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달리기 20km

하남 미사 조정경기장 뉴발란스 레이스 20k

by 아이언파파

2023.04.02

.

하남 미사 조정경기장은 이전 직장 다닐 때 이후 처음이다. 당시 직장 연수원인 KDB 산은 아카데미가 조정경기장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신입행원 연수와 내부승진 직급연수 등을 했던 곳. 그리고 행내 축구 동호회였던 ‘디오니소스(술의 신)’가 주말마다 연습 게임을 했던 잔디 축구장이 있던 곳이다

.

금융공기업 유관기관 축구부들과 종종 친선경기나 대회를 하기도 했는데, 한국은행 수출입은행 금융감독원 등 축구부는 좀 만만했고, IBK 기업은행과 우리은행(다른 기관들은 ‘워리’라고 부른다) 등이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아카데미 잔디 축구장을 부러워했다. 한적하고 공기 좋은 곳에 잘 관리된 축구장이라고. 2010년대부터 개발되던 하남 신도시 아파트와 상가 건물에 연수원 부지 상당수가 넘어가며 축구장이 1/3쯤 잘려나갔고, 그렇게 하남 미사에서의 주말 축구도 끝이 났다. 기분이 조금 씁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주말 축구게임을 하거나 동기들과 연수를 마치면 근처 칼국수나 고깃집에서 식사하기도 하고 종종 조정경기징에도 가곤 했다. 너무나도 휑하고 을씨년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마라톤과 3종에 빠지고 나서 종종 그곳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고 했을 때 너무 의아했다. 썰렁한 거기서 마라톤을? 그럼 차 없는 사람들은 뭘 타고? 벌써 10년 정도 전의 일이다. 오늘 오랜만에 찾은 조정경기장은 그동안 들어선 거대한 신도시와 쇼핑몰 덕분에 사람과 차량이 넘치는 가족 공원이 되어 있었다

.

벚꽃 개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봄이었던 탓에 석촌호수나 여의도 남산이 아닌 하남 먼 곳에서 올해 첫 꽃구경을 하게 되어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했는데, 다행히 아이와 아내가 정말 좋아하고 기대 이상으로 만족하였다. 뉴발란스 스포츠 브랜드에서 진행한 대회이다 보니 아내도 모처럼 젊은 러닝크루 사람들이 많다며 오늘의 대회장 분위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2015년 아내와 함께 참가했던 첫 달리기 대회도 당시 잠실에서 열렸던 뉴발란스 뉴레이스였다

.

1년 먼저 입행한 08행번 선배가 있었다. 얼굴이 하얗고 동그란 안경에 왠지 연세대를 다녔을 것 같은 외모인데 실제 연세대를 졸업했던 남자 선배였다. 마라톤을 즐긴다 하였다. 이런 외모를 가진 사람이 무슨 아저씨처럼 마라톤을 한단 말인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는데, 그때는 마라톤이 그런 이미지였다. 풀코스 3시간 12~13분 정도 기록을 가지고 있었는데, 언젠가는 목표인 SUB3를 달성하겠다고 일본 만화 주인공처럼 예의 바른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며 각오를 얘기하는 모습이 사실 좀 웃겼던 것 같다. 그때는 그 기록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전혀 감이 없었다

.

어느 날 아카데미에서 연수를 받으며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그 선배가 조깅을 하고 있어 따라 뛰어보았다. 잔디 축구장 둘레길을 반복하며 달렸고 두 번째 바퀴부터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사람이 어떻게 아침부터 이렇게 뛸 수 있는 것인지 너무 신기했다. 선배는 나에게 기회 되면 달리기와 마라톤을 해보라며 권유했다. 나는 그렇게 뛰다가는 쓰러질 것 같다며 웃고 넘겼다

.

요즘 마라톤 대회장에는 그때 그 선배 같은 외모를 가진 20대 30대가 넘쳐난다. 그 선배만큼 뛰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종이신문 1면 한쪽에서나 광고로 종종 봤던 마라톤 대회는 후줄근한 난닝구(?)에 비장하고 힘겨운 표정으로 달려 나가는 사진 속 아저씨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젊은 사람들이 점점 많이 달리니 기록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오늘은 남녀 각각 100위까지 가을 메이저 마라톤대회인 JTBC 서울마라톤 참가권을 증장하는 시상 이벤트가 있었는데, 예상보다 100등 문턱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

마라톤 대회장도 미사리의 풍경과 조정경기장의 분위기도 모두 변했다. 대회를 마치고 가족과 조정경기장의 벚꽃을 자전거로 즐기며 예전 생각을 해보았다. 생각해 보니 가장 많이 변한 건 나 자신이었다. 내가 마라톤을 하다니. 헉, 딴생각을 하느라 천천히 끌었더니 3인승 자전거 30분 반납시간이 초과될 것 같았다. 아내와 나는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100등 안에도 들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

.

.

이전 16화봄 축제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