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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로소 Jul 23. 2023

The Real ME : D-100

100일 간의 '진짜 나' 끄집어내기 프로젝트


마치 예고된 수순처럼, 나는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2주는 먹어야 효과가 나온다는 이 약을 이제 5일 차 복용했다.

지금은 아무 감각도 없다. 나아지거나 그렇지 않거나 확률은 50대 50이다.


근 한 주간 나는 몇 번 째인지 모를 퇴사 결심을 했다. 이직 경력만 (화려하게도) 열댓 번이나 되는 나는 이제 큰 감흥도 없다. 내가 조직 생활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어느 수레의 쳇바퀴도 도무지 1년 이상 즐겨지지 않았다. 어떤 설렘과 간절한 니즈로 시작했든 3개월 이면 웬만한 업무가 다 파악되었고 6개월이면 회사의 구조적 문제점이 뚜렷하게 보였으며, 8개월이면 회사 내 사람이든, 일이든 견딜 수 없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꼈다. 그 패턴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다만 이번 회사의 다른 점은,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2016년부터 7년 간 꿈꿔온 업계에 드디어 발을 들였다는 점이었다. 참 멀리 돌아왔지만 겨우 도착한 이 업계. 그러나 저주와도 같은 패턴을 무너뜨리기에는 나의 간절함이 부족했나보다. 이 회사에 들어올 때 나는 다짐했다.

 

'이번에도 아니라면, 더 이상 회사라는 곳은 안 간다.'


마침 그렇게 되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그리고 역시나, 퇴사 후 대책은 아무 것도 없다. 평생 살면서 대책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원래 성격이 즉흥적이고 단순하고 쓸데없는 걱정만 많아서는, 그럭저럭 흘러오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내 특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내 나이 서른을 넘어 중반을 달려가는 지금, 나이는 모래시계가 되어 나를 압박한다. 사회 상황과 개인적 상황은 그런 압박감을 부추긴다. 

"서른 셋 이로소. 이대로 대책 없이 살 수는 없다." 정말로.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약 32년을 외면하고 살았다. 내 주제를 알았기 때문이다. 주제를 알라는 말. 참으로 잔인하다. 내 주제를 파악하느라 다른 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은 어쩜 이렇게 훌륭한 감옥일까. 나를 가두기에 말이다. 가장 단단한 편견은 나에 대한 편견이다. 나는 편견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보고자 이 글을 쓴다. 


나에게 딱 100일을 주기로 했다. 

퇴사 통보를 하기로 결심한 날짜는 10월 31일이다. 디데이를 쳐보니 딱 D-100이다. 

이런 글을 시작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날짜다. 



100일간 매일매일 한 줄이라도 나에 대해서 고민하고 내가 진짜 되고 싶은 나에 대해 그려보는 시간을 가질 거다. 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이유나 근원도 찾아볼 거다. 그리고 철저하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준비할 거다. 즉흥과 되는대로의 아이콘인 내가. 그렇게 해보겠다. 단 한 줄이라도 매일매일 나를 그려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대한민국의 회사라는 존재가 나를 이런 구렁텅이에 넣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듯 살아갔다. 내 발로 걸은 적이 없는 죄로 나는 이 우울에, 내 내면에 갇혔다. 내가 싸우고 있는 우울은 내가 나를 외면함으로써 얻은 전리품이다. 이건 어쩌면 좋은 이정표다. 이럴 줄 알았다. 내가 우울증 약을 먹을 줄. 반대로 나는 내가 이런 마음을 먹을 줄은 몰랐다.

나를 깨고, 낡은 나를 벗어버리고 나아가겠다는 용기를. 그런 다이아 같은 마음을 내가 가질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니까 이런 귀한 마음을 꼭 쥐고, 나는 발행을 누른다.



- 2023.07.23 / D-100 -


나는 내가 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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