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너희들은
상처 투성이의 나의 詩들,
야위고 쇠약해진 두 날개와
장난끼로 두리번거리는
두 촉각을 가진
붕대 투성이의 나의 詩들,
주둥이에는
異國製의 단단한 재갈이 물려지고
손발 하나하나에는
족쇄, 수쇄,
절컥절컥
쇠사슬 소리를 무섭게 울리는 나의 詩들,
너희들은
상처 투성이의 나의 詩들,
이제야말로 일어나라
이제야말로 어깨를 겯고
한 줄로 서라,
우리들 상처입은 사람들,
우리들 시달린 사람들의
시대가 온다
이제야말로 쇠사슬을 울리며 일어나라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지만
하지만
사람들은 더이상 아무도 잠들어 있지 않는다
(중략)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지만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리 밤이 길어도
그 뒤에 아침이 온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너희들은
상처 투성이의 나의 詩들,
(중략)
우리들 상처입은 사람들,
우리들 시달린 사람들의
시대가 온다,
이제야말로 쇠사슬을 울려 그것을 알리자,
이제야말로
이제야말로 그것을 노래하자
-허남기(許南麒19181988)는 초기 재일코리안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1939년 일본으로 유학을 와서 니혼대학 문예과를 전공하였고 같은 조선인 유학생들과 희곡을 집필하여 공연하기도 하였으나 조선인이 조선어로 문학을 집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던 시대였기에 그의 이런 활동도 당국의 제제를 받게 된다.
해방 이후 일본의 조선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던 그는 시대의 흐름 상 재일교포에게 그나마 온정적인 관심을 보여준(재일교포 북송사건에서 나타나듯이 그것도 진심은 아니었음이 후에 드러났지만 당시엔 남한보다는 북한이 재일동포에 더 저극적인 관심을 보인 건 사실이다) 총련에 가입하여 이후로는 59년에 《재일조선문학예술가동맹》의 대표가 된다.
1988년 세상을 뜰 때까지 그의 시는 조국의 통일과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서의 표현에 집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