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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 / 강성은

시 읽기

by 박둥둥


고양이가 책상 위에 잠들어 있다

고양이를 깨우고 싶지 않아

나는 따뜻한 음식을 만들기로 한다

손에 든 감자 자루를 놓치자

작은 감자알이 끝도 없이 굴러 나온다

쏟아지는 감자를

어찌할 수 없어 멍하니 바라보는데

갑자기 라디오가 켜지고

어제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와

밖에선 종말처럼 어두운 눈이 내리고 있고

나는 이제 잠에서 깨버릴 것 같은데

집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고양이가 너무 오래 잔다


-강성은(1973-) 1973년 11월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났다. 2005년 문학동네에 「12월」 외 5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 『Lo-fi』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가 있다. 2015년 『더 멀리』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후 느리게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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