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우주에서 태어나
우주 안에 있는 내가
어쩐 일인지
그 우주에서 벗어나 있다
그래서, 나는 쓸쓸하다
그대와 있어도 쓸쓸하다
하지만, 다시, 이따금,
나는 우주로 돌아가
내가 우주인지
우주가 나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때, 내 심장은 우주의 심장
그때, 내 눈은 우주의 눈
그때, 내가 울면
만사를 잊고 울면,
틀림없이 비가 내리지.
그래도 오늘 나는 쓸쓸하다.
우주에서 떨어져 있다.
그대와 있어도 나는 쓸쓸하구나.
-요사노 아키코(与謝野晶子,1878-1942) 는 메이지 시대~쇼와 시대에 활동했던 일본의 시인이자 번역가이다. 메이지 시대 대표적 신여성 중 한 명이었고, 여성문학 및 여성해방운동에 관여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1878년, 오사카의 화과자점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그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돕느라 바쁜 생활을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늦게 일이 끝나고 나서도 부모의 눈을 피해 가며 여러 문학 작품을 읽어 왔다. 그 때 일본의 고전 명작이라 불리는 겐지모노가타리, 마쿠라노소시, 에이가모노가타리 등을 탐독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제국대학에 들어간 오빠가 보내주었던 당대의 문예 잡지들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당대의 유명한 시인 '요사노 뎃칸'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요사노 뎃칸과 그 제자들과 함께 묘조(明星)라는 동인잡지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스승과 결혼하게 되는데, 이에 관해 같은 문하생이자 친구인 야마가와 도미코(山川登美子)와 요사노 뎃칸을 두고 경쟁을 펼치게 되었던 것이 유명하다. 당시 아키코는 20세 초반. 그런데 요사노 뎃칸은 이미 부인이 있었다. 심지어 뎃칸과 그 부인 사이에 아이까지 있었다.
이후 가집을 내게 되는데 그것이 '헝클어진 머리칼(みだれ髪, 미다레가미)'이다. 자전적 성격의 시집으로서, 작가 자신의 연애 경험이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당대 여성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담대하고 과감한 표현을 사용하였기에 큰 이슈가 되었다. 제목에서도 추론할 수 있는 점은 여성이 격한 정사 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표현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고, 샤워 후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뜻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어쨌든 관능미 넘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리려 했던 것은 확실하다.
실제 내용면에서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연애 관계를 그대로 반영한 듯 자유분방한 연애 관념, 정열적이고 풍부한 가풍을 보여주었다. 유부남을 꼬시려면 엄청난 열정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의지 등을 표현한 시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표현이 저급한 것도 아니었고 참신하고 미적이었기 때문에 당대의 젊은 남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하여 얻게 된 별명은 '정열의 가인'. 근대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아직 봉건적 관습을 타파하지 못했던 당시 시대상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러일전쟁에 참전하게 된 동생의 무사귀환을 기리며 쓴 시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君死にたまふことなかれ, 1904)가 또 다른 의미로 세간의 집중을 받게 된다. 요사노 아키코가 이 단카를 발표했던 시기는 한참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라, 동정론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참고로 남동생은 무사귀환해서 가업인 화과자 가게를 물려받아 잘 살다가 1944년 사망했다.
작품 활동이 뜸해진 요사노 뎃칸을 대신해서 잡지 '묘조'의 간행에도 힘써 왔다고 한다. 말년에는 등단 초기에 보여주었던 불꽃 같은 문체나 패기는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작품 전반적으로 사색적이고 깊이가 생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특히 관심을 보였던 부분이 여성인권 신장이었다. 직접 학교를 세울 정도로 교육 쪽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시가문학 뿐 아니라 소설, 수필, 고전 연구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였다. 특히 겐지모노가타리의 구어판을 출간하기도 하는 등 고전문학의 현대어화에 노력했는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현대어역본과 더불어 양대 역본으로 칭송받는다.
1942년 뇌일혈로 사망하기까지 그녀는 20권, 5만 여 수의 단가를 남겼다. 참고로 뎃칸은 아키코보다 7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그에 대한 만가(挽歌,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많이 지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