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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로소 Oct 28. 2024

Love myself, 빈 양동이를 채우시오


내가 H를 처음 만난 건 스물아홉의 여름이었다. H의 소개글은 이렇게 시작했다.

‘작은 키에 작은 차를 몰고 어디든 가요.’

상상만 해도 만화를 보듯 캐릭터가 그려졌다. 작은 키에 별로 매력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나도 모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얼마나 작길래 그래요?’

‘저요? 아니면 차요?’ 그 저요? 라는 질문이 어떤지 귀엽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둘 다겠죠?’

우리는 ‘레이지보이(The Lazy Boy)’라는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그는 어디든 간다던 말처럼 서울 동쪽 끝에 살면서도 서울을 가로질러 일산까지 나를 만나러 왔다. 까만색 스파크를 몰고 말이다. 시끌시끌한 레이지보이에서 파스타와 리조또를 먹으며 조심스레 서로를 살폈다. 실제로 만난 H는 생각보다 더 귀여운 외모에 보이시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체크 남방에 까만 스키니진. 지금도 H가 매우 즐겨 입는 스타일이다. 말투도 그 나이 때 여느 여자들 보다는 남학생 톤에 가까웠다. 툭툭 내뱉는 낮은 목소리, 그와 대조 되게 이상하리만치 수줍어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나는 ‘바이로맨틱 호모섹슈얼’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는 나를 레즈비언이라고 부른다. 스물 여섯, 나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지향성을 깨달았다.

레즈비언이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만추에 성공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하겠다. 나는 연애 대상을 찾기 위해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했다. 그 과정이 퍽이나 불편했고 힘겨웠다. 때로는 이 과정이 나를 ’하찮은 존재‘로 느끼게 하기도 했다. 단 몇 글자로 나와 내가 원하는 파트너상을 정리해서 글을 올리면 관심있는 사람들이 메세지를 보내온다. 그 ‘몇 자’ 안에는 외모(머리 길이, 체형, 외모 수준 등), 대략적인 직업이나 경제 상황, 정신 건강 상태, 성적 취향, 취미나 MBTI 같은 것들이 적혀있다. 그 알량한 몇 글자로 마치 값을 매기듯 상대의 가치를 판단하고 망상하며, 나의 시간을 투자할만한지 결정해야했다. 여기서 사랑이 피어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온전히 이해 받고 싶었고, 나도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걸고 싶었다. 어김 없이 어플을 켰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드나들었다. 몇 번의 만남으로 상처를 받고 나면 조용히 어플 삭제를 눌렀다가, 마음이 죽을 것처럼 외로운 날들이면 다시 설치를 누르는 그런 어플이었다.

그래, 마음이 죽을 것 같던 날 말이다. 나는 어플을 켜서 수많은 텍스트 속 나와 맞을 것 같은 사람을 찾아다녔다. 외모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나만큼 예쁜 사람 없냐고 부르짖지 않는 사람, 정신 건강 상태나 경제 상황을 따지지 않는 사람. 그러고 나면 몇 남지 않는 듯했다. 어렵게 골라 만나도, 관계가 진전되기란 쉽지 않았다. 소박한 취향을 써놓았던 소개글과 다르게 막상 내 모습을 보면 눈에 보이게 실망하는 사람들 여럿. 겨우 관계가 발전해도 어느날 갑자기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연락 끊기길 여럿. 더러 짧은 연애를 하기도 했지만 애들 장난보다 더 우수운 만남이었다. 그렇게 보낸 3년의 시간 끝에 내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무서운 건 상처 받으면 받을 수록, 더 어플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3년 동안의 나는 성인이 된 후 정서적으로 가장 취약한 시기였다.

바로 그때, H의 글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나는 H와 만나면서도 ‘절대 실망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살망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책으로, 내 이상과는 반대로 작고 귀여운 사람을 만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H는 무척 긴장한 것 같았다. 일단 목소리부터 기어들어갔다. 실내 소음에 H의 목소리가 먹혔고, 나는 자꾸만 되물어야 했다.

“네? 뭐라구요?”

H는 나와 시선을 잘 못 마추고 뚝딱거렸다. 나까지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H는 어플을 깔고 만나는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게다가 그의 나이 스물다섯. 그럴만 했다. 나를 보고 실망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어른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어딘가 수줍은 식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밤 10시였다. 나는 그를 배웅할 마음으로 주차장으로 나왔다.

“먼 길 가셔야겠네요. 운전 조심해요.”

“파주로 가시는 거 아니에요? 멀지도 않은데 데려다 드릴게요.”

파주에 들러서 가려면 집에 가는 시간이 40분은 더 늘어날텐데… 그래도 되나 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 순간에는 나도 거절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차를 얻어탔다.

“고맙긴 한데, 미안해서 어떡하죠? 일 끝나고 와서 피곤할텐데.”

“미안하면 음악 틀어주세요.”

나는 그의 차에 블루투스를 연결해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Lucia의 <달과 6펜스>였다. 집에 다 와갈 무렵, H는 카페에서 조금 더 얘기를 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우리는 심야카페에서 두어 시간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설마했던 마음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H가 나를 꽤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 몇 번 만나지 못했지만 H가 30분 간 나를 보기 위해 왕복 2시간이 걸려 파주까지 왔을 때 확신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방어 태세로 H가 먼저 우리 관계를 규정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근한 몇 번의 만남은 언제든 배신당할 수 있다는 걸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4번 째 만남이 있던 날, H가 내게 손을 잡고 싶다고 했다. 물론 싫지 않았지만, 나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린 아직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 그러자 H가 내 손을 잡아챘다.

“그럼 사귀던가.”

