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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leena Aug 07. 2018

스페인어 못하는데 괜찮아요?

부적응의 보고타, 스페인어 할 줄 몰라도 되는데요 안 됩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문장

뽀르 빠보르 에스뻬레.(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뻬르돈.(실례합니다.)
로 씨엔또, 노 아블로 에스빠뇰.(미안해요, 에스빠뇰 할 줄 몰라요.)


무엇을 먹던, 무엇을 사던, 어디를 가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우리였다. 다행히도 기다려 달라, 미안하다, 이게 맞냐 더듬거리며 되묻는 우리를 내쫓는 이는 없었으나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땀에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위태로움에 절정을 찍은 건 데이터 유심을 구매하러 간 작은 ‘끌라로’ 매장에서였다.


“옆 건물에 가서 유심 충전해 오면 돼요.”


어리둥절했다. 이곳에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문밖을 가리키는 우리에게 직원은 계속해서 옆 건물로 가라는 말만을 전했다. 끝난 게 아니었나? 또 무슨 돈을 써야 하는 거지? 의심에 의심이 꼬리를 물었으나 반문할 능력이 없는 우리는 그저 직원이 나쁜 사람이 아니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손에 쥐여준 꼬불꼬불한 약도를 따라 도착한 옆 건물의 정체는 복권을 판매하는 작은 구멍가게였다.

“디스꿀뻬? 뿌에도, 꼼브라르, 에스떼?(실례합니다? 이거, 살 수, 있을까요?)”


아주머니는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뻬르돈?”이라고 반문했다. 아는 단어를 모조리 사용한 상태였다. 여기에서 어떻게 더 설명해야 하는 걸까? 다급히 끌라로 매장에서 받아 온 약도와 유심 카드를 내밀었다.


“데이타, 뿌에도, 리까르가?(데이터, 충전, 할 수 있을까요?)”



20분이면 끝난다던 유심 구매에 족히 두 시간을 쏟았다. 남들은 척척 해내 쉽게만 보였던 일이 우리에게는 사투였다. 어렵사리 여권 번호도 적었고, 돈도 냈고, 유심도 갈아 끼웠는데 일의 막바지에 가서는 계속해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내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세 명의 직원과 세 명인 우리는 연신 번역기를 사용해가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썼다. 이 말이 그 말인가 되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고, 그럼 그 말이 이 말인가를 다시 물으면 또 그것도 아니었다.


민망했고 고마웠다. 사과와 감사를 번갈아 전하며 셋 중 하나도 온전한 상태가 아닌 채로 가게를 나섰다. 하루를 시작한 지 고작 두 시간이 지나던 때였음에도 완전히 지쳐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언어와 소통의 불능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할 곤혹이 현실이 된, 그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피로했다. 그날 저녁부터 우리는 여유 시간을 서툰 에스빠뇰로 채우고는 했다. 문법이고 문맥이고 엉망진창인 말을 더듬더듬 뱉는 것.



“이건 뭐라고 하게?

“그럼 이건?”


간단한 인사말부터 숫자, 방향, 음식, 물건에 이르기까지. 처음 만나는 이들과의 대화에 대비해 좋아하는 음식, 자주 듣는 음악, 고향 등을 묻는 법을 외워가며 상황극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칠레로 넘어갈 때 즈음이 되어서야 “에스빠뇰 할 줄 아네!”라는 말에 “뽀끼또(조금)!”라 외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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