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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생활체육대축전, 울산 태화강을 달린다 - 02

철인 3종 서울 40대 대표, 철인아빠 이야기 02

by 아이언파파

'해도 해도 이건 너무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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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쉬 라인을 향해 달려가는 런 코스 마지막 랩(lap). 2km 남은 거리, 경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미 낮 12시 30분을 훌쩍 넘겼다. 이례적인 4월 폭염, 한여름 같은 봄 날씨라며 뉴스마다 기사가 쏟아지는 주말이다. 3종 표준거리(수영 1.5km 사이클 40km 런 10km) 종목 시즌 첫 대회에서 이런 무더위를 맛보다니, 오늘 고생 좀 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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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전국생활체육대축전. 철인 3종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목에서 생활 체육 동호인들이 모여 경쟁하고 화합하는 대회이고 올해 개최지는 울산이다. 3종 경기가 열리는 태화강 태화교 일대에서 육상(단축마라톤) 종목이 먼저 진행되어 3종 경기는 오전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시작하였다. 이렇게 늦은 시간 3종 경기를 하는 건 처음이다. 기상 시각과 경기 시작 사이 시간차가 꽤 컸기 때문에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아침 식사를 황태 해장국으로 든든하게 하였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대회 당일 직전 이렇게 식사하는 건 입문 때 이후 처음인데, 함께 서울 대표단으로 출전하는 분들도 대부분 아침 식사를 한다. 나만 유별난 듯 식사를 안 하겠다 하기에는 눈치 보여 밥 한 공기와 황태 해장국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남들 눈치 보는 동아시아적 DNA는 어쩔 수 없군. 걱정되는 이 순간에도 쌀밥과 황태 해장국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 역시 내 몸 안 가득한 동아시아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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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준비물을 챙겨 단체 버스를 이용해 대회장으로 이동했는데 아직 8시 30분이다. 바꿈터 오픈은 9시. 각 시도 대표 선수들이라 실력 좋고 경험 많기 때문에 바꿈터 경기 준비 과정이 느긋하면서도 빈틈없이 일사불란하다. 9시 30분부터 수영 웜업을 20분 간 진행하고, 각 대표단을 소개하며 인사하는 등 개회식 절차가 진행되었다. 40대 남자 선수는 인원도 가장 많고 실력도 좋은 편이라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나는 오늘 어느 정도 할 수 있을까. 경기를 마친 시점에서 후기를 글로 쓰다 보니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것처럼 적었는데, 당시에는 별 감정적인 동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했던 경기 중 시작 전 긴장도가 가장 낮았던 것 같다. 불과 며칠 전 보스턴 마라톤과 뉴욕 여정을 마치고 귀국한 시점이라 아직 마음속 여행 여운만 가득하고 운동 의욕은 다소 떨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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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your mark! 각자 제 위치로! 주심의 구령에 맞춰 다이빙 입수 준비를 한 후 "뿌우" 출발 신호와 함께 수영을 시작하였다. 1분 먼저 출발한 주황색 수모를 착용한 30대 남자 선수들을 향해 돌진. 연령별 출발하는 방식은 오랜만인데, 눈앞에 먹잇감(?)이 있으니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이 급상승하는 느낌으로 좋은 점도 있었지만 1분 뒤 출발한 50대 남자부 수영 상위권 선수들의 먹잇감이 되어 추월당하니 정신없이 팔 돌리며 헤엄치는 중에 슬픈 마음 가득 안 좋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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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종목인 수영은 태화강에 띄워놓은 2개의 반환 부표를 돌고 돌아 750m 두 바퀴 코스이다. 첫 바퀴를 마치고 잠시 물 밖으로 나와 두 번째 바퀴를 시작하기 전 시계를 봤는데 14분을 넘기고 있었다. 너무 지체되었는데? 앞서고 있는 노란색 수모 40대 남자 선수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음에도 이 정도 시간이라니. 태화강 유속과 그로 인해 레인도 휘어져 있어 다들 수영부터 고생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두 바퀴 모두 마치고 나오니 29분을 넘기고 있었다. 초보 시절 이후 가장 느린 표준거리 수영 기록 중 하나이다. 분위기로 봐서는 대부분 수영 기록이 저조한 것 같다. 태화강 수질은 오픈워터 수영을 진행해도 되는 등급으로 검사를 받았다고 하지만, 물 색깔과 경기 중 한두 모금 입으로 들어왔던 물 맛으로 판단해 봤을 때 솔직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집으로 복귀하면 이번 주 내 꼭 약국에서 아주 강한 구충제를 사 먹어야겠다 다짐하며 바꿈터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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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꿈터로 향하는 길, 서울 대표단 감독님, 전무님, 회장님께서 "여유 있어! 천천히!" 외쳐주시는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바삐 움직이느라 반응과 화답을 할 수 없었다. 서둘러 수모 수경 웻슈트를 벗어 보관바구니에 담고 헬멧을 착용하여 자전거와 함께 바꿈터 출구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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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 코스는 태화교에서 학성고 교차로까지 3.3km 구간(왕복 6.6km)을 6회 반복한다. 바꿈터 출입구까지의 거리를 합하여 거의 정확하게 40km 거리를 달린다. 6 랩이기 때문에 페달링과 파워에만 집중하다 보면 랩 카운트를 깜빡하여 한 바퀴를 더 돌거나 덜 돌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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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아이언맨 구례 대회 이후 처음으로 실외 라이딩이었다. 