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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 / 김지하

시 읽기

by 박둥둥


무엇이 여기서

무너지고 있느냐

무엇이 저렇게 소리치고 있느냐

아름다운 바람의 저 흰 물결은 밀려와

뜨거운 흙을 적시는 한탄리 들녘

무엇이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느냐

참혹한 옛 싸움터의 꿈인 듯

햇살은 부르르 떨리고

하얗게 빛바랜 돌무더기 위를

이윽고 몇 발의 총소리가 울려간 뒤

바람은 나직이 속살거린다

그것은 늙은 산맥이 찢어지는 소리

그것은 허물어진 옛 성터에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붉은 산딸기와

꽃들의 외침소리

그것은 그리고

시드는 힘과 새로 피어오르는 모든 힘의 기인 싸움을

알리는 쇠나팔소리

내 귓속에서

또 내 가슴 속에서 울리는

피끓는 소리

잔잔하게

저녁 물살처럼 잔잔하게

붓꽃이 타오르는 빈 들녘에 서면

무엇인가 자꾸만 무너지는 소리

무엇인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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