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진작가 지망생
나는 나를 너무 쉽게 미워한다.
그것은 오래도록 자리 잡은 습관이라 왜,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럴 줄 알았다. 내가 그럼 그렇지.’ 언제라도 제자리에 서서 자조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얼마나 한심한 사람인지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어느 순간 나는 ‘이것’을 멈출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냥 그렇게 평생을 나 자신을 미워하며 살아갈 것만 같았다.
어릴 때 나는 왜 찍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엉뚱한 사진을 많이 찍곤 했다. 그때는 혼자 있는 시간을 참 좋아했다. 버스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등하굣길에, 밤산책길에 종종 무언가를 발견하고, 관찰하고, 그 끝엔 꼭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런 사진들에 짧은 글을 붙여 블로그에,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곤 했다. 그 글들이 밝고 사랑스럽기만 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나와서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조금쯤 우울하고, 또 남들만큼 밝은 아이로 자랐다. 그만큼 조금쯤 행복하고 남들만큼 슬픈 아이로 자랐다는 의미기도 하다. 나는 불안이 유독 많은 아이였다. 불안은 불안을 먹고 커졌고, 밤 이슬과 눈물을 먹고 불어났다. 늘 불안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었다. 불안에 먹히지 않으려.
어두운 감정에도 겹겹의 층위가 있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슬픈지, 우울한지, 불안한지 조목조목 따져 말하길 좋아했다. 그러고 나면 내가 이해가 되었고, 나쁜 감정 주머니가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어딘가에 올렸던 건, 이런 나의 고군분투를 누군가 지켜봐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싸이월드의 시대가 가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거치며, 내게 SNS는 더 이상 ‘누군가 슬쩍 봐주길 바라는 나만의 일기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좋아요라는 이름의 점수표 같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글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내 페이스북 피드에 나와 같은 글을 올리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은 더더욱 그랬다. 나는 실컷 글을 써놓고 끝에 ‘#청승 #나_왜이래 #내일부터_다시_씩씩하게’ 같은 태그를 달기 시작했다. 내 감정을 자꾸 부정하고 스스로 비웃었다. 심각한 감정을 가볍게 풀어넘기려 했다. 다들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까. 거기서 너무 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인정받기 위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인정, 좋아요를 누르고 싶어지는 사진이라는 인정. 나의 삶이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는 구도를 위해 지금 당장 음식이 식는 것쯤은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조금쯤은 괜찮겠지’라며 깎아내던 나다움은, 이젠 완전히 닳아 없어진 듯했다.
사진 수업에서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당연스럽게 발화된 주제였다. 서른이 넘고 커리어도, 업무 능력도, 내 삶도 더 이상 나아가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나는 왜 살고 있을까,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걸까?’
늘 나를 살게 하는 것이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물질을 얻고, 더 많은 인정을 받고, 그런 것들로 나의 모든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욕심. 나를 끝없이 채찍질했고 ‘완벽하게 하거나, 완전히 포기하거나’ 양자택일 하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사진 같은 것은, 내가 완벽하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 집안 형편으로 인해 사진과에 지원조차 하지 못하고, 나는 쭉 스스로를 ’사진 할 자격이 없는 애‘로 낙인찍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취미라는 말로 포장한 ‘애매한 포기’를 택했다. 그래서 사진은 나를 더 괴롭게 했는지 모른다. 완전한 포기가 안 되었기에.
용기 내어 다시 사진을 시작했을 때는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더 듣고 싶었다. 그런 걸 묻는다고 대답해 줄 수 없는 걸 아는데도. 내가 쉽게 미워해버린 내 자신과, 쉽게 깎아 내버린 나다움을 어떻게 되찾으면 좋겠냐고 매달려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나는 그냥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을 찍겠노라고 말했다. 그것을 찾아야만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결국 나는 살고 싶어서 사진수업을 신청한 건지도 모르겠다.
첫 수업을 듣던 날. 놀랍고 허무하게도 나는 모든 답을 얻었다.
찍고 싶은 것을 찍어라,
그리고 당신의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모든 피사체와 그 피사체가 던지는 의미에 대한 책임을 져라
그건 매우 명확하고 또렷했다. 사실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던 진실이기도 했다.
“내 시선이 그 대상에게 향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나를 들여다보세요. 그 이유를 들으세요.”
글도, 미술도, 음악도, 영상도. 창작은 모두 똑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되, 내가 생산하는 모든 창작물에 책임을 지면 된다. 그 창작물이 뿜어내는 영향력과 우연, 불운까지도 책임을 진다면 당장이라도 내가 예술가라고 밝히지 못 할 이유가 없다.
나는 내 모든 꿈들을 ‘허락’하기로 했다. 나는 ’사진작가‘가 될 수 있다. [색에 대한 감각이 정말 부족한] 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외모 컴플렉스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기 두려운] 나는 ’가수‘가 될 수 있다. [바리스타 자격증도, 경영 능력도 없는 나는] 카페 사장님이 될 수 있다. [여행 갈 시간도 실행력도 없는] 나는 세계여행가가 될 수 있다. 이미 나는 그렇게 되고 있다. 한발짝한발짝씩. 완벽한 수행도, 완전한 포기도 믿지 않기로 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슬프고, 우울하고 몹시도 불안한 사람이더라도 나를 응원하고 곁에서 지켜봐주기로 했다. 영원과 같이 성장할 나를.
사진은 참 묘하다. 렌즈 너머로 피사체를 바라보면 내가 보인다. 내가 찍은 것들이란 정말 별볼일 없는 것들 뿐이었다. 집 앞에서 버스정류장까지 나가는 길에 꺼내먹는 요즘 가장 애정하는 아이스크림. 낙엽을 방석처럼 깔고 앉은 고양이 한 마리, 한칸만 돌이 기울어진 징검다리, 지하철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찍은 흐드러진 벚꽃, 한 여름에 빠졌던 토마토 바질 에이드, 송어회 비빔밥을 막 비비기 전 모습, 개울가의 막 영업을 끝내고 가지런히 접힌 노란 파라솔, 햇빛을 잔뜩 받은 하얀 철쭉과 해질녘의 아이보리빛 수국, 푸른 하늘에 점처럼 박힌 나비연, 색이 다른 자판기 사이에 엎어져있던 종이컵, 보도블럭에 붙은 지우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대출 광고 스티커…
내가 아끼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 내가 좋아하는 생명체가,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이 매일매일 나를 살게 한다. 내가 나를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