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마라톤 풀코스에 참가했습니다. 오사카 마라톤과 대구마라톤을 중복 신청했었는데요. 원래 계획은 오사카에 팀오리지널파이어 몇몇 분들과 함께 출전할 계획이었으나 작년 11월 가족 여행으로 오사카를 다녀왔고, 지금 아이 때문에 바쁘고 마음 쓸 곳이 많은 시기라 아내가 반대하여 가지 못했습니다. 대구마라톤은 얼리버드로 신청하여 취소가 불가했는데, 덕분에 다행히 올해도 봄(?) 마라톤 출전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봄 마라톤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춥고 바람까지 많이 불었던 날씨였습니다. 평균 2월 말 대구 날씨는 마라톤에 적합했을 텐데 올해 날씨 운은 없었습니다.
저는 2시간 40분 대 재진입을 목표로 이번 겨울 연습하고 달렸습니다. 대구마라톤 코스가 힘들고 제 개인적으로는 체중 관리에 실패했지만 훈련할 때 성과와 느낌이 좋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자신 있었습니다. 헤어밴드와 토워머를 쓰고 장갑을 두 개 착용하고, 싱글렛이 아닌 반팔을 입는 풀코스 대회는 처음이었지만 평소 장거리 연습과 대회 페이스 러닝을 연습할 때처럼 달리면 분명 달성 가능하다는 생각이었어요. 대회 당일 출발 후 몸 상태를 살펴보니 나쁘지 않았고 25km 지점까지 무난하게 진행했습니다. 다만 대구마라톤의 진짜 코스는 26km부터입니다. 7km 담티고개 업힐은 워낙 초반이라 체력 부담도 적고 전체 페이스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습니다.
26km 신천교에서 동대구역으로 올라가는 길, 이어서 파티마병원 앞 오르막 도로, 36km 율하역과 연호역을 잇는 범안로(도시 순환도로), 특히 39km 라이온즈 파크에서 유니버시아드대로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 등 레이스 후반 체력 고갈되며 만나게 되는 강력한 오르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1.1km 하프 지점 계측기를 1시간 23분 대로 통과해 자신 있었지만 신천교에서 동대구역으로 올라가는 구간에서 1km당 30~40초씩 페이스가 후퇴하고, 마지막 라이온즈 파크에서 유니버시아드 대로로 가는 1.5~2km 구간에서는 저에게 남은 체력과 오르막 경사 상태를 감안해도 앞으로 다리를 내딛는 고관절 각도 자체가 나오질 않아 무척 힘들었습니다. 후반부 가끔 나오는 평지에서 서둘러 시간을 줄여보고 마지막 41km 이후 유니버시아드대로 평지 구간에서 페이스를 1km 3분 40초 대까지 올려보았지만 이미 늦었고 역부족이었어요. 스스로 진단해 보면 체중 관리를 제대로 못해 업힐 공략에서 애를 먹었던 것 같습니다.
대구마라톤 Full: 2시간 53분 29초
목표 달성은 실패했지만 상반기 기록을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후련합니다. 혹시 모를 해외 마라톤이나 이벤트 신청 등 최근 대회 기록증 제출이 필요할 수 있고, 그래서 봄, 가을 마라톤 기록은 꾸준히 만들어야 하더군요.
대구마라톤은 2018년 이후 오랜만에 참가했어요. 풀코스는 처음입니다. 대구는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나고 자란 고향이고 방학이나 명절 때마다 고향 친구들과 놀았던 곳, 직장 생활하며 대리 시절 지점 순환 근무 때 신혼 생활 겸하여 2년 동안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여러 추억이 깃든 도시입니다. 여행하듯 달리며 대회를 즐겼습니다.
풀코스 종목 구간별 설명입니다.
