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마라톤 풀코스 2시간 56분 47초
저조한 기록이지만 만족한 결과이다.
코스와 날씨 모두 기록 내기 좋은 환경이었다. 서울마라톤 코스가 좋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고, 올해에는 날씨 또한 경기 후반 보슬비가 내리며 다소 추웠지만 풀코스 기록 달성에는 적합했다.
누적 훈련 거리 12월 205km, 1월 197km.
12월 초 가족과 여행을 다녀왔다. 숙소 밖에서 달리기에는 날씨가 무덥고 동네 치안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아 매일 숙소에서 트레드밀을 달렸지만 따뜻한 남국의 풍성한 과일과 해산물을 맛보니 제대로 된 훈련은 힘들었다. 앞으로는 여행 가서 운동한다는 생각은 하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족 여행을 다녀오고 얼마 안 되어 거짓말처럼 빙부상을 치르게 되었다. 7년 동안 지병을 앓고 계시며 나날이 기력이 쇠약해진 장인어른이었지만 갑작스러웠다. 예고는 되어 있지만 준비는 되어 있지 않던 이별. 아내도 상심이 컸고 'Father In Law' 이상의 끈끈한 정이 있던 분이었기에 나 역시 마음 아팠다. 장례와 보험, 행정 처리로 슬퍼할 겨를 없이 일주일 훌쩍 시간이 흐르고 다시 새벽에 '달릴 만할'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대회와 기록을 위한 달리기가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달리기였다.
물리적으로 보내드렸지만 심정으로는 아내의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아버님이다. 집에서 배경음악처럼 켜놓은 <클래식 FM>에서 가끔 한국 가곡이 흘러나올 때, '그리워라', '보고픈' 같은 가사가 나오면 아내는 어김없이 훌쩍이며 눈물 흘렸다. 아내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나에게도.
한파가 한창이던 1월, 아내의 친구들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다. '아내 친구 모임' 같은 건 썩 내키지 않는 내 성격이지만 아내에게는 오랜 '죽마고우' 친구들이고 나도 연애 시절부터 봐온 덕분에 마음 편하다. 무엇보다 그 친구네 아이들이 우리 아이와 잘 놀아주는 형, 누나들이기 때문에 기분 전환하기 적당한 여행이었다. 12월과 다르게 이번에는 춥고 눈이 가득한 곳이라 밖에서 운동할 수 없었다. 숙소 내 피트니스센터도 이용할 수 없어 완전 휴식을 하였다. 따뜻한 방 안에서 아이들은 끼리끼리 놀고 어른들은 식탁에 앉아 못다 한 얘기를 밤새 실컷 나누며 그렇게 아내의 마음도 차츰 풀리곤 하였다.
여행과 빙부상, 그리고 다시 여행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논외로 하더라도 이번 겨울은 운동하기 쉽지 않았다. 종종 아내와 늦은 밤 시간에 (아버님에 대한) 옛 시간을 추억하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고, 영하 5도 이상 내려가는 추운 새벽이면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해 운동보다 수면을 택하였다. 12월과 1월 각각 2주 정도씩 새벽 운동을 하였다.
함께 운동하는 <팀오리지널파이어> 분들 덕분에 '운동 다운' 운동을 할 수 있었다. 한파가 심한 주말에는 탄천 실내 트랙에서 100미터 질주 반복을 하며 숨통을 터뜨리고 근신경에 자극을 주었다. 이번 겨울 장거리라곤 실내 트레드밀에서 28km를 달렸던 게 최장거리이고 40000미터 LSD 연습 겸 나갔던 대구마라톤은 더운 날씨로 초반에 포기했기 때문에 30000m 이상 장거리 다운 장거리를 한 번도 못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탄천 실내 트랙 포인트 훈련 덕분이었다.
대회 당일 출발이 매끄럽지 않았다. 화장실 (큰) 용변을 모두 완료했지만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소변감이 있어 화장실 줄을 섰는데, 출발 직전임에도 대기 줄이 길었다. 결국 엘리트 + 명예의 전당 그룹에서 함께 시작하지 못했다. 후미 그룹 대기 줄에서 헤집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옆 도로로 나와 출발 지점으로 질러 갔다. A 그룹과 엘리트 하프 종목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던 시간, 나 혼자 헐레벌떡 펜스를 열고 들어가서 출발선을 통과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세종대로 - 남대문 구간을 달리는데 아는 분들이 응원을 해주실 때마다 쑥스러웠다.
다행히 주로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병목 현상은 없었다. 명예의 전당 그룹 후미 주자 분들은 대부분 오래전 서브 3를 달성하신 연세 지긋한 분들이거나 더 이상 예전처럼 열심히 운동하지 않는 몸 상태의 느릿한 분들이라 띄엄띄엄 달려가거나 동료와 담소를 나누며 가볍게 달린다. GPS 시계에 나오는 페이스를 확인하며 나 혼자 달렸다.
