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키 아빠 Jun 03. 2022

작고 여린 생명, 기적을 선물하고 떠나다

길고양이 봄이, 그리고 애옹이가 만들어낸 작은 기적

고양이 별로 떠난 봄이 Ⓒ luke wycliff
고양이 별로 떠난 봄이 Ⓒ luke wycliff

작고 어린 생명이 요 며칠 가뿐 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고 끝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3일간 우리 집에 머무르다 떠난 길고양이 ‘봄이’ 이야기다. 


요사이 아내는 길고양이 챙기는 데 말 그대로 온 몸을 ‘갈아 넣는’ 중이다. 아산시 배방읍 철거촌 일대 길고양이들을 챙겨주는데, 난 우스갯소리로 아내를 '배방읍 길고양이 대모'라고 부른다. (이 이야기는 따로 써볼까 한다)


그런데 하루는 거의 다 죽어가는 아기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집에 데려왔다. 그때가 지난달 30일이다. 


첫 눈에 보기에도 너무 안스러웠다. 아내가 그러는데 병원에선 복막염이라고 했단다. 아내는 병원에 데려가 입원시켜보려 했지만, 주위에서 가망 없다며 마지막 가는 길 잘 돌봐주라고 권했다. 그래서 이 아이를 집에 데려왔다. 이름도 지어줬다. 봄에 태어났다 하여 ‘봄이’라고. 


봄이는 ‘야옹’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나 했다. 기적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 집 둘째 애옹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지난 4월 초 아내는 돌보던 길고양이 한 녀석을 데리고 왔다. 봄이 처럼 거의 다 죽어가던 아이였다.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은 기색이 역력했고, 영역싸움에서 밀렸는지 얼굴에 상처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구내염(고양이 입안, 혓바닥, 목구멍까지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 - 글쓴이)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아내는 그런 녀석이 가엾었는지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곤 며칠 데리고 있다가 다시 방사하겠다며 통사정 했다. 그리곤 ‘애옹 애옹’ 운다하여 이름을 애옹이라 지었다. 진짜 다른 고양이가 ‘야옹’하고 운다면, 이 녀석은 ‘애옹~”하고 운다. 아내는 고양이 이름에 관한 한 연금술사다. 


난 애옹이를 그냥 길에 돌아가게 하고 싶진 않았다. 첫째 고양이 쿠키랑 지내면서 둘째 입양도 생각하고 있던 터라 그냥 애옹이를 가족으로 맞이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시 봄이에게로 가자. 봄이는 처음엔 낯설어 했다. 날 보더니 침대 밑으로 숨었다. 그런데 암컷인 애옹이가 부르니 쪼르르 달려온다. 애옹이는 봄이를 마치 엄마 고양이가 새끼들 핥아주는 것처럼 핥아줬다. 하루가 지나니 봄이는 애옹이를 엄마로 알았는지, 젖을 찾는다. 애옹이가 젖이 나오지 않는데도. 


이 모습 보니 봄이가 건강을 회복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봄이 끌어안으며 어서 회복되어 좋은 양부모 만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3일에 그친 기적 

우리 집 둘때 고양이 애옹이는 3일간 봄이 엄마 노릇을 했다. Ⓒ luke wycliff
봄이는 떠나기 전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애옹이도 그 모습이 안스러웠는지, 봄이를 꼭 끌어 안았다. Ⓒ luke wycliff

하지만 기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봄이는 2일 아침부터 유난히 숨 가빠했다. 딱 보기에도 오늘 하루가 봄이에겐 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작고 어린 생명이 숨 쉬기조차 가빠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다시 애옹이가 등장했다. 애옹이도 봄이가 가엾었는지, 꼭 끌어안아줬다. 봄이는 오후가 넘어선 잠시 기력을 회복하는 듯 보였다. 아내는 급히 귀가해서 봄이 곁을 지켰다. 그러다 밤중에 잠깐 길고양이 밥 챙겨주러 나갔다. 


그 사이엔 내가 봄이 곁을 지켰다. 밤 10시가 지나면서 봄이는 그 작은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눈도 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순간 직감했다. 봄이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는 걸. 그래서 아내에게 얼른 집에 오라고 호출했다. 아내가 집에 왔다. 봄이는 아내와 약 30분 정도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굉장히 고통스러워 하다가 숨을 거뒀다. 그때가 3일 0시 19분께였다. 


봄이의 이 세상 마지막 순간 떠올리면 눈물만 흐른다. 고양이 하나 떠나보낸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핀잔 들을 수 있겠지만. 


참으로 작고 어린 생명이 감당하기 어려운 병을 얻었음에도 살려고 발버둥치다 마지막 순간에 고통스러워하며 숨을 거둔 모습이 너무 가엾어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힘든 일인가 보다. 


더구나 3일이란 짧은 기간 동안 봄이가 건강을 회복해 좋은 양부모 만나고, 그래서 묘생역전 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또 잠깐 동안 나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슬프다. 


여기서 애옹이에게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애옹이는 친엄마가 아님에도 3일 동안 봄이의 친엄마 노릇을 했다. 봄이는 떠나기 전, 너무 고통스러워 했다. 애옹이는 그런 봄이를 애처로이 여겨 곁을 내줬다. 애옹이에게서 고양이란 종족이 위대한 종족임을 사뭇 깨닫는다. 


봄이야,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웠어. 그리고 지켜주지 못해서, 건강하게 살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봄이가 고양이별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아빠가 간절히 바랄께. 


그리고 고마워. 떠나기 전 엄마 보겠다고 죽을 힘을 다해 버텨줘서, 그래서 자신을 돌봐준 이들을 기억하고 떠나줘서. 


작가의 이전글 러시아 승리할 수 없는 이유, 이 다큐에 답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