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북한산 둘레길 65K 트레일 러닝 대회

오들로 북한산 트레일 레이스 참가기

by 아이언파파

11월 8일 토요일

북한산 둘레길 65K 트레일런 대회

45K 이상 장거리 트레일런은 오랜만이었고(거의 10년), 65K라는 거리 또한 인생 최장이자 트레일 최장이기 때문에 설레고, 두려웠다.

- 트레일런은 마니아들 영역. 대회장에서는 친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알아보고 인사하는 가족애 전우애가 느껴짐. 예전 스키 모굴 대회나 MTB 다운힐 대회장 같다. 나는 혼자 멀뚱멀뚱

- 극소수 입상권자 아니면 앞자리 차지하려는 의지 같은 건 아무도 없음. 출발 직전 "5, 4, 3, 2, 1. 출발!" 카운트다운해도 다들 뒤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옆 사람이랑 대화 나누다가 천천히 걸어가듯 뛰어가며 출발. 이런 분위기 좋다. 바람직하다.

- 장비 검사는 생각보다 엄격. 랜턴이 2개인지 확인하고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확인.

- 종이컵 시절 이후 개인컵 규정으로 바뀐 다음 나의 첫 트레일 대회. 체크포인트에서 고무 컵 같은 곳에 콜라 받아먹는데 서글프기도 하고 재미(?) 있었다. 비스페놀에이 프리 제품이라고 하지만 절대 믿지 않는다. 아마 내 몸에 미세 플라스틱, 환경호르몬 따위 잔뜩 들어갔겠지.

- 처음이었지만 근거 없이 익숙한(?) 북한산이라는 이유, 등산길 아닌 둘레길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봤다. GPX를 다운로드하지 않았고 손목시계 네비게이터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 트레일런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알바'라고 하던데, 이 단어 유래와 어원은 모르겠다. 부끄럽게도 총 세 번 알바를 했다. 나름 길 찾는 것도 자신 있던 터라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방심했다.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다가 산 길(오솔길)로 쏙 들어가는 구간들이 있다. 아스팔트에서 땅만 바라보고 뛰다가 놓쳤던 것이다.

- 총 세 번 알바 중 두 번은 몇 백 미터만 지나쳐 빠르게 수습했지만 한 번은 크게 돌아갔던 탓에 거의 3km 가까이 손해 봤다. GPS 기준 최종 거리 63km 정도라고 하던데 66km 넘게 나왔다.

- 갈림길마다 진행 요원이나 자원봉사 분들이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대회들만 나가다 보니, 내 갈 길 내가 직접 챙겨야 하는 이 세계 규칙을 뒤늦게 몸으로 깨달았다. 다음부터는 GPX를 미리 내려받고, 시계 네비게이터 기능을 활용해야지.

- 샤인 머스캣, 방울토마토, 바나나, 샌드위치, 찹쌀떡, 김밥. 평소 대회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보급품. 여기서는 안 먹을 수가 없다. 살려고 먹었다. 체크포인트 도착할 때마다 1인당 수량 제한이 있는 보급품(예: 김밥 1인 1줄) 외에는 손 닿는 대로 입에 집어넣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봤던, 선두권 후미권 할 것 없이 장거리 종목에서 사람들이 양쪽 볼이 튀어나올 정도로 입안 가득 먹을 것들 채우는 이유를 직접 알 수 있었다.

- 체크포인트 중간에 개인 준비했던 에너지 젤도 먹었다. 달리려면 살아야 한다. 살려면 먹어야 한다.

- 3종이나 MTB 등 다른 종목 초보 때 이것저것 먹다가 경험이 쌓이고 지구력 나아지면서 대부분 보급을 에너지 젤로 대체했는데, 트레일런에서도 그런 날이 올까? 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 체크포인트에서 간식 먹는 재미로 산 달려야지.

- 40km 지날 즘 산길이 아닌 평창동 대저택 주택가 아스팔트 도로를 지난다. 오르막과 평지는 괜찮지만 내리막에서는 (내 다리가 모두 고장 났던 탓에) 똑바로 내려올 수 없었다. 결국 뒤돌아서서 거꾸로 뛰어 내려왔다. 근육 경련 발생되면 무조건 기권(DNF)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 조심했다. 아슬아슬했다. 다행히 트레일런은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면 잠깐 속도를 줄이고 걸으면서 회복할 수 있다. 잠깐씩 회복하며 겨우 살렸다.

