 대해 알아보는 글이다.
그래서 화과자가 된 양과자의 대표, 일본 푸딩에 대한 조사를 하다 보니 다른 디저트와는 다른 큰 특징이 있었다.
지금까지 알아본 다른 화과자풍 양과자는 모두
<1. 서양의 어떤 디저트가 2. 일본에 와서 일본의 어떤 가게가 주도적으로 일본인 입맛으로 개량 3. 대성공 후 일본화되어 유통> 이라는 흐름을 따랐던 반면, 푸딩은 자료를 아무리 찾아도 이런 주도적인 가게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도입과 거의 동시에 집집마다 만들어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자회사 글리코가 자사 푸딩제품이 푸딩의 정석을 제시한 제품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이 제품이 나온 70년대는 집집마다 푸딩을 먹던 때라서 일본 푸딩 역사의 시발점이라 보긴 어렵다.
푸딩이라는 요리는 영국요리다. 대항해시대 푸딩은 배 안의 남은 야채와 과일, 고기 등을 계란물에 다 집어넣고 쪄먹는 섞어찌개 비슷한 짬처리 요리였다. 이후 산업혁명과 식민지에서의 설탕 유입 등으로 푸딩은 점차 디저트로 개량되어 갔다.
그러나 이러한 영국의 푸딩은 일본 푸딩에 비교해 보면 그저 이름만 빌려준 것에 가깝다. 그나마도 푸딩이라는 말을 잘못 들어 일본어로는 푸링(プリン)이라 부르니 아예 다른 요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 영국에서 먹는 크리스마스 푸딩은 사진에 나온 것처럼 일본 푸딩과는 영 생김새부터 다르기도 하고.
지금의 일본 푸딩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준 건 프랑스 요리인 크림 캐러멜이었다. 달걀과 생크림, 설탕을 베이스로 하는 이 달콤한 디저트는 막부 말기 일본에 처음 소개되어 메이지 시대에 우유소비와 양식섭취를 장려하는 문화에 힘입어 각 가정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다른 디저트보다도 푸딩이 일본의 가정을 중심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오븐이 필요 없는 일종의 달걀찜이었기 때문에, 자완무시라는 달걀찜을 먹고 있었던 일본 가정으로서는 거기 설탕과 우유를 좀 넣었다는 식으로 어렵지 않게 최신 유행 서양 디저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쇼와 초기에 이미 푸딩은 각 가정에서 작은 단지에 만들어 먹는 보편적인 디저트가 된다. 각 카페에서는 통조림 체리를 더하고 자신들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푸딩은 일본인의 마음에 더욱 깊이 파고들게 된다. 여기에 패전 이후의 경제 부흥은 푸딩의 부흥이라 불러도 무방했다. 각 가정에 냉장고가 보급되며 푸딩은 대량생산되고 한편으로 푸딩은 고급화되어 백화점도 점령한다.
나아가 아까 언급한 제품으로서의 푸딩의 기준을 세운 기념비적인 작품인 글리코의 푸친푸링(プッチンプリン) 이 1972년 발매된다. 또 이에 자극을 받은 오하요의 야키푸링(焼プリン)이 1992년 발매되며 푸딩은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푸딩의 전성시대는 곧 일본의 전성시대였던 것이다.
어릴 때 엄마가 해 주신 병에 든 푸딩, 학교 끝나고 돌아와서 냉장고에서 꺼내먹던 푸딩, 백화점에서 콘비니에서 슈퍼에서 좋아하는 푸딩을 장바구니 마지막에 슬쩍 넣어본 기억은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추억이다. 푸딩은 작은 단지 속 모두의 오랜 친구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