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유일하게 석촌호수에서 수영할 수 있는 날, 매년 7월 열리는 롯데 아쿠아슬론 대회에 올해도 참가하였다.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라서 매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석촌호수 서호 750m 두 바퀴 1500m 수영, 롯데타워 123층 계단 오르기 스카이 런으로 구성된 아쿠아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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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시작은 7시 정각. 바꿈터 개방은 5시부터. 매번 대회마다 바꿈터 개방 시간에 맞춰 무조건 일찍 대회장에 도착하도록 일정을 짜는데, 이번에는 뭐에 홀렸는지 바꿈터 폐쇄 시간인 6시 30분 전에 적당한 시간에 도착하면 되겠다고 느슨한 생각을 했다. 대회 출발 시각 4시간 전 기상 알람을 맞추는 패턴에서 벗어나 4시 30분 기상. 5시 10분 넘어서야 집을 나섰고, 천천히 몸을 풀 겸 집 근처에서 따릉이 공유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보통 로드나 철인 자전거로 타면 3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라 만만하게 봤지만, 탄천 합수부 다리 공사 때문에 1km 가까이 우회해서 잠실 쪽으로 가야 하고 대회 전 근육을 피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벼운 기어로 타고 가니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려 지각할 뻔했다. 바꿈터 폐쇄 7분 전에 겨우 도착했다. 어처구니 없이 실격할 뻔했다. 다행히 아쿠아슬론 종목이라 바꿈터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구니에 러닝화와 레이스 벨트(배번 부착) 그리고 수영 마치고 러닝 출발 전 먹을 파워 젤 1개 준비로 끝.
대회장 도착이 늦으니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일정이 모두 꼬인다. 개인 물품을 보관소에 맡겨야 하는데 대기 인원이 많다. 달리기 대회처럼 배번에 물품보관 스티커를 붙일 수 없으니 진행요원이 매번 손목띠에 물품 보관 번호를 써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물품 보관 마감 시간이 지난 6시 40분이 되어서야 짐을 맡겼다. 집에서 화장실에 다녀왔지만 대회장에 도착하면 경기 전 긴장감에 꼭 화장실을 한 번 더 가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신호가 온다. 수영으로 시작하는 트라이애슬론이나 아쿠아슬론 대회 특성상 소변이라면 그냥 서 있는 채 자리에서 볼일을 봐도 상관없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매번 갔던 출발지 바로 옆 카페 화장실은 수리 공사 때문에 폐쇄되어 있다. 간이화장실 1칸뿐이다. 먼저 들어간 분들이 있어 기다린다. 선수들은 이미 개회식과 체조를 마치고 그룹별로 줄지어 출발지로 이동하고 있다. 초조했다. 기다린 끝에 후다닥 용변을 마치고 나오니 출발 3분 전. 선수들 모두 이미 순서대로 자리 잡고 있어 같은 초록색 수모 그룹의 맨 뒷줄에 섰다.
예상 기록 20분 이내 검은색 수모 그룹 다음이 초록색 수모 그룹이다. 보통 다른 대회에서는 실력이 되든 안 되든 무조건 맨 앞 그룹을 신청했고, 몇 년 전 여기 대회에서도 그렇게 해봤는데 막상 해보니 그러면 안 되겠더라. 이 대회는 특이하게도 현역 엘리트 선수들도 출전하기 때문이다. 나 따위가 낄 자리가 아니다. 초록색 수모 그룹 맨 앞자리가 좋은데, 대회장 도착부터 늦어 이렇게 되었다. 상습적으로 늦는 사람들은 약속 장소로 갈 때 가장 짧은 시간과 거리로 짐작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학교 앞에 사는 애가 더 지각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그랬다.
