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feat.쫄라)_제시어 받아 글쓰기

by ironmin

콘텐츠: 제시어 받아 글쓰기

기획: 사부작 대리

참여: 쫄라 (특징: 영화리뷰에 종종 등장)

방법: 참여자가 제시어를 던지면 받아다가 글로 씁니다.

제시어: 결혼








제목: 미친 짓


직장 동료가 한동네에 산다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후줄근한 옷차림은 긴 바지와 단정한 셔츠가 오랜 시간 만들어 준 적당한 거리감을 잊게 만들곤 한다.


그런 점에서 한 차장이 말수가 별로 없다는 건 고 씨에겐 고마운 일이었다.


그들은 집 앞 낡은 놀이터에서 자주 마주쳤다. 출퇴근 시간이 같은 데다가 흡연자가 가진 비슷한 습관으로, 하루에 두 번, 세 번 마주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한 차장은 회사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어지간해선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고 씨도 썩 애살맞은 성격은 못됐다. 그래서 둘은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 정도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눈인사조차 서로 건네지 않았다. 처음엔 그것도 불편했지만, 이젠 고 씨도 적응이 됐다.




이렇다 보니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덕분에 고 씨는 그 짤막한 대화들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었다.


처음은 회사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려다 한 차장을 마주쳤을 때였다. 고 씨는 늘 그렇듯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고개만 한번 주억거리고 지나갔을 양반이 난간에 팔을 얹으며 말을 걸어왔다.


“내년 4월이라고?”


은연중에 돌고 있는 고 씨의 결혼 소식을 들은 듯했다.


“네에.”


한 차장은 붉은빛을 내는 석양 쪽으로 시선을 멀리 두었다.


“하지 마.......”


한숨 쉬듯 나온 말을 고 씨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런 캐릭터였나?


“거, 웬만하면 취소해....”


워낙 말수가 없는 사람이다 보니 고 씨는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 하하- 하고 멋쩍은 척 웃기만 했다. 한 차장은 멀리 두었던 시선을 거두어 답을 하지 않는 고 씨를 홱- 쳐다봤다. 눈이 부셨던지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진담인가?


“미루기라도 해....”


한 차장은 다 태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휙 던져 버리고, 멀뚱히 서 있는 고 씨를 두고 들어가 버렸다.


‘축하해준 건가?’


한 차장 나름의 방식일지도 몰랐다.




두 사람의 대화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한 차장이 어쩌다 말을 붙이는데, 그때마다 딱히 대답을 기대하는 뉘앙스가 아니었다.


오늘은 이른 저녁부터 놀이터에서 마주쳤다. 고 씨는 어제 이후로 아내가 조금 냉랭한 분위기여서 집으로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담배를 다 태우고도 하나를 더 꺼내 들자 한 차장이 오랜만에 말을 걸어왔다.


“잠깐 걷지.”


좋다, 싫다 하는 답도 듣지 않고 앞장서서 걷는 한 차장을 고 씨는 따라 걸었다.


둘은 터벅터벅 몇 골목을 지나, 큰 도로변까지 왔다. 한 차장은 도로변에 있는 꽃집 앞에서 안을 기웃거리더니, 냉큼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 씨도 하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장미꽃 한 송이 얼마예요?”


“오천 원이에요.”


고 씨는 장미꽃의 가격을 듣고 조금 놀랐다.


‘전엔 천 원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천 원 하던 때 이후로 꽃집은 처음이었다. 그새 꽃값도 많이 올랐다.


“두 송이 줘요. 따로.”


한 차장은 만 원 지폐를 꺼내 꽃집 주인의 장미꽃 두 송이와 바꿔 잡았다. 그러더니 꽃집 앞으로 나와선 한 송이를 고 씨에게 건넸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와이프 갖다줘.”


요즘은 이럴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한 차장의 팔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데요, 전.”


“거, 사람 참, 한번 줘 봐.”


고 씨는 받을 때까지 권할 것 같은 기세에 하는 수 없이 한 송이를 받아 들었다. 한 차장은 남은 한 송이를 들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한두 골목을 더 지나더니 철물점 앞에 섰다. 이번에도 잠깐 기웃거리다가 들어갔다.


‘별난 습관이 있네.’


고 씨는 한 차장을 따라 철물점으로 들어갔다.


“녹 제거하는 거 있어요?”


철물점 주인은 대답도 하지 않고, 손을 뻗어서 녹 제거제를 꺼냈다. 한 차장은 그걸 들고, 상표에 붙은 작은 글씨들을 눈을 모아 훑었다.


“잘 돼요, 이거?”


철물점 주인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완벽하겐 안 되지.”


“얼만데요?”


“만 원.”


한 차장은 다시 만 원 지폐를 건네고는 철물점을 나왔다. 고 씨는 궁금해서 물었다.


“이건 어디 쓰시게요?”


“아, 놀이터.”


한 차장은 잠깐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뭘 타보려 해도 죄 녹슬어서 원.”


고 씨는 ‘녹 제거제 하나로 놀이터를 닦으면 얼마나 닦는다고.’하고 생각했다.


“잘 안된다던데요?”


“안 하느니 만보단 낫겠지.”


고 씨는 문득 집 앞에 아무렇게나 걸쳐둔 자전거가 생각나서 멈춰 섰다. 어제 보니 녹이 많이 슬어 있었다. 한 차장도 두어 걸음 걷다 멈춰서서 고 씨를 돌아봤다.


고 씨의 뒤로 붉은빛을 내며 떨어지는 석양에 한 차장은 또 오만상을 썼다.


“잠깐만요.”


고 씨는 다시 뒤돌아 가서 철물점 문을 열었다.


“아까 그거, 저도 하나 줘요.”


철물점 주인은 다시 말없이 손을 뻗어 녹 제거제를 꺼냈다. 값을 치르고 나오니 한 차장이 그대로 서서 고 씨를 보고 있었다. 두 남자가 한 손엔 장미꽃을, 반대 손엔 녹 제거제를 들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한 차장이 돌아서 걸으며 나직이 말했다.


“내가 미쳤지.”




(부제: 녹슨 사이3)




녹슨 자전거2.png




아닌 척 이어 썼던 ‘녹슨 사이’는 3편으로 마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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