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람. 명동 나들이

by 아이언파파

일요일. 아침 반포 트랙에서 러닝을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청와대 관람을 하기로 한 날이다. 늦으면 안 된다. 10시 30분에 예약했지만 넉넉하게 10시까지 도착하는 것으로 시간표를 짰다.

3년 전 청와대가 개방되었지만 지금까지 방문을 미루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소문과 함께 졸속 행정이 이어지는 등 이런 방식으로 방문하는 데 내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이런 이유로 방문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번 선거 전부터 새로운 대통령은 전면 수리 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갈 것이란 뉴스 기사가 쏟아졌다. 이번에는 마음이 바뀌어 더 늦기 전에 청와대 관광을 해봐야겠다 생각했다. 이미 예약을 한 사람들을 내쫓지는 않을 것이니까. 5월 말 예약 신청 당시에도 벌써부터 주말 시간에는 빈자리가 많지 않았다. 첫 관람 시작 시간대는 이미 꽉 차 있었기 때문에 10시 30분으로 예약했다.

집 앞 이촌역(4호선)에서 출발하여 경복궁역(3호선)까지 환승 시간 포함 대략 30분을 생각했기 때문에 9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역사 안은 후덥지근하고 지하철 차량 내부는 에어컨 덕분에 시원하다. 6월 중순이지만 한여름 날씨이다. 조금밖에 움직이지 않았지만 벌써 가방이 닿는 등 부분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간편한 운동복을 입길 잘했다고 생각하였다.

경복궁역 4번 출구를 나와 경복궁 서쪽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 서울레이스 등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몇몇 (단축) 마라톤 대회 코스라서 눈과 다리에 익숙하다. 집에서 급히 나오느라 아침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고, 청와대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 먹기로 했다. 효자동 방향으로 한참 걸어 올라가도 편의점이 나오지 않아 "여기는 편의점이 없나 보다. 그냥 길 건너서 경북궁 담길 따라 운치 있게 걸어가자."라며 아내와 아이를 꼬드겨 길을 건넜다. 길 건너서 바라보니 우리가 건넜던 횡단보도에서 불과 20m만 더 걸어간 위치에 편의점이 있었다. 아내는 '역시 우리 남편이 그럼 그렇지, 마이너스의 손.' 이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더 흐르는 것 같다.

오전이지만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꽤 더운데 북악스카이웨이 업힐 라이딩을 하러 가는 듯 보이는 사이클리스트 무리가 꽤 많이 있었다. '제대로 업힐 운동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더운 날씨인데?' 훈련 목적보다는 함께 타는 사람들과 다 같이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에 오르고 내려온 다음 서촌 일대 카페나 식당에서 모임을 이어나가는 목적이지 않을까 내 멋대로 추측했다.

광화문, 경복궁 일대에도 러너들이 많은가 보다. 경복궁 담길 곳곳에 '한 줄로 달려야 한다.'는 배너가 보이고, <카*커피>앞에는 러닝 복장 차림의 많은 분들이 들락거린다. <카*커피>.아내가 좋아하는 카페이다. 서촌에도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인기가 많군. 아내는 역시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며 뿌듯해한다. 카페 고르는 안목이 좋은 안내와 편의점 도착 직전 그걸 못 참고 길을 건너 가족을 굶기는 남편의 조합이다.

북악 업힐로 향하는 사이클리스트들은 청와대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고, 청와대 관람객들을 오른쪽 정문 방향으로 오르막을 더 올라가야 한다. 중국, 미국, 일본 등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일요일에는 청와대와 명동을 둘러봤는데, 청와대에는 중국 관광객이 많았고, 명동에는 일본 관광객이 많다. 흑인 백인 서양 관광객들은 골고루. 중국인들 취향이 이쪽인 것 같다. 올해 1~2월 중국의 최대 여행 성수기인 춘절 기간에도 우리나라 방문 중국 관광객 수는 변화 없었는데, 4월 정국 안정 이후 약 24% 폭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종종 서울 관광하는 내가 볼 때에도 눈에 띄게 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경복궁 북쪽 문인 신무문 바로 맞은편에 있는 청와대 정문에 들어서니 입구부터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입장 바코드 확인, 백팩 검사가 이루어진다. 10시 30분에 예약했고 조금 일찍 도착하여 10시 10분쯤 바코드를 찍었지만 별도 제지는 없었다. 예약 여부만 확인된다면 시간에 대해서는 엄격하진 않다.