오늘 대회에서는 스윔 스킨을 착용했다. 2년 전 대회부터 착용했다. 이전에는 대회 때만 착용하니 몰랐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대회 전 실내 수영장에서 스윔 스킨을 입고 연습하며 깨달았다. 소매가 있는 모델은 초보자 모델이라는 것을. 왜 그런가 봤더니 수영을 하며 글라이딩 전진할 때 소매 사이로 물이 들어가며 저항이 발생한다. 아무리 실리콘 패드 같은 미끄러짐 방지 처리가 되어 있어도 물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막지를 못한다. 저항이 계속 발생되며 소매가 돌돌 말려 올라간다. 왜 대회 때마다 수영 나오면 소매가 말려 올라가있는지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남은 기간도 별로 없고 가격도 비싸서 실내 수영장 연습 때 발견하고도 새 스윔 스킨을 구입하진 못했다. 기존 스윔 스킨은 처분하고 민소매 스윔 스킨을 구입해야지. 예전에는 하와이 코나 대회나 동남아 대회 나가는 분들만 구입했었는데, 요즘에는 기후변화로 우리나라 대회도 스윔 스킨 착용 기회가 많을 것 같아 점점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계속 생각해 봤지만 너무 비싸다. 좋다는 브랜드 제품은 수입 통관을 거치며 50만 원 내외 가격이 된다. 여자분들은 그나마 선택지가 넓다. ‘반전신‘ 수영복을 구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싸도 운동에 환장해서 아까워도 결국 돈 쓰는 운동 아저씨들은 모두 호구.
다이빙 입수를 했는데, 새로 구입한 오픈워터 수경이 살짝 뜨는 현상이 벌어지며 물이 쑥 들어왔다. 무시하고 수영하기에는 물이 많이 들어와서 물에 들어가자마자 잠깐 멈춰서 들어갔던 물을 빼내고 수경 패킹을 안와 주변에 꾹꾹 눌러서 다시 출발하였다. 패킹이 느슨한 현상이 지속되었다. 수경은 잘못이 없다. 여포 군에게 화살을 맞았던 하후돈만큼은 아니더라도 눈알이 살짝 튀어나올 듯 끈을 꽉 조여맸어야 하는데, 내 준비가 미흡했다. 실내 수영장에서 연습할 때랑 대회에서 다이빙 출발하고 격렬하게 몸 싸움하며 수영할 때랑은 상황은 다른데 오랜만에 대회 참가하다 보니 감이 떨어졌나 보다.
조그스 오픈워터 수경을 처음 구입했다. 기존에는 실내에서 사용하던 센티 수경을 오픈워터 때도 사용했다. 그냥 무슨 기분인지 올해는 오픈워터 대회 나갈 때 오픈워터 수경을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주에 주문했다. 오픈워터 수경은 비싸다. 왜 비싼지는 딱히 근거가 없다. 오픈워터 수경 중에는 폴러라이즈드, 편광렌즈나 변색렌즈 수경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더 비싸다. 이것저것 사용해 보니 변색렌즈는 정말 쓸데없고, 편광렌즈는 사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다. 계곡물이나 폭포 사진 찍을 때 낙수 효과를 연출할 때 밝은 빛에도 노출 시간을 늘려주는, 어두운 필터 같은 렌즈다. 수경 회사에서는 빛 반사를 줄여준다며 햇빛을 마주해도 눈부심이 덜하다고 광고하는데 그냥 시커먼 선글라스다. 문제는 물속에서도 어둡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색 렌즈와 편광렌즈 수경이 아닌 평범한(?) 제품을 골랐다. 그런데도 5만 원이 넘는 가격이다. 대회 나가는 사람들의 절박함을 이용한 상술 같다. 매번 2만 원짜리 수경 쓰다가 6만 원짜리 수경을 쓰니 기분은 좋다. 렌즈가 커서 시야는 훤하다. 다행히 날씨가 흐려서 눈부심 빛 반사도 없다. 하지만 햇볕 쨍쨍한 날에 사용해도 무방할 것 같다. 역시 변색과 편광렌즈는 안 사야지. 내 비록 10만 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용당하는 기분은 느끼고 싶지 않으니까.
750m 두 바퀴이기 때문에 첫 바퀴를 돌고 다시 폰툰으로 나와 두 번째 입수할 때에는 헤드퍼스트 다이빙이 아닌 그냥 다리부터 첨벙 들어갔다. 양손으로 수경 꾹 누른 채로. 모양은 안 좋지만 또다시 수경 벗겨지면 여러모로 손해니까. 다음에는 꼭 눈알 튀어나올 듯 끈 조이기. 명심하자. 하후돈 장군.
