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들

by 나침반


아이의 학교 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어떤 선택을 해도

상황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일은 거의 없었고,

대신 내가 감당해야 할 질문과 의심, 흔들림만 늘어났다.

그래서 이 글은

‘잘한 선택’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붙들었던 몇 가지에 대한 이야기다.

하교 후, 아이는 늘 한계에 가까운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하루 종일 긴장하며 버텨낸 에너지를 모두 써버린 얼굴이었다.

집에 오면 몇 시간씩 낮잠을 자고,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뜨는 날도 많았다.

그때만큼은 말을 걸지 않았다.

훈육도, 조언도, 위로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조용한 공간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주는 것.

그게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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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 준비를 하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거나,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거나,

이유 없이 기운이 떨어지는 날도 잦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감기나 몸살 같은 이유를 대고 아이를 쉬게 했다.

이 선택은 늘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럴수록 더 강하게 키워야 한다”,

“자꾸 받아주니 아이가 더 약해진다”,

“고작 그런 걸로 학교를 쉰다고?”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흔들렸다.

내가 틀린 걸까,

이게 정말 아이를 위한 선택일까.

지금도 확신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날의 아이에게

학교는 더 이상 견딜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는 것,

그 사실만은 분명했다.

밤은 더 힘들었다.

심할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

어떤 날은 거의 매일

아이의 투정을 듣고 달래야 했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울음과 말들.

그 시간이 끝나면

아이보다 내가 먼저 지쳐버렸다.

몸도 마음도 바닥이 나서

혼자 조용히 우울해지는 날이 많았다.

잦은 결석과 조퇴는

설명하지 않으면 오해를 낳았다.

담임 선생님께

아이의 상태를 이야기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게 됐다.

늘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다.

이해를 구하는 입장이 되면

말은 조심스러워지고,

태도는 더 공손해진다.

그게 보호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처럼 느껴졌다.

하교 시간도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몰려 나오고,

사람들과 부딪히는 순간마다

아이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그래서 고학년이 되어서도

학교 앞에 마중을 나가는 날이 잦았다.

그 선택 역시

스스로를 변명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친구 관계에서도

나는 꽤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아이가 친구라고 부르는 아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집으로 초대했고,

잘 대접했고,

길에서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어느 순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아이를 외면했다.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이런 노력은 관계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이 글을 쓰며 돌아보면

내가 한 일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한 선택들이 아니었다.

다만 아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오늘 하루를 넘길 수 있도록,

조금 덜 아프게 버티게 하기 위한 선택들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들 사이에서

나 역시 많이 아팠고, 흔들렸고,

자주 확신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이 글이

비슷한 자리에 서 있는 부모에게

조금이나마 숨 쉴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잘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도,

매번 흔들리면서도 아이 곁을 지키고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말을

누군가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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