출발지는 대구 스타디움(Daegu Stadium)입니다. 한때 2002년 FIFA 월드컵을 기념하여 '대구 월드컵 경기장'이라는 공식 이름이었어요. 2001년 완공되었고, 2002년 FIFA 월드컵에 맞춰 축구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월드컵 대회 중 A조와 F조의 경기, 그리고 3,4위전을 치렀던 장소입니다. 대구스타디움에서는 예선전 미국 경기, 그리고 터키와의 3,4위전으로 우리나라 경기가 두 번 펼쳐진 곳입니다,
지금은 스타디움 근처 택지와 사업용지가 개발되고 극장 쇼핑몰이 입점하여 유동 인구가 꽤 많은 편이지만 2001년 만들어진 당시에는 변두리 지역 월드컵과 유니버시아드 대회 위해 개발된 곳이라 주변이 텅텅 비었고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스무 살 학부 1학년 신입생 중간 기말고사 끝나거나 방학 때마다 고향에 내려오면 밤늦은 시간 친구들과 함께 차 몰고 가서 담배 피우면서 수다 떨던 곳이었어요. 아빠 엄마는 좀처럼 차를 빌려주지 않아, 당시 저희 집에 잠시 함께 살던 사촌 누나가 사용하던 현대 엑센트를 몰고 다녔어요.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 차 안에 있던 누나의 코요테 3집, CD가 아닌 무려 카세트테이프, 앨범을 거의 무한 반복 들으며 뻥 뚫린 유니버시아드 대로에서 달리곤 했는데, 그래서 코요테 3집 앨범 노래들은 아직도 가사와 멜로디를 외우고 있습니다. 신혼 시절에도 집이 스타디움이랑 멀지 않은 지산동/범물동에 살았기 때문에 아내와 영화를 보러 대구스타디움 CGV 극장에 자주 왔었어요. 여러 추억이 있는 장소라 오랜만에 찾은 대구스타디움이 반가웠습니다.
풀코스 S 그룹으로 운 좋게 배정받아 엘리트 선수들과 동시에 출발했습니다.
출발 후 시지고등학교까지 1.5km 완만한 내리막입니다. 시지고에서 반환하여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옵니다. 시지 지역 이름 유래는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연못과 산이 둘러싸고 있어 과거에 습지가 많고, 물이 고이는 지형이었기 때문에 똥, 변을 의미하는 '시'에 땅을 의미하는 '지‘를 붙였다고 합니다. “屎(똥 시)“라는 글자가 포함된 이름이 좋지 않다고 여겨져 이후 “임금을 모시는 땅"이라는 뜻으로 “시지(侍地)“로 한자가 바뀌었습니다.
완만한 내리막 오르막을 달리고 5km 지점은 유니버시아드 대로에서 라이온즈 파크 방향으로, 그리고 라이온즈 파크에서 연호역방향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내리막입니다. 이 구간은 대회 마지막 다시 올라와야 하는 지옥의 오르막이기도 합니다.
7km 지점은 대구마라톤 코스에서 처음 마주하는 강한 오르막길, 담티고개입니다. '담티(담재)'라는 이름은 ‘담담한 고개’ 혹은 ‘조용한 고개’라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옛날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담티(담재, 淡齋)라는 이름이 이 고개 근처에 학문을 닦던 선비(재사, 齋士)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어요. 시지동과 황금동, 범어동을 연결하는 고개로, 예부터 교통 요충지였습니다. 현재는 달구벌대로 도로가 정비되면서 도심과 시지지구를 잇는 중요한 도로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는 유명한 화장터가 있습니다. 지역 많은 분들이 소중한 사람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냈을 장소입니다. 저도 외할머니 화장을 여기서 했습니다. 부모님은 사업을 하셨기 때문에 저는 어릴 적 외할머니 아래에서 자랐어요. 많은 기억을 함께 한 외할머니가 작은 항아리 단지에 담겨 돌아왔을 때가 생각납니다. 2019년 서울마라톤 직전이었네요. 뇌졸중 이후 오랜 시간 후유증을 앓고 계셨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에는 생각보다 담담했었습니다. 외할머니의 부재가 슬픔으로 다가온 건 시간이 꽤 지나 추억들이 하나씩 떠오를 때입니다. 저희 엄마는 제가 어릴 때부터 과자를 되도록 먹이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과자를 얻어먹으면 세상 행복한 것처럼 먹어치우던 손주가 귀여웠던 건지 외할머니는 종종 엄마 몰래 자갈치 과자를 한 봉지씩 저에게 찔러 넣어주곤 했어요. 지금과 다르게 노란색 포장이었습니다. 언덕 이름처럼 담담한 마음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담티고개를 넘어가면 만촌네거리를 지나 범어네거리로 향합니다. 비유하면 서울 강남 같은 곳입니다. 학군지이고 집값이 높아 부촌들이 있어요. 대치동처럼 학원들이 모여있고 법원 검찰청이랑 병원 밀집 지역이 가깝습니다.