사고를 우려하고 겁이 많은 나 자신의 성격과 아이가 일어나기 전 새벽에 운동을 모두 끝내는 시간 제약 때문에 집 안 실내에서 로라 트레이닝을 선호하는데, 이번 봄에는 서울마라톤 이후 보스턴 뉴욕 일정이 겹치고 매년 5월 첫 대회를 참가했던 예전과 달리 4월 말 진행하는 생촬체육대축전 일정으로 첫 실외 라이딩을 대회 당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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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바퀴. 천근만근 다리가 무거운 느낌으로 힘겹게 페달을 돌려봤지만 목표했던 평균 200W 파워에 한참 못 미치는 180W 정도의 파워 수치가 나온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파워가 낮으니 속도 또한 35km/h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큰일이다. 이거 나 오늘 제대로 경기할 수 있을까. 다행히 2 lap, 3 lap 진행되며 조금씩 굳어있던 허벅지 근육이 풀리고 골반 고관절이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3바퀴를 지나 중반 시점 이후부터는 조금씩 가속하여 처음 계획했던 대로 라이딩을 진행할 수 있었다. 최종 평균 파워는 195W. 목표 200W보다는 조금 부족했다. 같은 40대 에이지 그룹에서 2등 3등 5등을 했던 선수들이 사이클 코스에서 나를 추월했었다. 1등과 4등은 원래 수영 때부터 나보다 빨랐던 분들이다. 내 최종 에이지 그룹 순위가 6위였으니 사이클 종목이 아쉬울 법도 하였다. 사이클 종목은 1시간 5분대. 수영을 마치고 바로 안장 위에 올라 페달을 돌리는 그 힘든 느낌이 어떤지 오랜만에 다시 느끼고 다음에는 어떻게 운동해야 할지 조금씩 감이 잡힌다. 앞으로 남은 봄과 여름 기간 동안 차츰차츰 준비하고 훈련하여 다른 대회 준비에 더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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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종목 런 코스는 왕복 2.5km 4 랩이다. 첫 번째 랩, 첫 번째 반환 구간에서 나보다 앞서 달리는 분들을 확인했다. 같은 40대 에이지 그룹인 300번대 배번 착용한 선수들은 6명 정도였다. 런은 그나마 자신 있는 종목이다. 운 좋으면 1~2명 정도는 추월할 수 있지는 않을까. 첫 번째~세 번째 선수들은 이미 1km 정도 앞선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추월하기 어렵다. 팀을 위한 입상 포인트는 불가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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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출발 후 1km 동안 사이클 케이던스와 보폭에 맞춰 보폭 거리는 짧게, 보속 케이던스는 높은 수준으로 근전환을 진행하였는데, 이전 대회와 달리 근전환 거리 이후에도 원했던 페이스로 올리기 힘들었다. 힘들고 더워도 표준거리 런 종목(10km)에서 1km 당 4분 이내 페이스는 어렵지 않았는데 오늘은 아무리 피치를 올리고 파워를 내도 4분 5초 정도 페이스가 한계였다. 마지막 1km 남긴 구간에서야 3분 50초 정도의 페이스로 올렸다. 41분대 기록으로 종료. 런 구간에서 같은 에이지 선수 한 분을 마지막 질주에서 추월하였다. 대회 전체 10위이지만 경쟁이 치열한 40대 남자 그룹이라 에이지 6위로 마무리하였다. 최종 기록은 2시간 20분 23초. 표준거리 종목에서 오랜만에 2시간 10분대를 초과하는 저조한 기록이었다. 오늘은 전체 1위 우승 선수 분이 2시간 13분대를 기록하는 등 대부분 이전 대회와 비교했을 때 10분 정도는 늦어진 것 같다. 태화강의 유속과 더운 날씨 때문이었으리라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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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내 입상에 실패하여 우리 서울 선수단에 랭킹 포인트를 기여하지 못해 아쉬웠다. 서울 남자 선수단 중 40대 그룹만 나 포함 두 명 모두 입상을 하지 못했다. 다른 에이지 그룹 남자 선수들과 여자 선수들의 선전으로 서울은 전체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작년에는 서울이 4위를 하여 종합 순위 입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 올해에는 2위로 마쳐 임원진, 운영위원 분들도 다소 아쉽지만 만족하시는 분위기였다. 경기도는 3년 연속 종합 우승이었다. 내년에는 서울이 종합 우승을 차지할 수 있길 기대한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선수로 참가하여 팀 종합 우승에 기여하고 개인 랭킹 포인트 획득으로 오늘의 아쉬움을 만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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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결과는 아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였는데, 1박 2일 일정 동안 정말 좋은 경험을 하였다. 숙소에서 같은 방을 사용했던 선배님은 개인 종합 2위, 50대 1위를 하신 분이었는데 경기 내외 여러 가지 팁들을 알려주셔서 무척 도움 되었다. 함께 40대 그룹으로 참가하신 선배님 역시 바꿈터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사소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올해 가을 전 세계 모든 철인들 꿈의 무대인 하와이 코나 대회를 준비하신다고 한다. 좋은 결과 얻으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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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력 운영위원으로 함께 하신 한국체대 수영 감독님과 우리나라 철인 동호인들 중 레전드 급이라 불리는 분들과 함께 대회 후 식사 자리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하이텔 나우누리 PC 통신 시절부터 3종 경기를 하셨던 스토리, 훈련 방법과 마음가짐 등 누구보다 운동에 진심인 분들과의 대화 속에서 배울 것들이 많아 이대로 버스 타고 돌아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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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도 대표 선수들만 참가하는 대회이고, 철인 3종 종목이 소수의 마니아들을 위한 스포츠이다. 열광적인 응원과 함성으로 가득한 보스턴 마라톤을 마친 직후라서 조촐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정은 다른 그 어떤 대회보다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었고 또한 영광이었다. 전국생활체육대축전, 울산 태화강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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