올해 겨울부터 평일에는 거의 매일 아침 20분씩 자유수영을 하며 수영 감각이 좋아져 이번 대회에서 그동안의 노력을 증명하고자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수영은 한 번에 몰아서 긴 시간 연습하는 것보다 짧더라도 매일 또는 자주 연습하는 것이 감각 향상에 좋다고 하는데, 실제 그랬다. 20분이면 1000m 내외로 연습할 수 있는데, 수영짱 서수교에서 배웠던 드릴이나 영법 자세와 감각에 집중하여 연습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 3종 시즌을 앞두고 최근 수영 연습을 통해 내가 중점을 둔 것은 크게 4가지이다.
1. 입수 위치 11시 59분과 12시 01분
- 입수하는 손이 머리 정수리 기준 중앙선을 넘기면 안 된다는 영상과 강습이 워낙 많다. 중앙을 넘기지 않기 위해 살짝 옆으로, 11자 또는 Y자 형태로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리커버리 손을 11시, 1시 방향으로 입수시킨다는 느낌으로 수영했는데, 실제 내 느낌과는 다르게 지난 1월 아이언맨 크루 수영 모임 때 하이님이 지적하고, 서수교 강습 때 선생님이 확인해 줬던 것처럼 실제로는 10시, 2시 또는 9시, 3시 방향으로 손이 들어가면서 어깨와 팔 상박 등 전면 저항이 크게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1시 59분, 12시 01분 또는 그냥 정수리 방향 12시에 손을 넣는다는 느낌으로 해야 겨우 제대로 된 위치에 넣을까 말까 했다. 실제 90도에 가까운 몸통 롤링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2. 팔은 ‘탁’ 떨어뜨리기
- 캐치 동작에서 하이 엘보를 유지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 욕심 때문인지 캐치 동작부터 물을 잡으려고 애썼다. 이렇게 캐치에서부터 물을 잡으면 50미터, 100미터는 갈 수 있다. 그 이상의 거리는 어깨 털려서 힘 다 빠진다. 페이스는 쭉 떨어진다. 캐치 동작은 물 잡을 생각 따위 하나도 하지 말고, 저항이 발생하든 말든 스트로크 시작 때 과감하게 팔꿈치 아래를 떨어뜨려 하이 엘보 각도를 만든다. 그냥 ‘팔 내려야지.’ 생각만 하니 뜻대로 잘되지 않아 ‘탁‘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며 수영하니 그나마 나았다.
3. 발등을 수면에 걸친다는 느낌으로
- 나처럼 수영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공통 특징이 어깨, 팔 등 전면뿐만 아니라 다리와 발이 가라앉아 저항이 발생되는 것이다. 다리도 가라앉는데 발목도 유연하지 않아 수영하는 내내 쭉 펼치질 못하니 쟁기처럼 발목이 90도 직각으로 내려와 발등에서 거의 물이 역류하는 수준으로 저항이 걸린다. 발등을 수면에 걸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몸을 쭉 늘려주는 감각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발등을 수면에 걸친다고 해서 무릎을 굽혀 뒷다리를 든다는 의미는 아니다. 코어를 이용해서 롤링하고 전진할 때 내내 다리를 쭉 늘리고 버텨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왜 4방향(전면, 사이드 좌/우, 백) 플랭크 보강을 많이 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해당 동작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9가지 근력 밸런스 보강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은 보강이다.
4. 글라이딩 할 때에는 체중을 줄여서 몸이 두둥실 나아간다는 느낌으로
- 스트로크 푸시를 할 때에는 몸에 힘을 빼고 앞으로 쑥 나아가는 감각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이렇게 나만의 4가지 중점 사항이 어느 정도 다 들어맞을 때 ’클린‘하다고 생각되면 ’카운트’를 했다. 서수교 선생님께 배운 대로 4번 스트로크 할 때마다 2번의 클린 카운트를 목표로. 4번에 2번이라는 이 숫자가 기가 막힌다. 똑같은 5할이지만 2번에 1번은 너무 빈번해서 정신없다. 6번에 3번은 너무 많다 보니 6번 스트로크 세다 보면 정신 줄 놓기 십상이다. 4번에 2번만 클린 하게 물 젓자. 딱 좋다. 야구에서는 4할 타자도 거의 없다. 5할이면 최고의 승률이다.
4번에 2번씩 클린 카운트 유지하도록 자세와 감각에 집중하며 수영했다. 자신감도 있었다. ‘출발 때 수영은 벗겨져서 몇 초 시간 잃었지만 오늘 수영 좋은데? 몸에 힘도 안 들어가고 어깨도 편안한걸?‘ 편안은 개뿔. 첫 바퀴 나오며 시계를 봤는데 15분을 넘겼다. 허탈했다. 오늘도 30분 나오는 건가?
