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JTBC 마라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길

by 아이언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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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행 잘 했다! 진짜 너무 힘들었네.'

42.195km. 올림픽 공원 소마미술관 앞 도로에 마련된 결승점을 통과하며 생각하였다. 날씨 좋은 일요일, 마라톤 대회 덕분에 서울 곳곳을 뛰어다녔다. 힘들었다. 깨달았다. '서울이 이렇게 오르막 많은 도시였다니.'

JTBC 마라톤이 지난 11월 2일 일요일에 열렸다. 3월 서울마라톤, 10월 춘천마라톤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풀코스 마라톤 대회 중 하나이다. 마라토너들에게는 가을 축제와도 같은 '연중행사'이다.

예전 대회 명칭은 중앙마라톤. 1999년부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하프 마라톤이었다. 풀코스 대회로 종목이 확대되었고 2018년부터는 대회 명칭 또한 JTBC 마라톤으로 변경되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잠실 종합운동장을 출발하여 수서, 경기도 성남 일대를 달리고 다시 잠실로 복귀하는 코스였다. 도심 외곽을 달리기 때문에 지루한 코스라는 평이 있었다.

코로나 이후 2022년 대회가 재개되며 몇 번의 코스 변경 끝에 지금은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출발하여 여의도, 마포, 종로, 건대입구역, 잠실대교, 가락시장을 거쳐 올림픽공원에서 마치는 '서울 관광' 코스가 되었다.

3월 서울마라톤을 위해서 겨울 훈련을 해야 하고 10월과 11월 가을 마라톤을 위해서는 더운 여름에 집중해야 한다. 사계절이 뚜렷함은 우리의 장점이지만 날씨 그 자체가 마라토너들에게는 큰 도전인 셈이다. 대회를 3~4개월 앞둔 6월쯤이면 모두 굳은 각오를 불태운다. 실천은 쉽지 않다. 한여름의 더위와 휴가, 추석 연휴로 기분이 들썩이면 의지는 약해진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마라톤 또한 갈망의 산출물이 아니라 행동의 결과이다. 여름을 뚫고 부지런히 움직였던 마라토너가 가을에 결실을 얻어 간다.

섭씨 0~10도 사이의 기온에서 출발하여 대회가 마치는 시점에도 15도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달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쌀쌀하지만 마라토너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JTBC 마라톤은 양화대교와 마포대교, 잠실대교 총 3번의 한강 다리를 건넌다. 넓은 한강을 건널 때에는 강바람 때문에 춥기도 했지만 견딜만하였다.

마포 공덕오거리부터 충정로로 넘어가는 구간에서 애오개역을 지난다. '애오개'라는 지명은 아이처럼 작고 낮은 언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아이 고개라니. 이름이 지나치게 귀엽다. 마라토너에게는 뛰어 올라가기 힘들어서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구간이다.

종로와 동대문, 통제된 도로에서 서울 도심 구간을 달리는 기분은 짜릿하다. 군자교와 건대입구역을 지나 잠실 일대까지 넓은 도로를 마라토너들이 독차지하고 마음껏 달린다. 대회 코스 내내 빈틈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응원이 이어진다. 몇 년 사이 러닝 저변이 확대되고 문화도 성숙되었다는 것을 체감한다.

러닝 인구 천만 시대지만 대회 때마다 반복되는 교통 통제에 대한 민원은 앞으로도 당분간 큰 숙제이다. 어떤 이들은 도시 전체를 통제하다시피하며 축제를 즐기듯 대회가 열리는 다른 나라 사례와 비교하기도 한다.

서로 이해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교훈 같은 이야기는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이미 달리기 판에 발 들인 ‘고인 물’ 러너로서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즐기고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풀코스만 5만 명 이상 참가하는 진짜 ‘메이저’ 대회들이 우리나라에도 하나둘 생겨난다면 대회를 뛰는 마라토너뿐만 아니라 뛰지 않는 시민들도 축제처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35km를 넘어 수서 IC. 가장 힘든 구간 중 하나. 차 타고 갈 때는 특별할 것 없지만 도시고속화도로 나들목은 '달려서' 올라가기에 지옥 같은 곳이다. 힘들게 한 발씩 내디디며 뛰어가는 길, 교통 통제로 줄지어 늘어선 차량들 사이에서 어느 운전사분이 불평하듯 소리쳤다.

"이렇게 날씨 좋은 날에 마라톤을 왜 하냐고!"

지치고 힘든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렇지. 이게 정상은 아니지.'

살다 보면 일상과 취미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를 만난다. 운동에 빠지면 주변 사람도 자연스럽게 운동하는 사람들로'만' 채워진다. '날씨 좋으면' '뛰기 좋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다 보니 시원하고 화창한 날 마라톤 달리면서 그것이 기쁜 것이라고 느끼는 행위가 결코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걸 잊고 있었다.

나들이 가기 좋은 가을날, 30분 정도 기분 좋게 달리는 정도가 아니라 고통을 견디며 42.195km를 달리는 게 즐겁다는 '희한한' 사람들.

상식으로는 이해 안 되지만 몇 번 달려보면 알 수 있다. 희한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이해하며 얻은 생각과 그렇게 다져진 인식들이 내 정서의 자양분이 된다. 달릴 때마다 나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면 역설적으로 내가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일상을 버티는 힘이 된다.

2시간 52분. 목표했던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다. 숨이 턱 막히는 8월 아침 공기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10월 늦장마 속에서도 대회를 위해 달렸기 때문에 아쉬웠다.

어떤 이들은 대회를 마친 직후 이렇게 괴로운 운동은 다시 하지 않을 것이라며 푸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풀코스에 참가할 정도로 달리기에 빠진 마라토너라면 이미 달리는 즐거움에 중독된 상태다. 기록 향상은 더디지만 매일 반복했기 때문에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이미 몸이 감각하고 있다. 나아지는 것을 느끼면 재미있다. 재미있으면 결국 다시 하게 된다.

누군가는 오늘 반성문을 쓰고 내일 계획표를 쓰는 게 인생이라고 하였다. 달리는 고통이 큰 사람은 달리지 않는다. 달리지 않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결국 달린다.

내년 봄 마라톤을 계획한다. 새벽 5시. 기온은 영상 2도. 춥겠지. 달리지 않고 좀 쉴까? 몸이 가만히 있질 못한다. 오늘도 운동화 끈을 묶고 현관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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