- 평창동 구간에서는 아내 출산 때 입원하기 전 함께 왔던 <더 피아노> 카페가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반가웠다.

- 그건 그렇고 평창동, 이런 집에 사는 분들은 뭐 하는 분들이시고? 아부지 뭐 하시노? 부럽노 ㅋ

- 오랜만의 트레일 러닝이고 첫 장거리, 쌀쌀한 가을 대회였기 때문에 야간에는 달리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무섭기도 하고.

- 아침 7시 출발. 해가 기울어지는 오후 5시 이전 종료를 목표로 했다. 10시간. 다행히 목표 시간 내 완주하였고, 랜턴 사용은 하지 않았다.

- 어쨌든 이번 대회는 내 인생 최장거리 달리기

- 다만 기록칩을 흔히 보던 배번표 기록칩이 아닌 종이 태그 같은 것이었는데, 부실한 것이 아쉬웠다.

- CP에서마다 내 기록칩을 인식하는 ’삐빅’ 소리가 나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찍고 확인하고 출발

- 결국 도착지점에서 찍히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 피니시 라인 통과하는 건 대회본부에서 모두 봤으니 내 기록을 수동으로 입력해 주었는데, 수동 입력하는 그 순간 초 입력이 되기 때문에 수정이 안 되었다. 9시간 51분 2~3초지만 수동 입력 후 9시간 51분 54초. 나는 순위권도 아니고 기록 도전자도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마지막 700m 평지 도로 구간 여러 명이서 함께 달리며 내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렸는데 내가 왜 그런 헛수고를 했나 싶기도 하고ㅋ

- 트레일런 장점. 입상이나 순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제한 시간 내 완주만 해도 동일하게 UTMB 인덱스(그리고 스톤), 또는 ITRA 포인트를 지급받는다.

- 내가 트레일런에 발 들인 이유도 UTMB에 나가기 위한 것. UTMB 참가권 추첨에 응모하려면 다른 대회에서 '스톤'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스톤'을 주는 UTMB 시리즈 대회는 10월 트랜스 제주 대회가 유일하다. UTMB 시리즈 대회에 나가려면 또 다른 대회에서 완주하여 인덱스를 받고 모아야 한다.

- 참고로 이번에 참가한 오들로 북한산 트레일 레이스는 ITRA 포인트만 지급되고 UTMB 인덱스는 없다 ㅋ

- 나의 트레일 버킷리스트는 HK100 또는 트랜스 란타우(홍콩), FUJI100(일본), Lavaredo(이탈리아 돌로미테), UTMB(프랑스 샤모니) 등

- 오래 살아야지. 오래 달려야지.

- 65km를 이렇게 천천히 달려도 이렇게 힘든데, 100마일(160km) 대회는 어떻게 달려야 하는 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100km까지는 어떻게든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100마일 대회는 산을 주 종목으로 운동하는 '진지한' 트레일 러너들이 나가야 하는 대회라고 깨달았다.

- 나는 한 발만 걸쳤으니 100km까지. 내년 목표도 100km 대회 완주 그리고 UTMB 스톤 획득. 만약 신청을 할 수 있다면 5월 강릉 TNF100, 10월 트랜스 제주 100K.

- UTMB 목표도 가장 긴 종목이 아닌 OCC? 짧은 종목으로 나가야지. 샤모니 마을 돌아다니려면 대회 마치고 다리 멀쩡해야 하니까ㅋ

- 원래 그런 것인지 내 성격이 그런 것인지 모든 대회에서는 배울 점이 있다.

- 북한산 둘레길 다녀온 후 일주일 내내 근육통이 계속되었다. 보통 48시간 지나면 괜찮아지지만, 이번에는 4일 되도록 계단을 내려가기 힘들 정도였다.

- 도로 달리기를 할 때에도 내리막이 약했는데,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내리막에서 특히 엉덩이가 뒤로 빠진다는 것. 엉덩이 근육을 사용하여 앞으로 골반을 밀어주듯 매 걸음마다 빠지지 않도록 동작하는 감각을 느꼈다. 이번 겨울에는 이것 위주로 연습해 봐야지.

내년 장거리 트레일 대회 완주를 위해 경험과 연습 겸 북한산 둘레길 65K 트레일 러닝 대회에 참가하고 무사히 완주하였습니다. 대회 준비하신 분들, 함께 달리신 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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