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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leena Sep 10. 2017

오랜만의 신파 멜로

사적인 영화일기, 파도가 지나간 자리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



사적인 영화일기, <파도가 지나간 자리>


여기 사랑이 가진 막강한 힘 앞에 자신들을 내던진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다. '톰'과 '이자벨'은 바다를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는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사랑의 감정에 모든 걸 내맡겼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근본적으로 
어디에 가져다 붙여도, 어떤 상황에서도 이상하리만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사랑이 가진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듬뿍 들어간 신파적 요소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먹먹함과 절절함을 가지기도 했으니 오랜만에 보는 신파 멜로 드라마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몇몇 요소만 제외한다면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날 것에 가까운 그 펄떡이는 사랑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꾸밈없는 영화에 가깝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제삼자에게도 충분히 절절했다. 





등대 같은 삶을 사는 사람


전쟁 이후 톰은 자신을 철저한 고립 속에 가두는 삶을 택한다. 전쟁영웅이라는 칭호도 그에게는 죄책감일 뿐이다. 타인과의 접촉을 끊고 고립의 섬으로 들어가 등대지기가 되려던 톰은 이자벨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자벨은 스스로가 만든 먹구름에 잠식되어 가던 톰을 푸른 하늘로 건져 올렸다. 그녀의 웃음에 톰의 세상은 바뀌기 시작한다.

     고독과 고립의 삶을 택한 등대지기와 사랑에 빠진 여인, 
거친 파도와 적막한 바다는 더 이상 고독과 우울로 가득 찬 곳이 아니었다. 섬에서 이들은 누구보다 행복했고 서로를 사랑했다. 그러나 운명은 그들에게 견딜 수 없는 두 번의 시련을 선사한다. 

     이자벨은 아이를 잃었다. 아내의 행복을 누구보다 바랐던 톰은 더 이상의 어떤 말도 그녀에게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 점이 못 견디게 힘이 든다. 그런 그들의 앞에 
갓 태어난 아기와 이미 숨을 거둔 남자를 실은 배 하나가 떠밀려 온다. 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보고해야 하는 것이 등대지기의 의무임에도 톰은 아내를 위해 의무를 져버린다. 아내는 아이를 간절하게 원했고, 불현듯 나타난 이 아기가 자신의 운명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아기를 안아 들고 환하게 웃는 아내를 톰은 외면할 수 없었다.

     마음 한 켠에 죄책감을 품어둔 채 유지되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의 생모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톰은 묵혀둔 죄책감을 직면한다. 톰은 이자벨의 안전을 위해 모든 것을 자신이 감수하는 결말을 택했다. 


     어리석을 만치 헌신적인 그는 등대를 닮았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내하려 한다. 사랑은 톰으로 하여금 그의 세상을 온통 이자벨로 채우게 했고, 이자벨만을 향하게 했다. 묵묵하고 헌신적인, 그렇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이 남자는 <파도가 지나간 자리>가 지닌 사랑의 절대적 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것


혹자는 사랑을 인간의 감정 중 가장 비효율적인 감정이라 말한다. 때로 우리는 평소라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사랑의 힘을 빌려 기분 좋게 해내고는 한다. 모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과정과 판단은 저 멀리로 제쳐둔 채, 그것이 결코 효율적이 선택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상관없다. 사랑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되어버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비밀과 몰아치는 죄의식 사이에서 갈등하고 무너지는 <파도가 지나간 자리> 속 인물들의 감정은 직선적으로 포착되고 전달된다.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상황은 무엇이 불행인지 행복인지, 누구의 선택이 선인지 악인지 판단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영화는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순식간에 우리를 휘말리게 한다. 같이 아파하고 고민하고 슬퍼하게 한다. 이성을 무디게 만드는 사랑의 힘은 영화 속 모든 인물의 삶에 공감하게 하고, 합리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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