범어네거리에는 삼성증권 빌딩이 있는데 예전 동양투자신탁이 있던 자리입니다. 1998년까지 영업하고 이후 삼성증권으로 인수되었어요. 동양투신 옆 건물에는 '양지학원'이란 곳이 있었는데요. 원장님의 스파르타식 체벌과 당시에는 생소했던 수학 선행으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중2 올라갈 때 중3 과정을 동시에 들어가며 인수분해를 배우기 시작하고, 중2 2학기부터 공통수학 정석을 시작하는 식이었어요. 각 중학교 1, 2등 아이들이 모여 있던 곳에 저는 치맛바람 고모 덕분에 운 좋게 들어갔는데, 그 친구들보다 성적은 안 좋고 체벌 견디는 맷집은 더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동네는 모두 평지이고 뻥 뚫린 도심 도로라 기분 좋게 달렸습니다.
범어네거리를 지나 수성못으로 향합니다. 이때부터 25km까지는 아주 약한 오르막과 내리막이지만 거의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지에 가깝습니다. 어린이 회관과 대구과학고를 지나 황금네거리를 달리고 수성못으로 향합니다. 어린이 회관과 대구과학고 뒤편에는 범어동산이라는 아주 낮은 동산으로 된 공원이 있는데, 동네 주민들에게 쉼터와 같은 곳입니다. 겨울 시즌 스키와 비시즌 MTB에 한창 빠져있던 신혼 당시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30분 밤마실 라이딩을 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습니다.
황금동 이전 명칭은 황청동이었지만 '황천길'과 발음이 비슷하여 '황금동'으로 변경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농사가 잘 되는 비옥한 땅이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황금네거리에 있는 맥도널드와 홈플러스 또한 신혼 때 아내와 종종 들렸던 곳인데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반가웠습니다.
수성못은 1925년 일제강점기 때 농업용 저수지로 조성되었어요. 인근 지역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농업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1960년대부터는 지역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어요. 고인 물 같지만 신천이랑 이어진 수로가 있어 흐르는 물입니다. 오리배 영업장이 있고 중고등학생 시절 소풍날 수성못에 오면 같은 날 소풍이 겹친 여학교 학생들이 종종 있었는데요. 오리발 페달을 열심히 밟아 괜히 여학생들 오리배 근처에 기웃거리곤 했습니다. 수성못은 매년 5월 철인 3종협회에서 주관하여 표준거리 3종 대회가 열리는 장소입니다.
수성못의 ‘수성’은 목숨을 의미하는 수와 성곽의 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장수를 기원하는 성‘으로 고려 시대부터 사용된 명칭이라는 설이 있고, 조선 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는다는 의미로 지킬 수를 써서 성을 지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근처에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는 ‘들안길’이 있고, 예전에는 큰길 따라 브런치 카페들도 많이 있어 주말 아침에는 아내와 함께 이곳저곳 맛보기도 했는데, 오랜만에 달려 보니 브런치 카페들은 대부분 없어진 것 같습니다. ‘용루‘라는 중국집은 아직 건재한데 제가 깐풍기를 좋아했던 곳입니다.
수성못 상동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계속 직진입니다. 여전히 평지입니다. 아직 하프도 못 미치는 구간이라 체력은 충분합니다. 이 동네는 상동과 중동입니다.
과거 이 지역은 대구 도심(현재의 중구)에서 봤을 때 상대적으로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 “위쪽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상동이라 불리게 되었고, 조선 시대 대구읍성 근처 생활 중심지로 여러 마을 가운데 위치했다는 점에서 “중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황금동 쪽으로 이전한 정화여중, 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평범하고 흔한 회색 교복이지만 당시에는 작고한 유명 디자이너가 만들었다는 명성 때문인지 정화여고 교복을 입은 학생을 멀리서 봐도 괜히 이뻐 보였습니다. 토요일 학교 마치고 학원 갈 때 여기를 지나가는 버스를 탔었는데 그냥 기분 좋았습니다.
