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들로 북한산 트레일 레이스 참가기
11월 8일 토요일
북한산 둘레길 65K 트레일런 대회
45K 이상 장거리 트레일런은 오랜만이었고(거의 10년), 65K라는 거리 또한 인생 최장이자 트레일 최장이기 때문에 설레고, 두려웠다.
- 트레일런은 마니아들 영역. 대회장에서는 친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알아보고 인사하는 가족애 전우애가 느껴짐. 예전 스키 모굴 대회나 MTB 다운힐 대회장 같다. 나는 혼자 멀뚱멀뚱
- 극소수 입상권자 아니면 앞자리 차지하려는 의지 같은 건 아무도 없음. 출발 직전 "5, 4, 3, 2, 1. 출발!" 카운트다운해도 다들 뒤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옆 사람이랑 대화 나누다가 천천히 걸어가듯 뛰어가며 출발. 이런 분위기 좋다. 바람직하다.
- 장비 검사는 생각보다 엄격. 랜턴이 2개인지 확인하고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확인.
- 종이컵 시절 이후 개인컵 규정으로 바뀐 다음 나의 첫 트레일 대회. 체크포인트에서 고무 컵 같은 곳에 콜라 받아먹는데 서글프기도 하고 재미(?) 있었다. 비스페놀에이 프리 제품이라고 하지만 절대 믿지 않는다. 아마 내 몸에 미세 플라스틱, 환경호르몬 따위 잔뜩 들어갔겠지.
- 처음이었지만 근거 없이 익숙한(?) 북한산이라는 이유, 등산길 아닌 둘레길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봤다. GPX를 다운로드하지 않았고 손목시계 네비게이터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 트레일런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알바'라고 하던데, 이 단어 유래와 어원은 모르겠다. 부끄럽게도 총 세 번 알바를 했다. 나름 길 찾는 것도 자신 있던 터라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방심했다.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다가 산 길(오솔길)로 쏙 들어가는 구간들이 있다. 아스팔트에서 땅만 바라보고 뛰다가 놓쳤던 것이다.
- 총 세 번 알바 중 두 번은 몇 백 미터만 지나쳐 빠르게 수습했지만 한 번은 크게 돌아갔던 탓에 거의 3km 가까이 손해 봤다. GPS 기준 최종 거리 63km 정도라고 하던데 66km 넘게 나왔다.
- 갈림길마다 진행 요원이나 자원봉사 분들이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대회들만 나가다 보니, 내 갈 길 내가 직접 챙겨야 하는 이 세계 규칙을 뒤늦게 몸으로 깨달았다. 다음부터는 GPX를 미리 내려받고, 시계 네비게이터 기능을 활용해야지.
- 샤인 머스캣, 방울토마토, 바나나, 샌드위치, 찹쌀떡, 김밥. 평소 대회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보급품. 여기서는 안 먹을 수가 없다. 살려고 먹었다. 체크포인트 도착할 때마다 1인당 수량 제한이 있는 보급품(예: 김밥 1인 1줄) 외에는 손 닿는 대로 입에 집어넣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봤던, 선두권 후미권 할 것 없이 장거리 종목에서 사람들이 양쪽 볼이 튀어나올 정도로 입안 가득 먹을 것들 채우는 이유를 직접 알 수 있었다.
- 체크포인트 중간에 개인 준비했던 에너지 젤도 먹었다. 달리려면 살아야 한다. 살려면 먹어야 한다.
- 3종이나 MTB 등 다른 종목 초보 때 이것저것 먹다가 경험이 쌓이고 지구력 나아지면서 대부분 보급을 에너지 젤로 대체했는데, 트레일런에서도 그런 날이 올까? 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 체크포인트에서 간식 먹는 재미로 산 달려야지.
- 40km 지날 즘 산길이 아닌 평창동 대저택 주택가 아스팔트 도로를 지난다. 오르막과 평지는 괜찮지만 내리막에서는 (내 다리가 모두 고장 났던 탓에) 똑바로 내려올 수 없었다. 결국 뒤돌아서서 거꾸로 뛰어 내려왔다. 근육 경련 발생되면 무조건 기권(DNF)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 조심했다. 아슬아슬했다. 다행히 트레일런은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면 잠깐 속도를 줄이고 걸으면서 회복할 수 있다. 잠깐씩 회복하며 겨우 살렸다.
