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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상 Irondenker Jun 03. 2024

‘고꾸라진 별’을 위한 아니리

아이돌은 수도자로서의 특징을 대중에 의해 표방토록 강요받는가?



그 누구보다 세속적인 환경에서 세속적인 가치를 표방하나, 대중은 그 삶에서 수도사의 모습을 요청한다. 삶 속에서 한 점 티끌없는 무결성을 요구한다. 그러기에 아이돌에게 기대하는 삶의 형태는 참으로 역설적이다.


어떤 연예인이 안 그러겠냐마는, 아이돌은 단순히 춤과 노래만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현대 사회 속에서 말 그대로 "우상"으로써 그들의 캐릭터는 소모되고 있다. 좋아하고, 사랑하고, 때로는 감화되기도 한다. 동시에 싫어하고, 혐오하며, 상호 간 아주 사소한 마찰로도 부적절한 원한을 사기도 하며(대부분 과대망상적인 오해에서 기인한다), 흔하게 성적 대상화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이러한 행위들에 긍정과 부정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위의 표현은 해체적으로 작성되어 미묘하게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 뿐이지 사실상 아이돌은 "불특정 다수에 의한 감시적 행태" 아래 놓여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캐릭터라는 말에 초점을 맞춰보자. 아이돌이 대중 앞에 드러내는 모습은 당연하게도 그들의 본모습이 아니다. 의도하건 의도치 않았건, 그저 본모습이 일부 투영된 만들어진 인격 내지는 성격적인 역할극에 가깝다. 예전부터 '컨셉'이라는 표현이 흔하게 쓰이는 것부터, 대중의 수요와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그들의 설정과 행동패턴을 바꾸어버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애초에 그들의 모습과 성격이 그들의 온전한 선택과 의지만이 투영된 결과물이긴 한가(높은 확률로 외부의 개입이 들어 올 것이다)? 어느쪽이라고 해도 우리 눈에 보이는 그것이 "본래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힘들 것이다.


위의 서술은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혹은 못하는 아이돌을 비난하고자 작성된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런식으로 '가면을 쓰고 있다'고 보는 것이 그들의 신상에 이로울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언제나 진실될 수는 없으며, 아주 어릴 적부터 특정한 삶의 태도를 견지하며 일관성있게만 살아갈 수도 없다. 누구든 삶의 가치관이 변할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도 우리는 사춘기와 방황을 통해 이미 충분히 '변화할 수 있음'을 느끼고 보며 자라왔다. 그것이 매체에 노출되어 활동하는 사람이라 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가끔 그들도 사람이라는 점을 잊고,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일관성과 진실성을 요구하며 이따금씩 그들의 가치관을 투영하고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가? 시대가 뒤바뀐만큼 그 말도 바뀌어야 한다. 아이돌의 정신은 급속도로 황폐화되고 있고, 점점 그 추세는 양성화되고 있다. 아이돌을 대하는 태도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삭막한 정신상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은 일리 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사람들의 정신적 재정비와 생활 양식의 변화가 필요한 것도 맞다. 하지만 그들을 감진기(感震器)로써 수단화하기 이전에, 그들 또한 사람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었다고, 무대 위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다수가 던진 행태에 맞아 다치거나 죽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행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우리의 손으로 장사지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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