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달리기와 1991년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서울하프마라톤 10km 대회

by 아이언파파

202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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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늘은 광화문에 두 번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이른 아침 광화문에서 출발하여 여의도공원까지 달리는 서울하프마라톤대회 10km 참가를 위해. 그리고 두 번째는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쯤, 아이가 요즘 흠뻑 빠져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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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얼마 전 아이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듣게 되었다. 아이의 최고 원픽은 ‘나라 구한 이순신’이었다. 매일 온 집안에 울려 퍼지도록 저 노래를 스피커로 틀어놓는다. 아침저녁마다 100명 위인 카드게임을 하는데, 아이는 항상 별 여섯 개짜리 이순신 카드를 선택하고 나는 아이에게 극적으로 패배하기 위해 별 한 개나 두 개짜리 위인을 찾아 적절히 번갈아가며 선택한다. 처음에는 별 두 개 최영 장군과 최무선 장군을 골랐는데, 그럴 때마다 훌륭하신 두 장군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최근 며칠 동안은 별 한 개짜리 <신숙주와 한명회> 그리고 <이완용은 매국>을 택하고 있다. 그래, 이건 괜찮아

그러고 보니 대학교 휴학 시절, 고향 친구랑 같이 놀면서 일하기 위해 대구 동성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가 있었다. 일 하는 친구들끼리 회식할 때마다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던 엄청난 녀석이 있었는데 걔 이름이 뭐였더라. 노래방에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니, 정말 아직까지 엄청난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술 마시고 은근히 노래방에 또 가는 것을 기대했었다. 아무리 반복해서 봐도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볼 때마다 웃겨 죽을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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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이 노래를 처음 들었는데, 모든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반복 재생해서 듣고 또 들어 단숨에 외워버렸다. 매일 애들끼리 모여 가사를 틀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것이 하나의 게임과도 같았다. 그때는 이 노래가 원래 아주 예전부터 있었고 보통 초등학생 때쯤 되면 알게 되는 그런 노래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는 1991년에 발표되었던 당시 최신곡이었고, 우리는 단지 최신 유행가에 빠진 아이들이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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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하프마라톤 대회 출발은 이른 아침이라 아내와 아이가 함께 하기에는 힘들었지만, 출발 전 스타트라인 근처에 있던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며 아이가 보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웜업을 하면서는 이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남들이 들으면 너무 엄청나게 큰일 날 일이니 아주 조용하게. 요즘 온통 뇌 속에 저 노래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만주 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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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출발 후 1km 지점까지도 생각보다 페이스가 안 올라오고 2km 지점 서소문 고가차도 오르막 길에서 시간을 많이 잃어 목표했던 기록 도전과 달성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후에는 의외로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5~6km 지점 이후에도 급격한 체력 저하와 속도 하락 없이 꾸준히 가벼운 마음으로 달릴 수 있었다. 계속 흥얼거리는 이 노래를 한창 듣던 어린아이 때처럼 발걸음이 즐거웠다. 하긴, 돌이켜보면 그때는 항상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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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대회마다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하여 달렸지만 기록이 좋지는 않았다. 부족한 실력과 기록에도 이런 등수가 나올 수 있었던 건 광화문과 마포대교 도로를 통제하는 큰 대회임에도 상금이 걸려있지 않아 마라톤 고수들이 많이 참여하진 않았던 대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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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데 피지컬 100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춘리’님을 보았다. 역시 대회에 참가하신 것 같았다. 실제로 보니 정말 말 그대로 피지컬이 압도적이고 인상 깊었다. 결례를 무릅쓰고 함께 사진을 찍을 것을 청했다. 이런 피지컬을 위한 노력과 꾸준함이라니, 멋지신 분일 것 같았다

‘춘리’님 이전에 <춘리>라는 캐릭터는 내 또래의 남자들에게 아주 친숙한 캐릭터이다. 당시 100만 학생들의 100원 동전을 진공 청소하듯 흡입해 빼앗아갔던, 1991년 출시 캡콤의 <스트리트파이터 2> 게임 속 등장인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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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격의 80% 이상은 게임과 만화 덕분에 만들어졌다. <파이널판타지>나 <드래건퀘스트> 같은 게임의 스토리도 좋았지만, 대전격투게임을 무척 좋아했다. <킹오브파이터즈>, <철권> 등 이후에 이어진 대전게임의 효시와도 같은 작품이 <스트리트파이터 2>였다. 실제 게임을 할 때에는 공수 밸런스가 좋고 동작의 딜레이가 길지 않은 가일이나 켄을 선택해 플레이했지만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는 춘리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춘리는 8명의 캐릭터 중 유일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받았던 대부분의 용돈을 오락실 게임을 하며 탕진했는데, 마냥 게임을 하던 부류는 아니었고 나는 제법 진지하게 승부에(?) 임하는 스타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캡콤의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 이후 중학생 때 SNK의 <킹오브파이터즈>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나는 ‘게임챔프’나 ‘게임매거진’ 같은 월간지를 구독하면서 공략집을 읽고 기술을 숙지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슈퍼패미콤(국내명 슈퍼컴보이) 이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세가 세턴을 구입할 때 나는 오락실 환경과 동일하게 <킹오브파이터즈>를 집에서 연습할 수 있는 네오지오 (NEO-GEO) 게임기를 구입했었다. <킹오브파이터즈> 동네 챔피언, 대구 챔피언이 되려고. 결국 대백플라자에서 열렸던 대구지역 예선에서 2등을 하여 용산전자상가에서 열렸던 <게이머즈배 킹오브파이터즈 97 챔피언전>에 나갈 수 있었다. 아마 중학교 3학년이었던 이때 처음으로 부모님이 아닌 친구들끼리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했던 것이 내 인생 첫 상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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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좋아하던 게임을, 대전격투게임을 한 순간에 끊었다. 게임기와 모든 소프트웨어를 서울 용산전자상가와 같았던 대구 중앙지하상가의 콘솔게임 소매점에 모두 중고로 팔았다. 이유는 어이없게도 살아있는 생물을 때리고 죽이는 게임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아서였다. 끝은 어처구니없었지만 격투게임을 즐기던 그때에는 그 어떤 것보다 흠뻑 빠져있었다. 남들이 이해 못 할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잘하고 싶고 잘 알고 싶은 나 자신 특유의 집요함은 어쩌면 그때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시작은 춘리를 좋아했던 <스트리트파이터 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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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광화문에서 10km 단축마라톤 대회를 달리고, 춘리 님과 사진을 찍고, 아이를 위해 광화문 광장을 다시 찾아 시간을 보낼 때에는 특별한 생각이 없었다. 아이를 재우고 오늘 하루를 다시 생각해 보니 어느 것 하나 즐겁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달리기 덕분에 추억 덕분에 가족 덕분에 매 순간이 즐겁다. 앞으로도 계속 이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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