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내천과 한강공원 길
3.1절 기념 마라톤 대회 10km 종목에 참가하였다. 날짜가 주는 역사적 묵직함 외에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더욱 의미 있는 대회였는데, 그건 바로 대회 코스가 성내천, 한강공원 코스를 달리며 서울아산병원을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아산병원은 아이가 태어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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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출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임신 초기부터 전치태반 판정을 받았고, 큰 병원 제왕절개가 좋겠다는 1차 병원 의사 선생님 판단으로 진료추천의뢰서와 함께 상급종합병원 분만을 권유받았다. 수소문과 후기 검색 끝에 아산병원 어느 교수님이 그 분야에서 꽤나 유명한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초진 예약 가능한 날짜가 출산예정일보다 한참 지난 시점에야 가능했다. 당시에는 의사 인맥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일정 조정도 되지 않았을까 서럽기도 했다. 가장 빠른 날 초진이 가능한 다른 교수님 예약을 하고 진료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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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지만, 예정일을 두 달 정도 앞두고 갑자기 어느 날 밤 아내가 하혈을 하게 되면서 응급실을 시작으로 아산병원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띄엄띄엄 입퇴원을 반복하였는데, 거의 4주에 가까운 입원 기간이었다. 나는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아내가 입원할 때마다 보호자 침대에서 함께 잠자고 지내며 아내의 수발을 들었다. 태아가 커가면서 방광이 눌려 화장실을 자주 갔는데, 그때마다 태아의 심장박동을 확인하는 기계를 천천히 아내 배에서 떼어내고, 자궁이 눌려 하혈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으켜 세워 부축을 하며 화장실에 데려다주었다. 한 달 가까이 병원에서 생활하며 그때 처음으로 큰 병원 지하에 마치 무슨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같은 다양한 식당과 빵집, 매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내가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태아의 심장박동을 체크하는 기계를 다시 달아주는 건 간호사 선생님의 일이었는데, 아무리 늦은 시각, 자주 호출해도 웃으며 친절한 말씀으로 아내를 보살펴주던 간호사 분들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젊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의 담당 교수님은 제왕절개 수술 예정이고 출혈이 많을 수 있기 때문에 수혈 또한 진행될 것이라 알려주셨다. 큰 병원에서 수혈을 하며 수술하는 건 다반사이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처음 경험하는 거라 모든 것이 두렵고 무서웠다. 우리는 이전에 한 번 막 착상되었던 아이를 잃었던 경험이 있었다. 혹시 지금의 아이도 잘못되지는 않을까, 내가 이렇게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온갖 고민과 여러 생각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불쑥 머릿속에 튀어 오르고 맴돌았다. 가끔 안부를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예정일에 순산할 것 같다고만 얘기했다.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나의 걱정과 고민을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의 나는 내 몸과 정신의 변화에 대처하는 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아내가 병실 침대에서 잠든 시간,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온갖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할 때면 나는 조용히 운동복을 입고 달리러 나갔다. 아산병원 후문으로 나와 성내천에서 한강공원 잠실선착장까지. 편도 2.5km 왕복 5km 정도 되는 길을 가볍게 달리고 병원으로 돌아오곤 했다. 오늘의 대회 코스는 바로 그 길을 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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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서북부 갈리시아 지방 라코루냐라는 작은 도시의 과학관에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천체투영관이 있다고 한다. 생일과 고향을 입력하면 조용히 자장가와 함께 태어난 날 그곳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날의 밤하늘을 당연히 아이는 보지 못한다. 아이의 엄마도 볼 수 없다. 오직 아이의 아빠만이 숨죽이며 올려다보았을 바로 그 밤하늘이다. 아산병원 산부인과 병동에는 야외로 연결되는 테라스 공간이 있다. 아내의 수술일, 하염없이 그 테라스에서 새벽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록 새벽하늘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중에 그 천체투영관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가족 모두와 그때의 하늘을 경험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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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만이라도 하루만이라도 더 뱃속에서 아이를 지키겠다며 아내는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계속된 하혈로 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수술하게 되었다. 수술 당일, 수술대기실로 들어가는 아내와 부둥켜안으며 울었고, 아이가 무사히 나와 처음 마주할 때 또 울었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중환자 회복실에서 입술이 파랗게 마른 채 온갖 바늘을 꽂고 나를 맞이하던 아내를 다시 만났을 때는 더 크게 울었다. 그동안 여러모로 아내 속을 썩였는데, 모든 것이 미안하고 사랑스러웠다. 결혼 후에도 굳건했던 나의 자아정체성이 ‘자신’에서 ‘아내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 아내는 왜 그런 변화가 아이를 낳아서야 경험하냐며 나를 나무랐다. 음 나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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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때의 그 길을 달렸다.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부부가 애틋했던 곳. 그리고 아내와 아이의 응원을 받으며 대회를 마쳤다. 연대별 시상을 남발하는 것 같기도 하여 입상하기에는 다소 민망한 기록이지만, 오늘만큼은 추억에 젖으며 행복하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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