- 평창동 구간에서는 아내 출산 때 입원하기 전 함께 왔던 <더 피아노> 카페가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반가웠다.
- 그건 그렇고 평창동, 이런 집에 사는 분들은 뭐 하는 분들이시고? 아부지 뭐 하시노? 부럽노 ㅋ
- 오랜만의 트레일 러닝이고 첫 장거리, 쌀쌀한 가을 대회였기 때문에 야간에는 달리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무섭기도 하고.
- 아침 7시 출발. 해가 기울어지는 오후 5시 이전 종료를 목표로 했다. 10시간. 다행히 목표 시간 내 완주하였고, 랜턴 사용은 하지 않았다.
- 어쨌든 이번 대회는 내 인생 최장거리 달리기
- 다만 기록칩을 흔히 보던 배번표 기록칩이 아닌 종이 태그 같은 것이었는데, 부실한 것이 아쉬웠다.
- CP에서마다 내 기록칩을 인식하는 ’삐빅’ 소리가 나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찍고 확인하고 출발
- 결국 도착지점에서 찍히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 피니시 라인 통과하는 건 대회본부에서 모두 봤으니 내 기록을 수동으로 입력해 주었는데, 수동 입력하는 그 순간 초 입력이 되기 때문에 수정이 안 되었다. 9시간 51분 2~3초지만 수동 입력 후 9시간 51분 54초. 나는 순위권도 아니고 기록 도전자도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마지막 700m 평지 도로 구간 여러 명이서 함께 달리며 내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렸는데 내가 왜 그런 헛수고를 했나 싶기도 하고ㅋ
- 트레일런 장점. 입상이나 순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제한 시간 내 완주만 해도 동일하게 UTMB 인덱스(그리고 스톤), 또는 ITRA 포인트를 지급받는다.
- 내가 트레일런에 발 들인 이유도 UTMB에 나가기 위한 것. UTMB 참가권 추첨에 응모하려면 다른 대회에서 '스톤'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스톤'을 주는 UTMB 시리즈 대회는 10월 트랜스 제주 대회가 유일하다. UTMB 시리즈 대회에 나가려면 또 다른 대회에서 완주하여 인덱스를 받고 모아야 한다.
- 참고로 이번에 참가한 오들로 북한산 트레일 레이스는 ITRA 포인트만 지급되고 UTMB 인덱스는 없다 ㅋ
- 나의 트레일 버킷리스트는 HK100 또는 트랜스 란타우(홍콩), FUJI100(일본), Lavaredo(이탈리아 돌로미테), UTMB(프랑스 샤모니) 등
- 오래 살아야지. 오래 달려야지.
- 65km를 이렇게 천천히 달려도 이렇게 힘든데, 100마일(160km) 대회는 어떻게 달려야 하는 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100km까지는 어떻게든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100마일 대회는 산을 주 종목으로 운동하는 '진지한' 트레일 러너들이 나가야 하는 대회라고 깨달았다.
- 나는 한 발만 걸쳤으니 100km까지. 내년 목표도 100km 대회 완주 그리고 UTMB 스톤 획득. 만약 신청을 할 수 있다면 5월 강릉 TNF100, 10월 트랜스 제주 100K.
- UTMB 목표도 가장 긴 종목이 아닌 OCC? 짧은 종목으로 나가야지. 샤모니 마을 돌아다니려면 대회 마치고 다리 멀쩡해야 하니까ㅋ
- 원래 그런 것인지 내 성격이 그런 것인지 모든 대회에서는 배울 점이 있다.
- 북한산 둘레길 다녀온 후 일주일 내내 근육통이 계속되었다. 보통 48시간 지나면 괜찮아지지만, 이번에는 4일 되도록 계단을 내려가기 힘들 정도였다.
- 도로 달리기를 할 때에도 내리막이 약했는데,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내리막에서 특히 엉덩이가 뒤로 빠진다는 것. 엉덩이 근육을 사용하여 앞으로 골반을 밀어주듯 매 걸음마다 빠지지 않도록 동작하는 감각을 느꼈다. 이번 겨울에는 이것 위주로 연습해 봐야지.
내년 장거리 트레일 대회 완주를 위해 경험과 연습 겸 북한산 둘레길 65K 트레일 러닝 대회에 참가하고 무사히 완주하였습니다. 대회 준비하신 분들, 함께 달리신 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