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축제가 끝났다

마라토너들의 봄 축제, 서울마라톤

by 아이언파파


봄 축제가 끝났다. 마라토너들에게는 두 번의 큰 축제가 있다. 봄과 가을. 가을에는 춘천과 서울에서 나누어져 축제가 열리지만 봄에는 서울 한 곳뿐이기 때문에 그 규모가 더욱 크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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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축제는 아침 8시에 시작되지만 나의 축제는 새벽 일찍 시작이다. 안정적인 준비를 위해서는 출발 2시간 전 대회장에 도착해야 한다. 집에서의 준비와 이동시간을 포함하면 아무리 늦어도 출발시각 4시간 전에는 일어나야 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식사 또는 스포츠 뉴트리션 등 에너지 보충을 한다. 레이스 물품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경기복과 외투를 챙겨 입는다. 대회장에서는 할 수 없는, 매트 위에서 이루어지는 실내 준비운동을 한다. 그리고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것. 몇 번이라도 좋으니 화장실은 충분히 다녀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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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당일의 느낌이 어떠냐고 하면 주변에는 긴장되고 떨린다 말하지만 사실 새벽 추위 때문에 몸이 떨리는 것일 뿐 이제는 더 이상 긴장하거나 떨지 않는다. 몇 년의 경험으로 알게 된 건, 마라톤이라는 운동은 경기 하루 전 이미 기록이 다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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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당일은 매번 똑같다. 들뜬 마음으로 출발하고, 처음에는 매번 연습했던 페이스인데 조금 힘들고 숨이 차오른다. 그렇게 몇 분 지나면 우리가 흔히 몸이 풀린다고 표현하는, 혈액순환이 이루어져 본격적인 페이스가 올라오는 시점이 찾아오고 마치 영원히 이렇게 가뿐하게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전체 거리의 절반을 지나도 몸과 마음이 괜찮은 것 같았는데, 후반으로 진행되며 어디선가 이상 징후들이 느껴진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과연 끝까지 이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몇 번의 밀고 당기기 끝에 점점 속도가 떨어지면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다. 확신으로 바뀌면서 몸 또는 마음이 지치는 순간이 온다. 이쯤에서 마라토너는 두 부류로 나뉜다. 그래도 버티거나 그냥 내려놓고 놔버리거나. 그런데 똑같은 건 둘 다 모두 지옥을 맛본다는 것. 이왕 지옥이지만 버티고 버티는 마라토너가 마지막에 조금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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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95km는 마법의 거리와도 같다. 준비가 안 된 부분이 있거나 신체 중 취약한 부위가 있다면 30km 지점까지 멀쩡하다가도 32km쯤에서는 이상 조짐이 느껴지며 35km에서는 그것 때문에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진다. 그 고비를 버티고 버텨 잘 넘기는 마라토너가 몇 개월간 계속된 연습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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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부터 고질적으로 둔근, 대퇴근막장근 뭉침으로 경직화된 근육이 햄스트링을 꽉 잡는 느낌이었다. 35km부터 햄스트링이 심하게 올라와 경련이 일어날까 두려웠다. 페이스를 낮추고 케이던스 주도 달리기, 즉 보폭을 줄이고 보속을 더욱 올리는 주법으로 전환하여 2시간 40분 대만 일단 기록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어찌 됐든 난 아직 2시간 40분대 풀코스 기록은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다행히 페이스의 큰 낙오 없이 무사완주 하였고, 2시간 49분 45초의 최종기록. 흔히들 막차 타고 문 닫으며 들어온다는 표현을 하는데, 말 그대로 2시간 49분대 마지막 문을 닫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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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풀코스 레이스를 할 때에도 보급 벨트에 휴대폰을 넣고 달린다. 혹시 모를 긴급한 연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출발 후 3시간이 지나 30km를 지날 때쯤, 휴대폰과 연동된 GPS 스마트워치에 메시지 알림이 뜬다. 카카오 T 주차장에 입차했다는 내용이었다. 차량 출입이 통제되는 종합운동장을 피해 아내와 아이가 나의 응원을 위해 근처 한강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의미이다. 잠실 종합운동장 주 경기장 어디쯤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가족을 생각하며 더욱 힘냈다. 미세먼지는 많지만, 날씨 좋은 주말에 나들이 대신 나의 운동 때문에 주말을 반납한 나의 가족이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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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쉬 라인을 500m 정도 남긴 지점, 잠실 종합운동장 주 경기장 북문 입구에서 아들이 외치는 “아빠!” 응원은 그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경기장에 들어서고 마지막 트랙을 돌며 무겁고 굳게 딱딱해진 허벅지 햄스트링이 더욱 의식되었지만 한 번 더 힘을 내어 속력을 높였다. 계획했던 목표는 아니었지만 나의 풀코스 개인 기록이었다. 걷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동료들과 함께 달리고 가족의 응원과 함께 피날레를 하였다. 행복했다. 사실 이 행복이란 것은 2시간 40분대는 지켰다는 안도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운동을 모르는 않는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고, 이 운동을 즐기는 사람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이해하기 힘든, 그런 나만의 마음이다. 따뜻한 봄 날씨는 좋았고, 충분히 즐겼다. 봄 축제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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