평소 실내 수영장에서 연습하면 웜업으로도 750미터는 12분 대, 가끔 1500미터 웜업 할 때에는 25~26분 대가 나와서 오픈워터임을 감안하더라도 대회 때라면 그와 비슷하게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아주 큰 착각이었다. 수포자의 심정으로 두 번째 바퀴는 더욱 자세에 집중하며 더 이상 서두르지 않았다. 더 편한 느낌으로 수영했는데 시간은 거의 비슷했다. 역시 사회생활이든 수영이든 처음부터 급발진해 봤자 나만 손해다.
수영 마치니 30분 19초. 작년 이 대회에서 29분 14초였는데 1분 느려졌다. 오늘 편안했던 그 느낌은 말 그대로 편안하게 수영해서 그런가 보다. 정신 차리고 분발하자. 올해 남은 대회에서는 수영 좀 잘해봐야지.
바꿈터로 가는 길. 내 나름대로 죽지 않을 것 같은 범위 내에서 최대한 빨리 뛰어가지만 매번 결과를 보면 남들보다 매우 느리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길래 그 시간에 바꿈을 마치지? 전력 질주를 하는 건가? 내 두 눈으로 좀 보고 싶은데 수영이 느려서 직접 볼 수가 없네.
레이스 벨트를 먼저 착용. 탄성 끈으로 교체하고 베이비파우더를 뿌려둔 나이키 베이퍼 플라이 4를 맨발에 바로 신고 뛰어나간다. 모자는 안 쓴다. 야외에서 열리는 대회라면 사진도 찍히고 햇볕도 있으니 미역 줄기 같은 머리를 정리하고자 모자를 쓰는데, 롯데 아쿠아슬론 대회는 실내 계단이라 사진 찍힐 일도 없고 덥고 습한 계단실에서 뚜껑 닫으면 열이 빠지지 않아 힘들다는 것을 지난 몇 대회에서 깨닫고 올해는 모자를 쓰지 않았다. 역시 좋았다.
대회를 앞두고 계단 훈련은 5회 정도 하였다. 집이 22층이다. 새벽 트랙 러닝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2주 전 평일 3일, 이번 주 평일 2일 1층에서 22층까지 계단 오르기를 연습했다. 무게중심을 위로, 어떻게든 몸을 위로 올려 다리에 쌓이는 피로와 충격을 줄이는 감각에 집중했다. 계단 ’훈련‘은 고관절과 다리를 사용하는 하체 운동이지만 계단 ’레이스’는 상체 운동이다. 대회는 고층 빌딩 실내 계단에서 이루어지니 손잡이 난간이 있어 무게중심을 올리고 엉덩이 허벅지가 수축되고 충격받기 전에 손과 팔을 이용해서 몸을 띄울 수 있다.
계단 오르기를 하면 러너의 유형이 파악된다.
1. 그냥 달리기도 잘 하는데 계단도 빠르게 잘 오르는 사람
> 그냥 훌륭한 사람
2. 그냥 달리기도 빠르지 않은데 계단도 빠르지 않은 사람
> 앞으로 훌륭해질 수 있는 사람
3. 그냥 달리기는 빠른데 계단에서는 느린 사람
> 밀어서 달리는 사람. 주로 마라톤 기록 좋은 젊은 사람들이 많다. 당기며 뛰지 않지만 힘 좋고 심장 좋아서 잘 뛴다. 역시 젊음은 좋은 것. 하지만 계단에서는 내 온몸의 무게를 다리와 발과 짊어지니 매 걸음마다 지옥이다.
4. 그냥 달리기는 빠르지 않은데 계단에서는 빠른 사람
> 기술은 좋다. 하지만 정신력이 약한 인간이다.
층을 올라갈 때마다 첫 칸은 한 칸만 올라가고 나머지는 두 칸씩 올라간다. 추월할 때만 ’뛸’ 뿐이고 계속 멈추지 않고 그리고 걷지 않고, ‘빨리 걷는다’ 생각으로 올라간다. 허벅지가 쪼그라들기 전에 손잡이를 이용해 매 걸음마다 내 몸을 띄운다.
30층 올라갈 때까지는 그냥 간다.