계속 평지를 달려 대구은행(현 IM 뱅크) 본점 교차로까지 달립니다. 아, 참고로 대구은행 교차로 가기 직전, 대구교육청 맞은편 대백인터빌 아파트 앞 상가에는 ‘대구막창‘이 있습니다. 여기 제 친구가 부모님에 이어 장사하는 곳입니다. 지금은 제가 술을 끊어 제대로 매상을 올려줄 수 없다 보니 발길이 뜸한데, 예전에는 매주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던 곳이었습니다. 맛있습니다. 대구와 막창이라는 보통 명사 조합으로 상표권 등록이 되지 않아 대구 곳곳에 ’대구막창‘이 있는데 여기가 좋아요. 그러고 보니 이 친구 체대를 나왔는데, 부모님 이어서 본인 일 할 계획이 있다 보니 누구보다 즐겁게 대학 생활을 했던 친구입니다.
대구은행 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수성교를 건너고 경북대치과대학병원, 봉산육거리, 사범대 부설초등학교를 지나 반월당으로 향합니다. 중앙로와 동성로, 삼덕동이 있는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도심 지역입니다.
반월당 이름은 조선 선조 시대 대구읍성 근처 불교 사찰인 ’반월당(半月堂)’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승려들이 머물며 수도하던 곳으로, 주민들에게도 익숙한 장소였습니다. 사찰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가 오랫동안 “반월당 터”로 불리며 지명으로 정착했습니다.
“반월(半月)“은 반달 모양을 뜻하는데, 절이 있었던 지형이 반달처럼 생겼다는 설과 이전부터 있던 절 이름이 달(월, 月)과 관련된 불교 의미를 가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반월당 교차로 근처에는 ’태산만두‘가 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대구 시내에 나오면 항상 가던 곳입니다. 예전에는 대구백화점 앞 동성로 가운데 있었지만 지금은 여기로 옮겼어요. 화교 사장님이 대를 이어 운영하는 곳입니다. 카운터 뒤편에는 중화권에서 재물운을 상징하는 관우상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동묘’도 정확한 명칭은 ‘동관왕묘’입니다. 관우신을 모신 사당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 지원 군대가 들어오며 지어진 것입니다.
봄이나 여름, 추석 명절 때 반월당에서 처가가 있는 성서 방향으로 달리면 약 9km입니다. 시내에서 폭식하고 소화시킬 겸 처가까지 조깅으로 달려갈 때 이쪽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반월당과 현대백화점, 약령시를 지나 이상화 시인, 서상돈 선생 옛집, 계산성당 등이 있는 대구근대역사길을 거쳐 청라언덕이 있는 작은 오르막을 뛰어올라야 합니다. 청라언덕은 외국 선교사들이 살던 곳입니다. 서양 가옥 유적이 남아 있어요. 대구 달성토성이 대구 중심일 때 이곳이 달성의 동쪽이었기 때문에 ‘동산‘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부설병원이 위치해 있는데, 그 이름이 ’동산병원‘입니다.
계산성당은 오래된 성당입니다. 중학생이던 시절, 저희 미술 선생님이 홍대 미대를 나왔다는 자부심이 굉장한 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미술 이론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도록 잘 가르쳐 주시던 분입니다. 인상파 화가 이름 외우는 법, 보색 조합 외우는 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어느 날 선생님이 계산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빛을 말과 글로 설명해 주면서 본인이 봤던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천주교 신자가 아님에도) 결혼식을 계산성당에서 하고 싶다 생각했어요. 거기서 결혼식 올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성인이 되었을 때입니다.
청라 언덕길 동산병원 오르막 내리막을 달려 우회전하면 서문시장이 나옵니다. 역시 이 구간도 계속 평지입니다. 서문시장(西門市場)은 조선 시대(1669년, 현종 10년경) 형성된 대표적인 전통시장입니다. 대구읍성의 서쪽(서문) 근처에서 시작되었고, 당시 대구 3대 시장(동문시장, 남문시장, 서문시장) 중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1592년) 이후 대구가 영남 지방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면서, 상업이 활발해졌고 자연스럽게 시장이 발전했습니다.
현재 서문시장은 대한민국 3대 전통시장(서울 남대문시장, 부산 국제시장, 대구 서문시장) 중 하나로 꼽힙니다. 야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관광 명소로도 인기입니다.
20km 지점과 하프 계측 지점을 지나며 달성공원 구간을 달립니다. 25km 지점까지 계속 평지입니다.