백팩 검사대를 통과하니 입장 줄보다 훨씬 더 길게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본관 앞 대정원 둘레를 지나 춘추관 방향 갈림길 오르막 위까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직원이 들고 있는 팻말을 보니 청와대 본관에 들어가기 위한 줄이라고 한다. 오르막 내내 끊임없이 줄이 이어진다. 줄을 서기 위해 오르막을 올라가는데 오늘 아침에 했던 800m 인터벌 보다 훨씬 힘들었다. 중간에 세워진 배너를 보니 '(이곳에서부터 입장까지) 90분 소요'된다는 내용이다. 쫄았다. 아내와 아이는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청와대 내부를 둘러보라 하고 나 혼자 줄 서서 기다렸다. 생각보다 줄은 빨리 줄어들었다. 90분 표시 배너부터 대략 20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다행이다.

대정원 둘레 가로등 기둥에서 쿨링 포그가 계속 뿜어져 나왔지만 땡볕의 더위에는 역부족이다. 그나마 오래 걸리지 않아 입장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뿐.

본관 내부에 들어가니 다른 그 무엇보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와서 무척 행복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아내랑 하는 얘기인데, 에어컨을 발명한 캐리어 선생님은 노벨상을 받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리학 상이나 화학 상이 아닌 노벨평화상.

본관 내부는 겉모습만큼 멋진 곳이다. 해방 이후 이전까지 본관으로 사용하던 예전 경무대 건물 대신, 1991년 새로 지었던 건물이라 층고는 더욱 높고, 내부 장식도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장식되어 있다.

인왕실, 충무실, 세종실 등을 둘러보고, 2층 계단으로 올라가 TV나 사진에서 자주 봤던 대통령 집무실을 관람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해외 정상과의 접견과 기자 회견, 각종 임명장 수여, 국무회의 진행 등 뉴스에서만 보던 장소를 직접 보니 흥미롭기도 했지만 아이는 시큰둥 했다. 하긴 내가 아이라도 딱히 재미있을 구석은 없을 것 같다. 청와대라는 공간은 대통령의 집무와 생활 공간, 대통령실 소속 공무원들이 업무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풍경이 아주 좋거나, (관람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지는 않다. 화장실이 드문드문 있어 본관에서 관저로 가는 길목에 있던 화장실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기념품점이 있는 예전 행정동 여민관에서 마그넷과 수첩을 구입하였다. 행정관들이 근무하는 여민관은 예전부터 근무 인력 규모에 비해 협소한 공간 때문에 증축과 수리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었다. 항상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상대 편에서 예산을 빌미로 공격하는 탓에 증축이 수십 년 미뤄졌는데, 이번 기회에 싹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조선 총독 생활공간이었던 터에서 하나씩 건물을 짓다 보니 본관과 행정동 등 건물 사이 거리가 멀어 비효율적이었던 동선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청와대 관람을 마치고 정문에서 경복궁 신무문 방향으로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데, 바로 앞에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카트를 세워놓고 팔고 계셨다. 코너킥에서 헤더를 위해 기다리는 호날두를 능가하는, 기가 막힌 위치 선정이다. 아마 지금까지 내가 봤던 야쿠르트 카트 중 가장 장사가 잘되는 카트였다.

담길을 따라 경복궁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길, 아침에 올라올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보인다. 덩달아 나도 서울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지하철을 타고 명동역으로 이동하였다. 오랜만에 <명동교자>. 역시 이 맛이지. 얼마 전 강남 교보문고를 들리며 처음 가봤던 <강*교자>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명동이 훨씬 맛있다. 다만 김치의 마늘 맛이 너무 지나치게 알싸하다. 많이 먹지 말라는 의도인 것 같기도 하고.

명동에 오면 우리 가종 중 누구보다 아이가 산나고 설레는데, 군데마다 자리 잡은 기념품 가게 때문이다. 외국 관광객보다 기념품을 더 좋아하는 아이. 아이의 주 목적은 <드래곤볼> 애니메이션 관련 소품들이다. 키링, 미니어처, 러기지 택, 양말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드래곤볼 등장인물인 손오공(카카로트)가 그려지거나 새겨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원하는데, 결국 지난번 명동 방문 때 아이가 눈독 들였던 가장 큰 기념품점-여기를 나는 '개미지옥'이라고 부른다-에서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한 손오공이 에네르기파를 발사하는 동작을 본뜬 모형의 키링을 구입했다. 말이 좋아 키링일 뿐, 큰 장난감 모형에 열쇠고리만 달아놓았을 뿐이다. 어찌 되었든 아이는 기분 최고였다. 아빠는 2만 5천 원을 털렸다. 개미지옥,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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