'못 먹어도 가보자'는 마음으로 처음에는 3분 55초~4분 05초 페이스로 달려봤다. 이번 겨울에는 3분 대 페이스로 20000미터를 딱 한 번 달려봤기 때문에 지구력 스피드가 부족하다. 힘이 많이 들어갔다. 이 페이스로 달리면 25km 정도는 어떻게든 가겠지만 그 이상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km당 4분 10초 내외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알맞고 적당했다. '이 정도면 경기를 마칠 때까지 이어갈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였고 실제 체력과 페이스 저하 없이 무사히 마쳤다.
2시간 56분 47초.
우리나라 메이저 마라톤 대회 중 서울마라톤이야말로 개인 기록을 노리기 가장 좋은 코스이고, 날씨도 적당히 쌀쌀해서 최적이었기 때문에 한편으론 아쉬울 수도 있다. 다만 돌이켜보면 들인 품과 시간만큼 결실을 얻어 가는 유산소 지구력 종목에서 부족한 운동량임에도 좋은 기록을 목표하는 그 자체가 애초 무리였다. 이미 하지 못한 것은 빨리 잊고, 새롭게 배우고 깨달았던 점에 집중해서 다음 도전에 적용해야 한다.
작년 가을 JTBC 마라톤에 이어 이번 서울마라톤 대회를 거치며 경기를 앞두고 체중을 감량하는 요령을 얻고 익숙해졌다. 겨울 동안 빙부상, 여행 그리고 명절 연휴 때 체중이 많이 늘었지만 아침 - 점심 - 저녁 끼니에서 먹는 식사의 종류와 순서를 바꾸고 나에게 불필요한 음식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판단하였다. 운동 목적뿐만 아니라 건강 관리 면에서도 필요하여 몸에 좋은 음식, 안 좋은 음식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지면서 혈당도 올리고 체중도 증가시키는 음식에 대한 욕구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특히 대회 일주일 전 식단과 탄수화물 저장(카보 로딩) 기간에 체중을 줄이면서 (경기 직전) 에너지를 집중 저장하는 방법에 대해 유용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점은 큰 수확이다. 마지막 일주일 동안 4kg을 줄이면서도 에너지 고갈을 최소화했던 덕분에 경기 중 전후반 페이스 차이가 크지 않았다.
시중에 많은 카보 로딩 방법 정보가 난무하지만 그걸 올바르게 적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력이 월등하고 대회 준비 기간 내내 체중과 몸 관리가 잘 된 극소수 동호인들 외에는 대부분 경기 당일 후반 급격한 체력 저하를 경험하는데, 이런 체력 저하를 겪는다면 그 카보 로딩은 실패한 것이다. 30km 이후는 인간 체력 한계 이상의 영역으로 쉽지 않은 것은 맞지만 '제대로' 로딩이 되었다면 그렇게까지 크게 차이가 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실패 원인은 두 가지이다.
1. 대부분의 마라토너 참가자들은 과체중이다.
2. 카보 로딩을 핑계로 과식을 하며 위 '크기'를 늘린다.
대부분 마라톤 동호인은 과체중이다. 정확한 수치로 기준을 나누기는 힘들지만 '키 빼기 몸무게' 110 이하라면 재미가 아닌 기록을 위한 달리기를 하기에는 뚱뚱하다고 봐야 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런 뚱뚱한 마라토너라면 경기 직전 거의 최후의 한 끼를 먹기 전까지 차라리 체중 감량에 노력하는 편이 낫다. 에너지가 넘치는 것보다 가벼워질 때의 이점이 훨씬 크다. 경험 상 확실히 그렇다.
과식으로 위 크기를 늘려버리는 분들도 많다. 대회 일주일 전부터 탄수화물을 줄이며 감량에 어느 정도 성공하고 나서도 마지막 '로딩' 때 빵, 떡, 면을 잔뜩 먹으며 배가 '빵빵하게' 부르고 튀어나오도록 먹는 분들이 있는데, 십중팔구 경기에서 실패한다. 위 크기가 늘어진 상태에서 경기 당일 에너지 젤 같은 것들을 섭취하면 일시적인 소화 장애가 발생되거나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공복감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다.
해결 방안은 이렇다.
1. 대회 직전까지 체중 감량하는 편이 이득이다. 조금이라도 가벼운 몸을 42km 끌고 갈 때 이점이 더 크다.
2. 에너지 저장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위가 늘어나도록 배부른 느낌이 안 들도록 먹어야 한다.
