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님의 <밥 먹다가, 울컥>을 읽고
매일 읽는 일간지 중 한겨레는 매주 토요일 <책> 소개 섹션이 좋고, 매일경제는 역시 매주 토요일 <여행> 섹션이 아주 좋다. 어쩌면 다른 그 어떤 기사들보다 내가 가장 즐겨보는 코너이다. 한겨레 <책> 코너에서 박찬일 셰프의 <밥 먹다가, 울컥> 소개 글을 읽고 바로 주문했다. 업무 틈틈이 10분 20분 짧은 시간 쪼개어 읽었음에도 3일 만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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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가난, 죽음, 이별,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련함, 약간의 서글픔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분명 좋은 책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프다. 글을 읽으며 내 어릴 적 풍경들도 많이 생각나고 그리웠다. 일요일마다 국제호텔 사우나에서 아빠와 목욕을 마치고 갔던 대구백화점 앞 공주당 팥빙수와 태산만두, 갈비를 먹으러 자주 갔던 앞산가든 등 아빠 엄마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먹었던 음식들. 친구 아버님이 주인이라 시험 때마다 마치고 다 같이 놀러 가서 조식 뷔페(?)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던 앞산 ‘마이하우스’ 같은 이제는 다시 갈 수 없는 사라진 장소의 추억. 그러고 보니 책에서 가난한 아이들이 많이 등장했던 것처럼 나 어릴 때만 해도 잘 사는 애들과 못 사는 애들이 크게 구분되지 않았다. 그때는 모두 다 고만고만했던 것 같다. 풍요와 물질이 넘치는 지금이지만 등교 시간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서. 문득 생각이 났는데 태산만두는 위치를 옮겨 아직 영업을 하고 있다. 다음에 고향에 내려갈 때에는 오랜만에 태산만두에 꼭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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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유독 함께 추억을 나눈 친구나 식당 아주머님이 죽거나 병들었다는 대목을 읽을 때마다 무섭고 슬펐다. 책장을 넘기기 무섭기도 하였다. 혹시 이분도 죽은 것인가 걱정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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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지나 나의 친구들 그리고 나의 가족들은 나와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어떤 순간과 어떤 음식을 기억하게 될까. 내가 아빠 엄마와 함께 먹었던 음식들을 기억하는 것처럼 나의 아이는 나와 무엇을 먹었던 순간을 추억할까 궁금하다. 꿈나무도서관 앞의 ‘효돈’, 한남동의 ‘댓잎갈비‘. 아니면 ‘빕스’? ‘배스킨라빈스’? 아이와 맛있는 것 먹으러 다녀야겠다. 오랜만에 주변 사람들과 밥 한 끼 하자고 말 건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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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억이 난다. 한 번은 교무실로 날 부르셨다. 그래갖고 대학 가겠느냐. 등록금이 밀렸는데 낼 형편이 안 되느냐, 그리 물으셨다. 세상에 나는 그런 근심 어린 표정을 인생에서 다시 본 적이 없다. 상담인지 뭔지 모를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던 내게 선생님이 뭘 쑥 내밀었다. 하얀 기름종이에 싸인 햄버거였다.
1980년대 초반, 햄버거는 비싸고 귀했다. 이른바 브랜드 햄버거가 그랬다. 그 틈에 싸구려 햄버버가 시중에 많았다. 씹으면 간혹 패티가 버석거려서 닭대가리를 갈아 넣는다는 소문이 있었던.
교무실에서 교실까지 걸으며 햄버거를 씹었다. 입가에 갈색 소스를 묻히며 먹었다. 치아에 무언가 씹혔다. 목에도 무언가 걸리는 것 같았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친구들이 심각한 표정의 내게 말도 걸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안경을 벗은 것처럼, 앞이 뿌옇게 보였다. 그때는 아주 진지하게 선생님 속을 그만 썩이자고 다짐했던 것 같다.
원래 쓸데없이 눈물이 많았고 지금도 많은 나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눈물이 자주 났다. 아내와 아이와 그리고 아빠 엄마 동생이랑 함께 밥을 먹고 싶다. 거하고 화려한 그런 것 말고 어디 좀 소박하고 정이 느껴지는 동네 식당 같은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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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새벽 달리기를 하며 이런 감상에 젖어보는 것도 좋다. 항상 신나게만 달리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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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새벽을 달려야지
일단 오늘 아내랑 아이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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