달성공원(達城公園) 대구를 대표하는 역사 공원으로, 신라 시대에 축조된 ’달성(達城, 토성)’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신라가 삼한을 통일하기 전(서기 261년경, 미추왕 시대)에 쌓은 토성으로, 대구 지역의 가장 오래된 성곽 중 하나입니다. “달구벌(達句伐, 현재의 대구)의 성(城)”이라는 의미가 있고, 고대 한국어에서 ‘달’이 ‘큰’ 또는 ‘높은’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고려 시대 이후 중요한 요새로 활용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대구읍성(大邱邑城) 축조 이전까지 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1905년(대한제국 광무 9년), 일제가 대구 지역을 도시화하면서 달성 토성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이후 1960년 대부터 대구시가 본격적으로 공원으로 정비하면서 현재 달성공원(達城公園) 이름이 정착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달성 토성 유적지, 임진왜란 관련 유적 등이 있는데 무엇보다 동물원이 있어 제가 어릴 때 아빠와 함께 자주 왔던 곳입니다. 여기는 워낙 오랜만에 다시 찾은 곳이라 이번 대구마라톤을 달리면서 가장 놀랐던 구간 중 하나입니다. 제가 기억하던 동네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서 있어 상전벽해를 실감했습니다.
달성공원 구간을 지나 신천교 방향으로 우회전을 합니다. 아직은 평지이지만 신천교를 건너 동대구역으로 가는 길부터 대구마라톤 고난도 코스가 시작됩니다. 26km 지점입니다.
대구의 중심을 흐르는 신천(新川)은 고려 시대부터 하천으로 이름이 붙었고, 조선 시대 금호강 지류로 인식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공식적으로 “신천(新川)“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신천이 자연 하천이 아니라 비가 올 때만 흐르는 건천(乾川) 형태였다고 하고, 이후 하천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강물이 일정하게 흐르는 모습이 되어 이 과정에서 “새로운 하천”이라는 의미에서 신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한강공원처럼 크진 않지만 신천에도 잔디 공원이 곳곳에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에는 모의고사나 중간/기말고사를 마친 날, 친하게 지내던 경북예고 무용과 애들이랑 함께 모여 마피아 게임을 하고 수다 떨고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천교에서 동대구역방향으로 가는 길은 계단처럼 오르막과 잠깐의 평지, 그리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반복됩니다. 목표했던 대회 페이스에서 1km당 30초씩 밀려 힘들었습니다. 동대구역으로 올라왔을 때에는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잃어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만약 제가 서울마라톤 신청에 성공했다면 대구마라톤에서는 기록 달성이 어려워 이쯤에서 지하철 타고 기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대구역은 기존 대구역(1905년 개통)이 도심에 위치한 반면, 동쪽 교외 지역에 새롭게 세워진 역이어서 동대구역 이름이 붙었습니다. 1969년 6월 10일에 개업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대구선(대구 포항)과 경부선(서울 부산)의 분기역 역할을 했지만, 2004년 KTX 개통 이후 주요 관문역으로 자리 잡았으며, 2016년에는 신세계백화점, 복합환승센터가 완공되어 대구의 교통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동대구역에서 파티마병원까지는 짧은 거리지만 평지가 나오고, 파티마병원에서 아양교 방향으로 가는 길은 다시 오르막입니다.
파티마병원 이름은 파티마(Fátima)라는 이름 그대로 가톨릭교회와 관련 있는 병원입니다. 포르투갈 파티마 성모 발현 사건에서 유래했습니다. 1953년 설립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MRI를 찍어봤던 병원이네요.
파티마병원에서 동구청, 아양교로 이어지는 길도 제 기억과는 다르게 동네 모습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 아양교로 향합니다.
‘아양‘이라는 이름은 강을 의미하는 아, 볕을 의미하는 양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강변에 위치한 마을’, ’강의 남쪽’을 의미합니다. 아양교는 금호강 위에 있습니다. 1966년에 아양교가 건설되어, 당시 금호강을 넘는 중요한 교량으로 지역 교통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아양교를 지나 동대구 IC, 율하역까지 약 5~6km는 다시 평지입니다.