나와 같은 뚱뚱한(?) 동호인은 '저장'보다 '감량'에 초점을 맞추고, 에너지 저장 시기에는 위 크기가 유지되도록 고열량 음식을 크기와 시간을 쪼개고 나누어 먹어야 한다. 짜장면이든 찹쌀떡이든 밥이든 작은 크기로 나누어서 띄엄띄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섬세한 작업이고 주의가 요구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위를 늘리지 않으며 열량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칼로리 절대 수치 기준으로 저장의 한계가 있다. 실제 풀코스 마라톤에서는 저장된 글리코겐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경기를 진행하며 에너지 젤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옐레 진스, 크리스티안 블루멘펠트 같은 IRONMAN이나 T100 3종 경기 챔피언들의 보급 자료를 보니 시간당 80~90g의 탄수화물을 추가 섭취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라톤 선수들의 경우에는 자세한 숫자까지는 나오지는 않지만 역시 '스페셜 푸드'를 통해 경기 중 많은 양의 에너지를 섭취한다. 전체 보급품의 양이 아니라 '탄수화물'만 80~90g이었다. 많은 양이다. 다시 봐도 맞는 수치였다. 에너지 젤로 치자면 제품 종류마다 다르지만 거의 1시간당 2~4개를 먹어야 하는 양이다.
훈련이 필요하다. 미끈거리고 진득한 식감의 젤을 그렇게 뱃속으로 밀어 넣으려면 우선 '식성'이 좋아야 한다. 입맛이 예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소화력도 원활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만약 같은 젤만 먹을 때 입에 물리는 것을 방지하려면 서로 다른 종류의 젤을 준비해야 하는데, 다른 젤들이 섞이며 소화 장애가 발생되지 않도록 예행연습을 해야 한다.
5월 아이언맨 대회를 준비할 겸 이번 서울마라톤에서는 우선 전날부터 대회 당일 아침까지 에너지 저장을 하고, 경기 중 에너지 젤은 시작 전 1개, 10km 이후부터 시간당 3개씩 먹었다. 이전 대회보다 훨씬 많은 양을 섭취했다. 이 정도는 먹어줘야 적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반 체력 저하가 덜하였다. 어찌 보면 한계에 가까운 빠른 목표 페이스가 아니라 부담 적은 페이스라서 (에너지 젤 다량 섭취 여부와 상관없이) 체력이 양호했던 것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전에 더 느린 페이스의 LSD 훈련을 했을 때와 비교해 봐도 체력 저하가 확연히 적었다. 에너지 보급 성공. 다가오는 아이언맨 대회와 앞으로 계속 참가할 대회들에 대한 팁(Tip)을 얻은 것 같아 자신감도 상승하였다.
예전에 어디선가 5~6km마다 젤을 섭취해야 한다는 것을 읽고, 대회 때 적용해 보며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돌아왔다. 수치 상으로는 이번 대회에서 시간당 탄수화물을 60g 정도 섭취했는데 다음 대회에서는 더 많이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사전에 LSD를 통해 보급 훈련과 적응 과정은 꼭 거쳐야 한다.
겨울 동안 '빠르게' 달리며 연습했던 경험이 전부하다 보니 이번 서울마라톤에서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다. 훈련 때도 3000미터, 5000미터를 3분 40초 페이스조차 달린 적이 없어 실제 경기에서도 둔해진 감각으로 달릴 수밖에. 현재 내 수준에 맞는 4분 10초 페이스로 끝까지 달렸다. 장거리 훈련이 없어 30km 이후 내 몸 상태가 어떨지 나 스스로도 두려웠지만 그동안의 경험 덕분에 예전 경기들의 감각을 기억하며 마지막까지 꾸준히 움직였다. 이번 겨울과 봄, 처음이자 마지막 40000미터였다.
'철인 정신'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10시간짜리 운동을 몇 번 하다 보면 3시간 동안 목표 페이스 달성하는 것은 어렵지만 어떻게든 멈추지 않고 느리더라도 꾸역꾸역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종합운동장 사거리에서 결승점이 있는 오른쪽으로 뛰어들어가는 길,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 틈에서 아내와 아이를 찾으며 두리번거렸다. 직선주로 시작 부분에 나란히 서서 '여보'와 '아빠'를 외치는 우리 가족을 발견했다. 최근 출근길 소설 읽기에서 봤던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 문구처럼, 시간을 견딘 것이 주는 위로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저 가족을 봤을 뿐이지만 3시간을 참고 견뎌온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환하게 웃는데 마음속에서 뭔가 울컥 올라왔다. 고마운 우리 가족, 사랑해.
봄여름 동안 체중 관리-정확하게는 체중 감량- 잘 해내고 다음 대회에서 가족이 또 응원 오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더 빠른 시간, 더 한적한 주로에서 아내랑 아이와 인사 나눌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