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존’을 역설하는, 가장 서투르고 멋없는 자기성찰
지금의 나는 모든 이의 기호와 취향, 관심사를 최대한 인정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자 노력한다. 가끔은 너무 기계식으로 보이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한다. 그냥 “너 착한 척하는거 어필하는 게 아니냐” 라고 할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자랑거리는 아니고 그냥 성격 상 ‘우유부단함’을 좋게 승화시킨 것으로 보아주면 고마울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특히 무시를 행하는 주체의 취향이 ‘소수’에 가까울수록 나는 발작적인 혐오감을 느낀다. 최대한 경멸을 누그러뜨리려 해도 표정으로 다 새어나오더라.
중고교 시절 나는 ‘찐따’였다. 적어도 소위 말하는 인싸 체질의 사람이 아니었다. 가진 감성도 평범한 취향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입으로 인정하긴 부끄럽지만 ‘힙스터’에 가까웠다. 동시에 항상 온갖 분야에 ‘힙스터’스러운 주제를 찾지만 완벽히 빠져들거나 속하지 않는 아웃사이더, 그마저도 알만큼 알고 흥미가 떨어지면 그냥 떠나버리는 뱀새끼, 오타쿠가 되고 싶으면서 그 분야의 오타쿠가 가진 안 좋은 인식은 가지기 싫어하는 체리피커였다.
주변엔 생각보다 많은 ‘힙스터’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대부분 혼자 있었던 나에게 다가와서 자신의 ‘흥미’ 분야를 나에게 침까지 튀겨가며 장황하게 몇 날 며칠을 계속해서 설명했다.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그들도 그 분야를 좋아할 테니까,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관심사를 묵묵히 계속 들어주었다. 생소한 지식을 계속 쌓는 느낌이라 버틸만했고, 솔직히 때때로 내가 정말 모르는 분야가 나오면 살짝 재밌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그 ‘힙스터’에게 내 관심 분야에 대해 딱 한 마디를 했다. 그때의 내 관심사는 ‘캠핑’이었고, 솔로캠핑을 가고 싶기에 마음에 드는 2인용 텐트를 발견하고 그것을 그에게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말하자마자 나오는 반응은 “텐트를 왜 사”, 끝에 물음표를 올릴만한 물음의 목적이 아니었다. 차라리 느낌표에 가까웠다. 그의 어투는 “아니, 도대체 그런 걸 왜 하냐, 그런 걸 왜 관심 갖냐”라는 다소 이해할 수 없겠다는 반응에 가까웠다. 그렇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스러운 반응을 넘기고, 아무렇지 않게 그는 그의 관심 분야를 자연스럽게 내 귀에 쑤셔박기 시작했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그 힙스터’를 더 이상 이해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까지 이해심으로 끌어안지 못하고 또다시 ‘나는 꼭 이딴 새끼처럼 되지는 말아야지.’ 하고 생각해버리는 체리피커가 되었고, 진정한 의미의 ‘찐따’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