그 유치한 태도가 너무 귀여워 나는 웃음 터져버렸다. 역시나, 이상적인 고백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2019년 8월 3일. 무더운 여름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그렇게 H와 함께한 지 4년이 지났다. 우리의 4년은 다사다난했지만, 첫 느낌의 설렘이 아직도 잔잔히 남아있다. 더해진 건 신뢰다. H가 내 곁을 쉽게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게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감각이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 했었다.

H를 만나기 전 내 사랑은 짧았다. 그 짧은 기간마저도 온통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는데 쓰였다. 확인하는 방법은 한 가지였다. 끊임 없이 테스트 하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확신이 흔들리면, 오히려 미움받을 짓을 해댔다. ‘어때? 이래도 날 사랑해? 사랑하지? 사랑한다고 말해 봐.‘ 날 사랑한다면 내게 희생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것이라 믿었다. 때론 내가 원하는지 모르는 것 마저도 상대가 알고 있길 바랬다.

나의 테스트는 교류하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어려워졌다. 이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 수록 나는 그를 빨리 떠나보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굴었다. 더 소중해지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을만큼 소중해진 채로 떠나버리면 나는 무너질 게 분명했다. 나의 테스트를 통과히자 못한 이들이 그렇게 떠나갔다. 연인도, 썸도, 친구도 그랬다. 누군가 내 곁에 오래 남아있는 게 어색한 사람. 그게 나였다.

그런데 H는 참 요상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도망가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도 언젠가 나에게 질려버릴 거야.’ 체념한 채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살다보니 4년이 흘렀다. 이상하게도 H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최종적으로. H는 내 곁에 남아있다.

어느날 독서 모임에서 ‘나를 사랑하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 좋죠. 그런데 사랑에도 총량이 있지 않나요? 누군가 나에게 사랑을 줘서 총량을 채워주어야 그 사랑으로 나도 사랑하고 남도 사랑하는 거죠. 자급자족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게 사랑인 것 같아요.”

‘Love myself’는 청년들에게 시대 정신 같은 단어이다. 고도화된 경쟁을 겨우 견디어 사회에 나와도 ‘탈출’이 아닌 ‘예정된 몰락’을 겪게 된다. 능력주의는 개개인의 부족함을 붙들고 ’내 탓이로소이다‘하는 나이브한 방식으로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감춘다. 청년들은 나를 미워하고 탓하고 혐오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나 자신을 사랑하라. 아름다운 그 메세지가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울렸다. 그러나 시대 정신도 유행어 만큼이나 빠르게 바뀌는 미묘한 시대에, Love myself는 ’꿈을 가져라‘ 만큼 낡은 단어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 내 내면에 집중하라는 말이 자꾸만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나에겐 텅빈 양동이 뿐이었다. 양동이를 박박 긁어 나를 사랑하고자 애썼다. ‘챙강챙강’ 빈 양동이에 숟가락이 부딛히는 소리만 요란했다. 자꾸 긁어댄 나의 양동이는 한 구석이 미어져 찢어져 버렸다.

사랑의 총량을 말하던 이의 목소리에서, 나는 H가 떠올랐다. H가 나에게 준 사랑과 헌신은 텅 비어있던 내 양동이를 꽉 채워주었다. 심지어 야금야금 새어나가는데도. 자꾸만 흙탕물이 섞여드는데도. 그는 나를 채우고 또 채워주었다. 차오른 양동이에 어린 날의 내가 비춰 보였다. 나는 진정 나를 본 적이 없다. 내 결핍만 바라봤다. 결핍은 나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했다. 욕구대로 움직이라고. 결핍은 가려움이라서 당장 긁어주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양동이 안에 일곱 살의, 열네 살의, 스물 한 살의 내가 보였다. 생각보다 좋아할 구석이 많은 내가. 늘 흉측하고 엉터리로 생긴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제대로 보질 않으니 엉터리처럼 생긴 나를 상상했던 것이다. 마냥 불쌍하게만 보일 줄 알았던 내 마음은 생각보다 선명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또, 그 모양이 형성된 나름의 논리도 있다. 그 논리가 나에겐 중요했다. 내가 천성부터 나쁜 악인이라서가 아니라, ‘다 그럴만한 이유’들이 겹쳐 내가 형성되었다는 것. 그러면 그 이유들을 잘 풀어서, 다른 이유들을 주어서 다른 내가 되어볼 수 있을 거였다.

양동이에 찰랑찰랑한 물은 여전히 나보다는 타인에게 쓰는데 소비하고 있다. 연애가 카오스를 구해줄 코스모스는 아니라는 뜻일 거다. 하지만 실타래를 풀다가 지칠 때면 나는 H의 품에 안긴다. 별 거 아니라는 듯, H는 나의 어깨를 끌어 안고 입을 맞춘다. 물이 찰랑찰랑 차오른다. 그걸 마시고 다시 나를 풀어본다.

그리하여 가득찬 양동이를 가진 당신을 나는 진심을 다해 축복한다. 그러나 빈 양동이를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따로있다. 오래된 전설 같은 ‘사랑’을 진실되게 원해보기를. 포기하지 않고, 어색한 짝사랑과 허우적대는 감정의 삽질, 유치한 연애와 함께 뚝딱뚝딱 엉성한 벽돌집도 지어보기를. 죽을만큼 외로운 밤을 부끄럽다거나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하지 말기를. 한 번쯤은 본능의 시기를 보내다가, 사랑이 본능에 있는지 정신에 있는 궁리해보기를. 도떼기 시장 같은 ‘동성 연애 어플’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는 것을. 나와 H의 연애가 완벽한 서사는 아닐지 모르지만 이런 소박한 로맨스도 누군가 구원할 수 있음을, 기억해주기를.

‘Love myself’를 나는 ‘빈 양동이를 채워주시오’라고 번역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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