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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leena Sep 09. 2017

결코 잡히지 않아 허망한

사적인 영화일기, 생 로랑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영화 <생 로랑>



사적인 영화일기, <생 로랑>


가스파르 울리엘이 연기한 영화 <생 로랑>은 1967년부터 1976년까지 이른바 '전설의 10년'이라 불리는 생 로랑 하우스의 가장 화려한 시절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생 로랑이 어떤 경로를 거쳐 자신의 하우스를 갖게 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게 되었는지가 아닌, 이미 디자이너로서 화려한 성공을 시작한 생 로랑의 삶을 다룬다. 영화 속 그는 이미 1965년 몬드리안 드레스를 통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화려하게 일군 후였고, 이후의 르 스모킹과 에스닉 룩까지 그의 혁명적 발상은 이브 생 로랑 자체를 반향적 트렌드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우리는 생 로랑의 끝없는 우울과 불안, 흔들리는 내면을 가장 강렬하게 마주할 수 있다. 매 다른 혁신적 변화를 선보이며 그 명성을 더해가는 그의 브랜드와 달리, 이브 생 로랑은 그다지 굳건해 보이지도 강인해 보이지도 않는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져 사라질 것만 같은 그 특유의 연약함과 불안함을 가르파르 울리엘은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급변하던 시기, 새로운 것들이 마구 창조되던 시기, 변화와 혁명 속에서 폭주하기도 흔들리기도 하는 생 로랑의 내면을 말이다.영화는 확실히 생 로랑의 삶에서 벌어지는 안과 밖의 간극과 대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제가 생 로랑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아요. 생 로랑은 몇 가지 단어로 설명되기에는 너무도 섬세하고 복잡한 사람이었으니까. 무엇보다도 타인의 삶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언제나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단지 제가 연기한 생 로랑은 좀 더 종잡을 수 없는, 신비로운 인물로 보이길 원했어요. 


영화가 보여주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생 로랑은 20~30대의 남자였어요. 
커리어에서는 승승장구했지만, 개인의 삶은 늘 불안하고 위태로웠죠. 음울하고 지적인 완벽주의자. 그러면서도 가끔 행복한 미소를 보이는 남자. 
미치도록 매력적이지만 손에 결코 잡히지 않아 허망한, 그런 사람이요. 





확신할 수 없는 충족과 파멸의 경계 


디자이너로서 생 로랑은 엄청난 주가를 올리고 있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든든하게 자신만을 후원하고 사랑하는 애인을 떠나 그는 또 다른 누군가의 체온을 얻기 위해 늦은 밤거리를 헤맨다. '이브'는 언제나 자신의 예술적 감각과 욕망을 들끓게 만들 뮤즈를 기다렸고 원했다. 다채로운 색감을 과감하게 믹스해 활용하는 룰루와 단색의 매니시한 룩을 선보이는 베티는 생 로랑의 두 뮤즈로 집중되는데, 이 두 여성의 모습은 생 로랑의 컬렉션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그의 욕망을 실체로 보여준다. 

이브는 뮤즈들과의 관계 속에서 부와 명예 그리고 아름다움을 취하지만, 그 찬란한 화려함 속에서 홀로 고독하게 흔들리고 파멸해 가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가 추구한 아름다움이 결국 그가 이뤄낸 아름다움이었는지, 혹은 고립과 파멸로의 지름길이었는지 단언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스스로를 혹독함 속으로 이끄는 그의 불안정한 내면세계와 탐미를 거부할 수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크라는 환상


이브 생 로랑의 뮤즈 이야기에 '자크'를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파리의 게이들 사이에서 가장 세련된 남성으로 기억된다는 자크 드 바셰는 함께한 시간과는 별개로 생 로랑을 가장 강렬하게 취하며, 관객의 정신마저 탐미적으로 사로잡는다. 실제 생 로랑의 연인에게 남창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던 자크는 20대의 생 로랑을 마약과 일반적이지 않은 성적 취향에 눈 뜨게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그는 말 그대로 생 로랑의 20대를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소리 소문 없이 밀려 들어와 거대하게 개인을 잠식하는 무언가처럼.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은 "루이 가렐은 자크 드 바셰라는 복잡한 인물에 가벼움과 현대적인 느낌을 더했다. 자크같이 기묘하고 퇴폐적이며 타락한 인물을 비도덕적이고 깨끗하지 않은 사람으로 묘사할 수도 있지만, 루이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다"라고 코멘트했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자크 드 바셰의 초상화를 보고 어떻게 이토록 조용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가진 남자가 있을까 놀랐다는 루이 가렐은 이브 생 로랑을 파국으로 이끈 자크와 이브의 '진짜 사랑'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브 생 로랑과 예술적 취향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취향을 가진 그는 이브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인물이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의 원인이기도 했다. 자크는 생 로랑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그 욕망을 폭주시키며, 동시에 그를 파멸의 길로 안내하는 길잡이 같은 존재이다. 예술품 소장을 즐기고 실제 자신만의 컬렉션까지 있었던 생 로랑이지만, 자크는 그에게 마치 결코 소장할 수는 없는 예술품이 아닐었을까 싶다. 

자크 역을 맡은 루이 가렐을 영화 <몽상가들>의 테오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퇴폐적이고 파괴적이기까지 한 테오를 연기해 깊은 인상을 남겼던 루이 가렐은 <생 로랑>에서도 특유의 매력을 뽐낸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시선으로 생 로랑을, 그리고 우리를 자신의 지배 영역 안에 가둔다. 



인상적으로 그려지는 탐미의 깊이


<생 로랑>은 결코 사건 순서대로 화면을 배열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내면은 더욱 복잡하게 엉켜 들어가는 것 같고, 그의 일생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어딘가 푹푹 구멍이 패인 것처럼 다소 복잡하고 어려운 구성때문에 이 영화가 더욱 매력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구성이 이브의 삶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도 결코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이해했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분명 대중적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정제된 느낌을 거부하는 비선형적 시간 구성이 불안정한 그의 정서를 조금이나마 더 섬세하게 받아들이기에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화면 분할, 그리고 더없이 감사한 가스파르 울리엘의 연기까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누군가의 삶을 다룬 영화 <생 로랑>은 그저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보고 느끼기에 꽤 좋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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