30층에 도달하면 ‘이거 4번만 더 하자.‘
40층에 도착하면 ‘3번만 하자.’
60층. ‘절반했네.’
80층. ‘앞으로 20 받고 20만 더.’
100층. ‘곧 끝.’ 이때까지 허벅지 살아있어야 한다
117층부터는 계단 통로 분위기가 바뀐다. 전망대로 가는 길이라며 관광지 느낌이 나는데 그동안 아껴두었던 다리로 이때부터 남은 힘 다 짜내면서 20초 줄인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뛰어 올라가야 한다. 작년 대회에서는 2위 분과 치열하게 경쟁했던 탓에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뛰어 올라갔지만 올해는 앞뒤 주자 없이 혼자 올라가다 보니 짜내기를 하지 못했다. 123층 22분 44초. 작년보다 20초 정도 느려졌는데 정말 막판 짜내기가 부족했기 때문인가?
보급은 경기 시작 1시간 전, 타우린과 아르기닌과 카페인과 베타알라닌이 섞여 있는 프리워크아웃 블렌드 1숟가락, 베타알라닌 추가 1숟가락, 크레아틴 1숟가락 섞은 것을 물에 혼합하여 먹었다. 경기 출발 직전 파워 젤 1개 섭취하고, 수영 마치고 러닝 시작 전 추가 파워 젤 1개 섭취하였다. 경기 마치고 햄버거를 먹었다. 괜히 먹었다. 학생 때는 맛있다며 좋다며 불고기버거 잘도 먹었지만, 운동에 빠지고 저속 노화에 관심을 갖게 되니 돼지고기 패티에 인공 조미료 감미료 향 가득한 소스를 바른 빵을 과연 ‘음식’이라 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물품 보관했던 가방을 서둘러 찾았다. 내 등수를 확인했다. 아직 경기 종료 전이고 넷타임으로 집계되니 변동 가능하지만 실력과 기록에 비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기 오라고 했다. 내가 상 받게 되면 아내랑 아이가 오고, 상 못 타면 그냥 밥집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상 받는 것 정도는 구경해 주지만 남편과 아빠가 경기하는 모습 따위는 덥고 습한 여름날 딱히 응원까지 할 마음은 없는 착한 가족이다.
시상식과 가족을 기다리며 잔디밭에서 우공비야 님과 여러 얘기를 했다. 최근 인도네시아 발리 다녀오신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듣다 보니 발리에 정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역시 여행은 좋은 것. 운동에 미치지 말고 여행에 미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아내와 아이가 도착했다. 우공비야 님과 인사를 시켰다.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아내가 조용히 물어보았다.
“혹시 저분은 누구시지?”
“함께 운동하는 팀오리지널파이어 우공비야 님.”
“아! 보스턴 엄마 분!”
그렇다. 우공비야 님은 보스턴 엄마. 우리들의 엄마.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라서 가족도 함께 하고, 좋은 분들도 많이 뵈어서 더욱 좋았다.
대회는 도전을 계속 마주하는 과정이다. 성공과 실패가 가득하다. 수영에서 1분, 계단 오르기에서 20초 등 늦어지며 작년보다 2분 정도 느려진 기록이다. 수영 기록을 보며 망연자실할 뻔했지만 역시 난 천성이 긍정적인 것인지 그냥 사람이 해맑은 건지 왠지 다음 대회부터는 수영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계단 오르기도 보완을 해야 하는데, 123층을 뛰어 올라가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 이건 내년에 생각해야지.
작년 9월 구례 대회 이후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6월 생활체육지도사 2급 철인 3종을 위해 평로라 연습을 며칠 했었는데 그건 탄 게 아니다. 다가오는 주부터 자전거를 탈 생각이다. 8월에 3종 하프(수영 1.9km 사이클 90.1km, 러닝 21.1km), 9월 3종 풀(수영 3.8km, 사이클 180.2km, 러닝 42.2km) 대회가 있으니 늦었지만 연습량을 조금씩 해나갈 계획이다. 때마침 1년 가까이 자전거를 안 타니 그 도도한 ZWIFT가 60일 무료 이용권 미끼를 던진다. 이런 게 있었네? 처음 알았다. 행운이다. 7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하고 바로 해지해서 결제는 안 해야지.
가족과 함께 평소 이용하던 함바집에서 식사하며 대회를 마무리하였다. 즐거웠다. 여러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