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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천천히 / 이병률

by 박둥둥


떨어지는 꽃들은 언제나 이런 소리를 냈다


순간

순간


나는 이 말들을 밤새워 외우고 또 녹음하였다

소리를 누르는 받침이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그 받침이 순간을 받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새벽에 나는 걸어

어느 절벽에 도착하여

그 순간순간의 ㄴ들이

당도할 곳은 있는지

절벽 저 아래를 향해 물었다


이번 생은 걸을 만하였고

파도도 참을 만은 하였으니

태어나면 아찔한 흰분홍으로나 태어나겠구나

그렇다면 절벽의 어느 한 경사에서라면 어떨지


그리하여 내가 떨어질 때는

순간과 순간을 겹겹이 이어 붙여

이런 소리를 내며


순간들

순간들


아주 아주 먼 길을

오래 오래 그리고 교교히 떨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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