율하는 밤나무를 뜻하는 율과 아래를 뜻하는 하입니다. 예전 밤나무 재배가 활발했던 지역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신도시 개발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며, 대구의 대표적인 신흥 주거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율하역에서 다시 출발지와 가까운 연호역으로 이어지는 범안로 구간입니다. 도시외곽순환도로로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마치 고속도로 같은 길을 달려야 합니다. 길고 긴 오르막이 이어지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입니다. 나무도 건물도 없어 그늘이 없는데, 이번 대회는 워낙 추워 이 구간이 그나마 따뜻해서 그건 좋았습니다. 오르막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시간을 많이 잃었는데 버스도 택시도 지하철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멈출 수도 없습니다. 남은 거리는 약 5km, 계속 달려가야 합니다.
연호역에서 좌회전하면 라이온즈 파크 야구장으로 올라가는 업힐입니다. 경기 초반 가파르게 내리막을 달렸던 그 구간을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대구마라톤 조직위원회에서는 여기 업힐을 대회 ‘시그니처’라고 설명하던데 정말 미칠 노릇입니다. 이런 시그니처는 없어도 됩니다.
라이온즈 파크는 1982년 창단한 대구 삼성라이온즈 팀 홈구장으로 2016년 4월 1일에 프로야구 시즌 개막에 맞춰 개장되었습니다. 저는 예전 대구 도심 시민운동장 홈구장 시절에는 종종 야구장을 찾았지만, 경기력에 비해 맹목적인 관람 문화로 연봉과 중계료 거품이 느껴지면서 프로야구에는 흥미를 잃어 라이온즈 파크는 와본 적이 없습니다. 잘 지어졌다는 말은 들었는데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네요. 나중에 혹시라도 아이가 야구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와봐야겠습니다.
39~41km 구간 내내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가장 힘든 구간이었습니다. 체력도 많이 고갈되었고 오르막 경사도 급하고 거리도 길어서요. 오르막에서는 러닝 기술이나 자세도 생각해야 하지만 키 대비 체중이 중요합니다. 몸이 무거우면 백약이 무효합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땀도 거의 흘리지 않아 대회를 마치고도 역대 가장 높은 몸무게(71kg, 키-몸무게 106)였습니다. 오르막이 나올 때마다 너무 힘들었고 특히 마지막 구간은 1km 4분 50초 페이스 후퇴하며 겨우 몸을 움직여 이동했습니다.
유니버시아드 대로로 올라서면 다시 평지입니다. 몸 상태는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 속도를 올려보니 3분 40초 대, 30초 대 페이스까지 올라옵니다. 기록에 큰 변화를 주기에는 이미 늦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마라토너입니다. 대구스타디움 주차장 오르막을 다시 올라 스타디움 둘레길을 조금 달려간 다음 경기장 트랙으로 들어갑니다. 200m 정도 트랙을 달리고 피니시. 2시간 53분 29초. 무척 힘든 대회였지만 묘하게 다시 도전하고 싶은 대회입니다.
경기보다 더 힘들었던 건 마치고 물품보관소로 이동하고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과정이었습니다. 피니시 마치고 미키 님과 슈땡 님이랑 마사지를 받으려 했는데 저는 체온이 점점 떨어지는 느낌이 심상치 않아 마사지는 받지 않고 물품보관소 탈의실로 직행했습니다. 재난 영화 수준으로 바람이 불어 탈의실 천막이 들썩거려 밖에서 제 알몸이 다 보일 정도였지만 너무 추워서 그런 건 걱정할 여유도 없이 ’생존‘을 위해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어요. 손과 발이 얼어붙어 재빠르게 움직여지지 않아 애먹었습니다. 2월 말은 여전히 날씨 변수가 있는 시기이니 내년에는 3월 초에 열리면 좋겠습니다. 서울마라톤 참가 인원도 분산된다면 더 좋겠네요.
여행하듯 달려 즐거운 대구마라톤이었습니다.
https://youtu.be/GlsQX5MayL8?si=JiS1SE_lfbqRoPrE
https://youtu.be/tUO1uQZGL-k?si=pOVHylIhBR98Gzr0
https://youtu.be/EMf8V468qIc?si=cFIXAmRrY9JYTre6
https://youtu.be/lpqRmxJE6bk?si=LBbLmFJGJ0yRVihf
https://youtu.be/Jlnmh6SyYws?si=YMUzMX_KB0SmlAZ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