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소 지구력 달리기
Long Slow Distance, LSD는 긴 거리를 느린 페이스로 달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긴’ 거리보다 ‘느린’ 페이스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말 그대로 느리게 뛰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어느 정도 스피드를 체득하여 확보해 두었고, 꾸준한 조깅으로 최소 필요한 연습량만 충분하다면 크게 어렵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힘들지 않은 속도로 꾸준히 달려 나가기 때문에 훈련 완수가 용이하고 마친 후 보람과 성취감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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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번 겨울 첫 LSD 25,000m를 실시하는 날이었고, 부슬비가 계속되는 날씨로 실내 트레드밀에서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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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달리기 훈련을 하는 마라토너의 마음은 수행자의 그것과 같다. 몸과 마음속에 무엇이 일어나든 그것에 움츠려들지 않고 기꺼이 맞이하는 태도를 지속하는 것이다. 마음은 본래 깊고 평온하지만, 생각과 감정, 판단들이 파도처럼 몰아친다. 긴 거리를 달리고자 마음먹고 실행하면, 처음부터 종료 직전까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불쑥 튀어 오른다. 이런 의도치 않은 생각 소용돌이가 일어날 때 수행자가 가장 먼저 가져할 자세는 자각 awareness 알아차림 그리고 그저 바라보기 seeing이다.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는다. 가상의 경쟁 상대를 떠올려 스스로 승부욕을 자극하거나 훗날 레이스에서 멋지게 피날레를 장식하며 피니쉬라인을 통과하는 상상은 하지 않는다. 사실 그건 망상이다. 더 피곤해질 뿐이다. 관절이나 뼈에 통증이 발생되는 그런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면 생각의 파도는 그저 자각하고 바라만 본다. ‘응, 그렇구나. 멈추고 싶은 마음이 생겼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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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 생각이지만 내 생각이 아닌 것처럼 자신을 객관화하고 그저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러한 생각이 멈춘다. 바람이 약해지며 파도가 잦아드는 것처럼. 이렇게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내 마음 바라보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시간과 거리가 훌쩍 지나있음을 알게 된다. 1/3 지점을 지나고 절반 지점을 지나더니 어느덧 내가 달려온 거리와 시간보다 남아있는 거리와 시간이 점점 작아짐을 깨달으며 몸은 리듬을 다시 찾는다. 신난다. 장거리 장시간 달리기라는, 나의 평범한 뇌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격렬한 행위를 지속하는 덕분에 내 몸을 보호하고자 엔도르핀 호르몬이 온몸에 쏟아지는 느낌이다. LSD는 고통을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에 축제와도 같은 것이다. 이토록 몸과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쾌감은 유산소 지구력 운동에서 얻을 수 있는 축복이자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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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되는 기쁨(laetitia)의 정서를 쾌감(titillatio)이나 유쾌함(hilaritas)이라고 한다.’
스피노자 <에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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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우리의 감정은 몸과 마음 그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기쁨도 몸이나 마음 중 어느 하나를 희생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기쁨으로 충만할 때,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이 쾌감으로 전율할 때, 바로 그 시간이 우리가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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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행위 doing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간을 인간존재 human being이라고 부르듯 수행은 지금 여기 이 순간 존재함 being에 관한 것이다. 순수하고 단순한 자각과 바라보기이다.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일도, 얻어야 할 특별한 것도 없다는 고요한 마음으로 달리기를 지속한다. 몸이 움직이는 그대로 달리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페이스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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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D의 시작은 보통 25,000m이다. 첫 LSD에서 많은 분들이 몸과 마음의 축제를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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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