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미국 국적 친구를 기다린다
심야 공항 터미널은 지나치게 환하다
그녀에게 이 도시를 어떻게 소개할까
(중략)
맞은편 의자에 앉아 통화하는 사람은 미소를 띤다
왼쪽 옆으로는 불매운동중인 제과업체의 체인점이 있다
빵공장 기계에 끼여 숨진 노동자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플라스틱 빵처럼 내 표정은 굳어 있다
(중략)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습격한다
밀려내려가다 꼼짝없이 매몰되었던 사람들
필시 친구는 알고 있을 텐데
이미 소설 미디어를 통해 경악했을 텐데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는
그 도시가 더이상 자동차의 도시는 아니라고 했다
파산 직전의 공장들과 슬럼가를 찍은 사진을 보내왔었다
그녀에게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설명할까
자동차가 아닌, 사람의 도시라고
최소한 총성이 울려퍼지지는 않는다고 덧붙일까
(중략)
말할 수 없겠지
내가 사랑하는 도시라고
(중략)
네가 예민한 건 아니야
친구가 와서 나를 안아주면
환영한다는 말을 잊지 말아야지
-김이듬(1969-) 은 2001년 시 전문지 포에지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가 있다. 시와세계작품상, 김달진창원문학상, 22세기시인작품상, 2014올해의좋은시상, 김춘수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히스테리아』의 영미 번역본이 전미번역상과 루시엔스트릭번역상을 동시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